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베를린의 명물이 된 곰친구들 “버디베어” 이야기를 간단히 전하려다가 뜻하지 않게 일이 복잡하게 되었다.
나는 베를린에서 버디 베어를 만날 때마다 반가워하며 사진을 찍는다. 설치미술이긴 하지만 예술작품이라기 보다는 베를린의 마스코트, 이 도시를 조금 더 유쾌하게 만드는 존재로 여긴다. 평소 너무 진지한 베를린에서 이 곰들은 긴장을 풀어주고, 밝은 분위기를 만든다.
그러다가 최근 안드레아스 지크만Andreas Siekmann이라는 예술가의 작업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복잡해진 것이다. 그는 2007년 『낙수 효과. 민영화 시대의 공공 공간』이라는 작품으로 버디베어를 비롯한 여러 도시의 마스코트들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 작품이란 것이 베를린의 버디베어, 함이라는 도시의 코끼리, 뒤셀도르프의 물구나무서기 소년 등 13개의 형상을 고철 압축기에 넣어 파괴한 다음 그 파편을 뭉쳐서 덩어리를 만들어 전시했다. 일단 아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고 “세간의 관심 끌기 위해서?”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자세히 알아보았다. 그저 관심 끌기 위한 행위는 아니었던 듯하다. 안드레아스 지크만은 1962년생 답게 자본주의 비판적 성향의 예술가이다. 작품의 경향이 대체로 그렇다. 한편 도시 공간에는 제대로 된 예술 작품만 전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도시 곳곳에 서 있는 유치한 플라스틱 마스코트가 무척 눈에 거슬렸던 것 같다.
그는 프로젝트를 세심하게 구상했다. 각 도시에서 마스코트 원형을 구매했다. 마스코트는 여러 곳에 세울 수 있도록 복제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베를린 버디베어의 흰색원형은 누구나 사서 직접 채색하여 자기 집 앞에 세울 수 있다. 가격이 2,540 유로에 부가세 19%까지 더하면 3천 유로 정도다. 한화로 5백만 원에 상당하는 금액이다. 개인이 취미로 하기에는 조금 벅차지만 회사나 상점에서 자기들 건물 앞에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구매하여 예술가들에게 채색을 의뢰할 수는 있는 가격대다.
구매 조항이 좀 까다롭다. 안드레아스 지크만이 의도한 대로 공공연하게 파괴하는 경우 이미지 손상 금지조항에 걸린다. 그러므로 중개인을 세워야 했다. 그 중개인에게 구매하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이때 계약서에 이미지 손상 금지 항목을 넣지 않으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렇게 수고롭게 구매한 원형들 모두 정성스럽게 채색했다. 그리고서 파괴한 것이다. 공공 기물을 훼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것을 파괴한 것이니 누가 뭐랄 사람이 없었다.
독일 지식층들이 읽는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는 "플라스틱 상징물들이 독일 도심을 점점 더 망가뜨린다"고 개탄하며 안드레아스 지크만의 작품을 긍정적으로 보고 그와 인터뷰를 했다. 그 인터뷰 기사 덕에 실제로 어떤 작업 과정을 거쳤는지에 관한 내 궁금증도 풀렸다. 보수적 예술계의 비판은 일관적이다. 버디 베어는 시티 마케팅의 천박한 상업주의이며, 공공 공간의 민영화이고, 도시 경관의 오염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사람들은 거리 축제, 크리스마스 마켓, 서커스 텐트를 좋아한다. 거기에 지적 깊이를 요구하지 않는다. 예술적 높은 이상도 찾지 않는다. 버디 베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이들이 곰 앞에서 웃고,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면, 그리고 상점주나 건물주가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그것도 공공 공간의 정당한 기능이다. 그리고 솔직히 그다지 흉물도 아니다.
2001년 곰친구 프로젝트를 처음 기획한 사람들은 헤를리츠 부부였다. 독일에서 가장 큰 문구 회사 오너 부부다. 그들이 사업성을 보고 일을 시작한 것 같지는 않다. 가진 재산으로 단순한 기부를 넘어 뭔가 뜻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오스트리아의 초현실주의 조형예술가 로만 스트로블Roman Strobl과 그의 제자들에게 네 가지 유형의 곰 제작을 의뢰했다. “춤추는 곰”, “물구나무선 곰”, 그리고 앉아 있는 “친구 2번”과 “네 발로 선 곰”이다.
이 네 가지 유형을 틀로 삼아 흰색의 클론을 여러 개 만들고 그 흰색 몸통에 그림을 그리거나 채색하는 것이 기본 아이디어다. 예술과 대량생산의 경계선상에 선 좀 모호함이 있기는 하다.
같은 해 350마리의 곰을 완성하여 베를린 전 도시에 분산 배치하여 전시했다. 물론 베를린시의 승인을 받은 프로젝트였다. 한 번의 퍼포먼스로 끝낼 예정이었으나 반응이 의외로 좋아서 베를린시에서 여러 번 기간을 연장하다가 2010년부터는 아예 영구 프로젝트로 전환했다.
이제는 외무부가 나서서 독일연방의 해외 공관에 하나씩 세우자고 제안했으며 작업은 해당 국가의 예술가들이 맡기로 했다. 그 결과 현재 약 100개소 이상의 전 세계 공관에 곰 친구가 한 마리씩 서서 혹은 앉아서 독일의 외교 업무를 돕고 있다. 공식적으로 외교관이 된 셈이다.
2001년도 베를린에서 첫 전시가 대성공을 거두자 곧 새로운 아이디어, 유나이티드 버디베어스가 탄생했다. 국제도시 베를린, 명색이 아니라 실제로 세계 159개국에서 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도시 베를린을 상징하기 위해서도 유나이티드 버디베어는 안성맞춤인 것 같았다. 세계 각국의 유명, 무명 예술가들 140여명을 베를린으로 초대했다. 대형 문화 교류 프로젝트였다. 이제 버디베어는 문화와 예술의 다양화를 넘어 세계 평화의 대사로 이해되었다.
이렇게 하여 버디베어 프로젝트는 지금도 두 가지로 나뉘어 병행하게 된다. 개별적으로 제작하여 건물 앞에 세우는 프로젝트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으며 140 마리 유엔 버디베어는 세계 순회를 다니고 있다. 올해는 싱가폴에 다녀왔고 서울에는 이미 2005년에는 다녀갔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2008년에는 평양 모란봉까지 갔다왔다는 사실이다. 이를 성사하기 위해 평양의 독일 대사가 꽤 분투했던 것 같다. 고차원의 예술 작품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이다. 이쯤 되면 버디베어가 시티 마케팅의 천박한 상업주의이며, 공공 공간의 민영화이고, 도시 경관의 오염이라는 오명을 벗어야 하지 않을까?
곰친구는 각각 2미터 크기에 몸무게는 50kg 안팎이다. 크고 무거운 대형 예술 작품에 비해 제작비와 설치비용이 비교가 안 되게 저렴하다. 수익은 모두 국제아동지원단체에 기부한다.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약 2백만 유로를 모아 기부했다.
특히 전 세계 젊은 예술가들이 베를린의 초대를 받고, 작업할 기회를 얻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베를린의 예술계가 유명 작가와 눈높은 비평가들만의 것은 아니다. 덜 알려진 젊은 작가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의 곰친구는 문화 교류와 예술 지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수십만 수백만 유로의 설치비용이 드는 유명 조형가의 작품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거리의 상점도 버디베어 한 마리를 세울 여력은 된다. 도시 예술의 민주화가 아닐지.
물론 비판적 시선도 이해한다. 건물 앞에 고정 설치된 곰들이 거슬릴 수 있다. 그러나 도시가 끊임없이 이지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지식인이나 예술 전문가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진지한 예술도, 유쾌한 즐거움도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버디베어는 그 이름처럼 친구다. 완벽하지 않지만, 따뜻하고,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존재. 베를린에서 곰 친구들이 누리고 있는 인기는 바로 그런 친구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좋다고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