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by 저녁이 있는 삶

겉과는 다르게 사무실은 초라했다.

국회의원을 제외하고 9명이 함께 근무하기에는

너무나도 협소한 공간이었다.


사무실 내부 통로는 성인 남성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상급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면 걸어 오던 사람은

바로 근처 자리에 앉아 공간을 내줘야만 했다.


책장 공간이 부족해 대부분의 서류들과

보고서 등은 바닥에 방치돼 있었다.


탕비실은 냉장고 하나에 싱크대 하나.

한 명 밖에 들어갈 수 없는 작은 공간.

내 자리는 사무실 초입에 마련됐다.


책상에는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키보드는 불쾌할 정도로 끈적거렸다.


국회의원회관은 각 층 구석마다

흡연실이 마련돼 있었다.


사실상 직원들의 사랑방과 같은 공간이었다.

고참 짠돌이 보좌관들은 담배 없이

그곳을 찾아 후배들 담배 한 개비를 빌렸다.


그런 흡연실은 내 자리에서

성인 남성 다섯 걸음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온종일 담배 냄새를

강제로 맡고 살아야 했다.


책상을 치우고 물걸레로 몇 번을 닦아도

끈적함이 사라지지를 않았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자 내 옆자리의

주인이 잠에서 덜 깬 얼굴로 출근했다.


“자네는 누군가?”


내 옆자리의 주인공은 5급 비서관.


서울대를 차석으로 졸업한 인재이자,

국회 내에서도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기본적인 예의는 없었다.


20세기 초반 연구자들이 썼을 법한 검정 원형 뿔테 안경.

더욱 놀라웠던 것은 옷차림이었다.


바지는 동네 약수터에 막 다녀온 듯한

부스럭거리는 소재의 운동복.


상의는 목이 다 늘어난 누런 러닝셔츠에

회색 면 소재 후드를 입고 다녔다.


공무원이 저렇게 입고 다녀도 될까?


참으로 이상하고 괴팍한 사람이었다.


“첫 출근 하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얼마나 다닐라고?”

“...........일단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오래는 못 볼 것 같은데? 적당히 하다가 그만둬”


예상치도 못했던 환영 인사를 받았다.


그래도 근로기준법이 있는 나라인데,

첫 출근 한 직원의 사기를 제대로 겪었다.


그런 그가 나의 사수가 됐다.


첫 업무 지시로 컵라면을 끓여 오라고 했다.

황당하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이것도 사회생활이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면서 매점에서

500원짜리 단무지와 나머지는 마시고 싶은 음료를 사라고 했다.


매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1층에 있겠다 싶어 내려갔다.


한참을 찾다가 겨우 매점을 발견했다.

비서관은 단무지를 늦게 사 왔다고 야단을 쳤다.


흡연실로 갔다.

줄담배를 피우며 아무도 들을 수 없게

속으로 세상 모든 욕을 내뱉었다.

한참을 있다가 자리에 돌아왔다.


비서관은 나에게 종이컵 하나를 건넨다.


또 무슨 이상한 짓을 시키려고 하는지

상당히 긴장됐다.


“담배는 자리에서 편하게 펴”

“사무실 실내에서 말입니까?”

“다들 자리에서 핀다”

“그래도 비흡연 여성 분들도 계신데요?”

“아, 말 많네, 그냥 펴. 괜찮아”

“....네...감사합니다”


그렇게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비서관은 담배 하나를 물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렇게 며칠 동안 그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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