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를 지킨 사람들 - 로자 룩셈부르크 1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름을 언제 처음 접했는지 기억에 없다. 베를린에 로자 룩셈부르크 이름을 가진 광장이 있고 지하철 역도 있고 거리도 있으니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정치와 관련 있던 인물이라는 것만 막연히 알고 있었다. 내 젊은 시절, 정치에 도통 관심이 없었으므로 정치가들의 이름도 알고자 하지 않았다.
십여 년 전 어느 날 티어가르텐 근처의 운하를 지나가는데 물가에 못 보던 조형물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이름을 마치 인쇄용 활자처럼 형상화한 청동 조형물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안내문을 읽어 보니 100년 전 바로 그 자리에서 그녀의 사체가 차가운 운하에 던져졌다고 쓰여 있었다. 살해범들이 납치하여 차 안에서 총으로 머리를 쏘아 죽인 뒤 그 사체를 여기다 버렸다고 했다. 소름이 끼쳤다.
이후 드문드문 그녀에 관해 조사하다가 매년 1월 15일 그녀의 기일이 되면 수천 명의 인파가 그녀의 무덤으로 행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사회주의자였고 1919년 혁명을 이끌다가 실패하여 살해되었다고 했다. 잔 다르크 풍의 여장군을 연상했는데 사진을 보니 작고 가녀린 여인이었다. 이 여인이 혁명을 이끌었다고? 그리고 더욱 신기한 것은 공산혁명을 이끌던 여인을 베를린이 이리 진심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기일엔 행진 외에도 각종 매체에 어김없이 그녀의 행적을 기리는 글이 실린다. 그날의 행진을 이끄는 것은 좌파당이지만 수많은 베를린 시민들이 행렬에 참가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 행렬에 참여해 본 적은 없다. 그저 신기해하며 바라보는 입장이다.
그러다가 그녀에 관해 한나 아렌트가 쓴 글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몹시 궁금해져서 로자 룩셈부르크가 쓴 논문도 두어 편 읽어 보았다. 그녀의 대표 저서 “자본축적론”은 요약본만 읽었다. 언제 시간을 내어 정독할 생각이다. 자본축적론의 부제 – “경제적 관점으로 설명한 제국주의”에 끌려 좀 더 상세히 알아보았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에 관해 쓴 글도 읽어 보았다. 그리고 나는 로자 룩셈부르크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로자는 자본축적론에서 마르크스가 미처 보지 못했던 자본의 속성을 논했다. 마르크스의 ‘재생산 도식’을 비판하며, 순수한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서는 생산된 잉여가치를 실현할 구매력이 부족해 필연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음을 간파했다. 그리고 자본의 축적은 과거의 일이어서 어느 날 자체붕괴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자본 축적은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 예언했다. 자본주의는 바이러스와 같아서 숙주, 즉 비자본주의적 환경을 잠식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식민지나 농촌 등을 찾아다니며 자원을 먹어치운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지구상에 모든 숙주가 다 먹힘을 당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 했다. 마르크스가 자본과 노동만을 변수로 삼았다면 로자는 자본주의를 다차원적인 과정으로 보았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를 낳고 제국주의는 군국주의로 간다는 필연의 인과관계를 증명했고 규칙적인 수요를 보장해 주는 전쟁은 자본주의의 밥줄이라고 간파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결국 전쟁과 야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수학 공식처럼 증명해 낸 그 칼날 같은 지성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수년 전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먹고 싶다고 했을 때도 설마설마했었다. 최근 잊지도 않고 그린란드를 다시 들먹이는 트럼프를 보면서 자본주의가 야만으로 귀결한다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