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일상을 살아가다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될 때가 있다.
'나는 무얼 위해 이걸 하고 있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뭘까?'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지?'
이러한 질문은 중요한데, 우리 스스로 삶의 우선순위를 점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답할 순 없어서, 묵직한 질문들만 마음에 남은 채 또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디곤 한다.
나는 유난히 생각이 많아서 늘 마음 속에 솟구치는 질문들에 시달리며 살았다.
답도 없는 질문에 귀중한 시간과 '현재'를 놓치게 될까봐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마주한 나의 경험을 나누고 싶다.
학창시절의 나는, '나는 왜 공부를 하고 있지?' 라는 질문을 늘 품고 살았다.
모두가 '입시'라는 하나의 관문을 향해 달려나가는 게 매우 기이하게 느껴졌고, 그 속에서 함께 달리면서도 늘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했다. 그리고 그 물음은 해소되지 못한 채 나는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열심히 한 경험' 자체가 매우 소중한 것 같다.
무언가에 전념해본 사람은, 그게 삶의 태도가 되어 새로운 꿈이 생겼을 때에도 기꺼이 나아갈 힘이 있기 때문.
대학교에 와서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골프를 치는 친구, 영화를 만드는 친구, 노래하는 친구 등등. 그들은 저마다의 꿈을 품고 있었고, 그래서 빛이 났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분야가 무엇이든, 결국 꿈을 이뤄내는 사람들은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무언가 열심히 해본 사람은, 그게 삶의 태도가 되고 기꺼이 꿈을 이뤄낸다.
그리고 자신만의 목표를 이뤄본 사람은, 그게 자신감이 되어 더 큰 꿈을 향해 기꺼이 나아갈 수 있다.
입시를 치르며 '내가 원하는' 목표는 아니었지만,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 공부했던 그 경험은 나에게
인내심과 끈기를 가르쳐주었다. 학창시절의 내가 그 질문을 하는 와중에도 연필을 놓지 않았기에, 공부를 열심히 한 경험은 내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이렇듯 어떤 질문들은 시간이 지나서야 슬며시 그 의미를 가르쳐주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에 압도당할 필요도, 답을 모르겠다며 조급해할 필요도 없다.
어떤 질문은 '질문 자체'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있고, 그 질문을 마음에 품고만 있는다면 언젠가 답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삶의 많은 기로 속에서 여러 질문을 마주하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답하려고만 애쓰진 않으려 한다.
그저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낸다면, 시간이 내게 답을 줄 테니 :
살아가다 답이 없는 막막한 질문을 마주할 때,
사색하고 성찰하는 것도 좋다.
그런데 그 질문 하나가, 우리 삶을 멈추도록 놔두진 말자.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