나는 왜 책을 읽을까? 재밌어서? 독서는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골머리를 앓게 한다. 책을 읽을수록 난해한 생각들에 머리가 복잡해지기 일쑤고, 꽃밭같아 보이던 내 인생도 어느새 평범한 것으로 전락해버리곤 만다. 책 읽는 행위는 매우 불편한 행위이다. 책 속 등장인물의 고뇌 속에서 내 내면에 감춰진 욕망과 불쾌한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인간임을 자각하게 된다. 어떤 책은 형용할 수 없는 감각만 남기곤 하는데, 그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 내 기분을 통제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 책 읽는 건 정말 불편한 일이다.
그럼에도, 왜 나는 책을 읽으려 하는가?
결국은 ‘나’를 더 잘 이해하려고. 나아가 삶의 어떤 순간에도 꺾이진 않는 단단한 뿌리를 만드려고.
소설 속 주인공의 행위를 보며, 우리는 내면의 나를 마주한다. 그러면서 나를 더욱 다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다.
예를 들어, 내가 나 자신을 ‘항상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이해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삶의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 속 깊숙이 자리한 악함을 마주할 때,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를 읽어본 자라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극도로 악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으며 (악의 평범성) 그러지 않기 위해 철학적 사고를 통한 사유가 필요함을 알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내가 만약 늘 행복하고 삶이 꽃밭처럼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삶에 들이닥친 슬픔과 비탄, 구렁텅이에 빠진 듯한 존재적 고독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덧없음을 이야기한 수많은 철학자들의 저서를 한 권이라도 읽어보았다면. ‘시끄러운 고독’을 읽어본 자라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외로움과 존재론적 고독감을 보편적인 감정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처럼 독서를 통해 생각의 외연을 확장하고, 나를 더 깊이 이해한 사람은 삶에 일렁이는 새로운 파도를 덤덤히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건 삶에 그저 ‘순응’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뜻하는 건 아니다.
모든 일은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그간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문제 자체를 파악하는 데에 사용해왔던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나아가 나를 혐오하기에 이른다면, 삶은 계속 흘러가기 어렵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 그것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자 해결의 실마리이다. 책은 그 과정을 훨씬 더 수월하게 만든다.
따라서, 독서는 나를 더 단단히 빚어내는 과정이다. 그 ‘단단함’으로 우리는 삶을 대하는 초연한 자세를 견지할 수 있으며,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삶을 원망하고, 세상을 부정하고, 나 자신의 존재마저 져버리고 싶지 않다. 삶은 계속 흘러가기에도 벅찬 것이니까. 생명은 그 자체로 귀하고 ‘존재함’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책을 읽는다. 살아가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