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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Jan 04. 2024

괴로워하거나 안도하거나

일희일비

 요즘은 이직 준비에 한창이다. 프로그래밍 분야이기 때문에 코딩 테스트를 치러야 하는 곳이 꽤 있다.

오늘은 한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 안내받은 코딩 테스트를 실시했다.


 나는 프로그래밍에 관심도 없던 학생이었다. 그러다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말이 진리인 듯 어느새 프로그래밍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 있었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험을 치르면 항상 낮은 학점에 괴로워하면서도 예상했던 바라며 뒤늦게 털어버리곤 했다. 취업 준비 시즌이 될 때도 코딩이라는 것에 막연한 두려움이 생겨 전형 중 코딩 테스트가 있는 회사는 일절 지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회피하다 나중에 후회해도 상관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보다 두려움이 더 컸기 때문일 거다.


 회사를 안정적으로 다니고 있지만, 이직을 할 때가 되었다는 직감의 신호가 몇 번 있었다. 이번엔 코딩 테스트를 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두려움이 앞선다. 내가 못하는 거라고 단정지어 버린다. 스트레스받지 않을 만큼의 레벨로 문제를 풀어 나갔다. 시간제한 없는 연습은 꽤 재미있었다.


 실전은 1시간 내로 10문제의 정답을 맞혀 나가는 형식이었다. 시작 버튼을 누르고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웃기게도 풀어나간 게 고작 한 문제였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두 번째 문제에서 한참을 헤매다 시간을 다 써버린 것이다. 그래, 그럼 그렇지. 난 원래 못하잖아. 끝나자마자 늘 그랬듯 자책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못해서 이 정도밖에 못 한 게 맞다. 사실이다. 인정을 하면서도 괴로워한다. 이 분야에 몸담고 있는 나를 원망하고, 전혀 다른 방도로 먹고살 궁리를 하기 시작한다.


 일희일비 해 버린다. 뭐 자연스러운 머릿속의 반응 아닌가. 그래도 좀 많이 맞혀서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게 안 되고 있다는 건 내가 못해서라는 것. 이라는 추론을 되뇌었다. 그만하자, 좋은 말도 아닌데 스스로한테 꼭 그렇게까지 해야 속이 시원한가. 시원하지도 않지만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를 쉽게 못하는 내가 안쓰러웠다.


 한숨을 푹 내쉬며 SNS를 본다. 아무 생각없이 보기에 좋은 이야기들이지만 어딘가에 도전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기 딱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고뇌를 잊기 위한 수단으로 고뇌를 시작한다. 블로그 운영을 하며 수익을 내야 할까? 유튜브를 시작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 있는 분야가 없다. 전혀 다른 방도로 먹고사는 궁리를 하는 건 지금으로선 회피의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의미 없는 생각으로 게시물 하나하나를 보다가 한 문구를 발견했다.


 '문이 닫히면, 창문이 열린다. 닫힌 문에 미련을 두지 말고, 열린 창문을 찾아라'


 고뇌의 회로는 지금의 내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코딩 테스트가 한 문제로 끝났다는 건 안타깝지만 문이 닫힌 걸 의미하겠지. 그 회사가 아니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니 다른 회사에 지원을 할 기회가 있다는 건 열린 창문을 의미하겠지. 은근슬쩍 나만의 합리화로 안도하며 일희일비 해 버린다. 사람이 이렇고, 내가 이렇다.


 이 모든 건 '내가 잘 살고 있는 건가?'의 의문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누가 해답을 던져 주었으면 좋겠다. 난 특출 난 게 없고, 결과에 일희일비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던 것에 처음으로 도전해서 짧게나마 경험해 봤다는 것에 고생했다고 한 마디만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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