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ed

by 서현석

토마스의 검은 말이 스몰히스의

검은 흙을 밟은 이후부터

피를 섞은 동맹에 이르기까지,

그는 많은 경계를 허물며 영역을 확장했다.


빛과 어둠, 검정과 붉음, 질서와 상위질서

세 경계를 모두 무너뜨린 토마스의 두 손은

산자의 묘지에 죽음의 무기를 숨겨놓아

신성성의 경계까지 무너뜨리고,

마지막 남은 가족의 울타리마저 무너뜨린다.


무너져 흔적만 남은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폴리의 촛불은 방향을 잃고,

아서의 화염은 위치를 잃었다.

존은 과거를 과거에 남길 희망을 잃었고,

에이다는 남편의 자리를 잃었다.


잃어버린 것들이 지면을 따라

균열을 만들어내어 울타리 자국을 넘어가고

그 균열 속에 새로이 채워질 공간을 남긴다.



토마스의 균열

토마스가 허물은 울타리는

가족 간의 균열을 만들어 멀어지게 함과 동시에

울타리 밖의 존재를 안으로 불러들인다.


캠벨의 구역또한 균열위에 놓여

토마스의 이름이 새겨진 총알을 준비하지만

총알은 그의 심장이 아닌 검은총의 약실에 장전된다,

셸비의 울타리 밖에서 들어오는 힘은

검은 땅 위에 군림한 검은 가문을

질서의 종소리에 맞춰

공권력의 명분을 입고

살해를 집행하는

자리로 이동시킨다.


동시에

공권력의 시선 속 무관심한 방관이 아닌

어깨뒤에서 함께 싸워 가족의 균열 속으로

들어오는 그레이스를 받아들인다.


공권력에 쫓겨

그레이스의 집으로 피신하는 토마스는

붉은색의 군인이나

귀부인 혹은 성병 걸린 매춘부가 아닌


그레이스에게 차를 대접받고

그 이름을 향해 춤을 권한다.


그들은

서로의 색을 벗겨 살색에 이르고

그레이스의 생채기에는 토마스의 숨결이

토마스의 총알자국에는 그레이스의 손길이 닿는다.


그레이스의 균열

자정을 향하는 개리슨

죽음에 직면한 토마스에 의해

그녀는 다시 한번 군인이 되고


그녀가 입은 붉은 카디건이

제도권의 붉음과 토마스의 붉음 사이에서

성당의 종소리에 쫓기지만

그녀가 숨은 곳은 토마스의 그늘 속이다.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가는 그날 밤

그녀의 숨길에 붉어지는 담뱃불이

토마스의 숨길에 다시 붉어지고

피어오르는 담배연기는

둘 사이 벌어진 균열 위에 다리를 놓는다.


그리고는

분홍의 박물관이 아닌

나무와 이끼 덮인 공원에서 캠벨과 만나 붉음을 버리며

토마스를 향한 담배 연기 그 반대편에 균열을 만든다.


아서의 균열

자신의 폭발하는 화염으로

가족의 앞길을 열어야 했던 아서는

토마스가 뚫은 터널에 밀려들어가고

동생이 뚫고 간 터널의 벽면에

그을음의 검정만 남긴 채 사그라든다.


불씨만 남은 아서는

터널 속 바닥에 고인 가스와도 같은 존재인

우연히 나타난 아버지에게

자신을 옮겨 붙여 보려 한다.

자신의 불은 가족이 있는 터널을 불태울 테지만

자신의 화염만은 일으킬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자신의 불씨를 가져다 댄 터널의 바닥에는

아버지의 가스가 아닌

축축하고 냄새나는 땀방울의 고임이었고,

자신의 마지막 남은 불씨마저 상관하지 않는

아버지의 축축함에

아서는 더 이상 옮겨 붙을 곳이 없어져

그 습기를 받아들여 불씨를 꺼트리려 한다.


폴리의 균열

앞을 밝히는 촛불처럼 선행의 시야를 지닌 그녀는

모든 경계를 허물며 확장하는 토마스의 곁에서

자신의 역할이 변화해야 함을 감지한다.

균열에 놓인 그녀는 과감히 촛불의 붉음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낸다.



새로운 한계


토마스는 '셀비 유한회사'를 설립한다.

영문명 그대로 limited를 쓰는 유한회사는

셸비가문의 울타리의 경계를 세우고

책임이 제한된 영역을 만들어 낸다.

가족 간에 균열이 깊어져도

울타리 밖으로 밀려나지 않을 것이다.


불법과 합법이라는 빛과 어둠이

고루 섞인 '셸비유한회사'의 영역에는

아서의 화염이 기댈 직위도,

위험을 감지하는 불이 아닌

울타리 안에서 가족에게 향하는 촛불이 될

폴리의 자리도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총성을 축포로 바꾸며 자신의 자리를 찾는

존의 자리 또한 그 안에 놓여 있다.

그리고 토마스 또한

과거를 묻어 둘 공간을

땅속 터널 끝에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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