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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May 21. 2023

힘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법

두 개의 점

 2021년 9월 말. 지옥 같았던 첫 취준 생활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생각해 보면 수개월간 자기 분석을 하면서 나는 나를 많이 믿지 못한 것 같다. 나에게 정말 이런 장점이 있다고? 장점 한 개보다 단점 열 개가 더 의심이 들지 않는 이 순간이 자기 분석이라기엔 역설이 있는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도 큰 산 하나를 넘은 듯 속은 많이 후련했다.


 후련한 걸 넘어서 지난 과거의 행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고등학생 때는 뒤늦게 장래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체육 교사였다. 부모님께서 교사를 권유하신 것이었다.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에선 뛰어나게 잘하는 것이 없었지만 체육 하나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어느 순간 체육 교사가 되기를 마음먹고, 실기 준비를 위해 입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약 1년간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던 때는 그야말로 행복했다. 얼마나 좋았는지 이미 체육 교사가 된 것처럼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실기 시험 당일은 아수라장이었다. 핸드스프링이라는 체조 시험 중 착지를 하는 순간 뚝 소리와 함께 오른쪽 무릎의 십자인대가 완전히 파열된 것이다. 이후에 들은 얘기지만 내 뒷순서부터 몇몇은 자기들도 다칠까봐 걱정이었는지 앞구르기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뜻하지 않는 수술을 하고 몇 개월에 걸쳐 재활을 한 끝에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체육 교사의 꿈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체념했을 땐 행복했던 지난날을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거창하지 않은, 두 번째 도전은 공무원이었다. 그 당시엔 뭘 하고자 하는 줏대는커녕 불안감과 좌절감에 하루하루를 살았던 것 같다. 그러던 나에게 부모님은 또다시 권유를 하셨다. 몇 시간 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묵묵히 공부하는 것도 체질에 맞을 것이라 멋대로 생각했다. 사견이지만 개나 소나 시작해 본다는 공시 공부라는데 나도 개나 소가 되어보자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독서실과 학원을 오갔다. 좀 더 열중하고자 하는 멋쩍은 생각에 고시원을 등록했다가 엄지손가락 두 배 만한 바퀴벌레를 보고 2개월 만에 퇴실하기도 했다. 그 당시엔 가진 돈이 적으니 점심은 편의점에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때웠다. 간혹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한 날엔 돌아가는 길에 핫도그 하나를 더 사 먹은 정도였다.


 열심히는 했지만 즐기지 못한 탓이었을까. 2년 반을 준비했지만 돌아오는 건 불합격이란 결과뿐이었다. 이 길도 아닌가 보다. 지식이야 언젠가 쓸 데가 있다 해도 운동 부족에 소화 불량을 달고 살다 보니 병원을 다니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 꼴이 되었다. 비참했다. 나 지금 몸이 아픈 것 같아 그만두겠다 선언했다. 그리고는 빠른 기간에 졸업이 가능하고 취업도 보장된 대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 4년 만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어느 날은 이렇게 예상도 못 했던 내 지난 과거를 흰 도화지라고 생각했다. 흔히 생각하는 8절지가 아닌 무한한 크기의 도화지. 그 위에 두 점을 찍어 보았다. 하나는 출발점이고 다른 하나는 도착점이다. 두 점을 이어 보기로 했다. 두 점을 직선으로 이은 것을 떠올린 순간 나는 엄청난 실수를 한 것만 같았다. 배경이 이렇게나 넓은데 두 점을 잇는 선이 이렇게 곧게, 도착점 방향만을 가리키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선은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채 역행하고 끊기기도 하고 선과 선이 겹쳐지기도 했다.


 내 삶이 기다란 실이 뒤엉켜 풀 수도 없는 모양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땐 도착점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을 지니고 있는지 생각하지도, 그럴 힘조차도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직선으로 올곧아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내가 비록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렇게 넘어질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씩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무엇을 받아들이고 내려놓는 건지는 정의하기 어렵지만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 도착점을 희미하게나마 건들어본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하루하루 월급날만 기다리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해외에서의 직장 생활이라는 출발점에 서서 또 한 번 선을 그어보려고 한다. 끊기고 역행하는, 또 멈추기도 하는 선이지만 도착점을 찾으려고 애쓰는 건 똑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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