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만 할 때 얻는 것은 불안뿐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이대로는 큰일 나겠다.'라는 불안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미래가 걱정이 될 만큼, 내가 계획한 이상향에 다가가기 위해 어떠한 실천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안은 그렇게 생긴다.
고등학교 때 체육교사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전력질주에 턱끝까지 숨이 차올라도, 쉬지 않는 스쿼트에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고통이 있어도 운동이 끝나고 나면 행복한 감정이 올라와 이제야 내 갈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
모든 게 내 정체성을 설명하는 듯했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 길은 내 장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내 삶은 바뀌어 갔다. 한 순간의 사고로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 없어졌다. 이때부터 나는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몇 년이 지나서 누군가가 나에게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을 때마다 항상 운동이라고 답했다. 사실 운동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생각만 해도 마냥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동이 취미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이미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어야 했다. 그래 그게 맞다. 어느새 나는 취미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일본에 오면 꼭 하려고 했던 것들 중 '헬스장 다니기'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 근처에 헬스장이 있는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비용은 얼마나 하는지 등의 정보를 알아보는 데 그리 열정적이지 않았다. 운동을 안 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이젠 취미도 아닐뿐더러 헬스장을 다니지 않아도 잘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힘이 쭉 빠지는 일이 반복되고, 실기 시험 중 다쳤던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일상을 억지로 버티며 맥없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미래의 내 모습이 그려져 불안해졌다.
사실 몇 개월 전 집 근처를 산책하다 가까운 거리에 스포츠 센터를 발견했었다. 돈이 아까워 몇 개월을 미루고 미루다 일본에 온 지 약 10개월 만에 헬스장을 등록했다. 헬스장을 다니는 건 정말 별게 아니었다. 입실 체크 - 운동 - 퇴실 체크뿐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걸 왜 그렇게 미뤄왔을까 후회가 들면서도 러닝 머신을 뛰고 상하체 근력 운동을 할 때면 옛날의 감정이 올라와 설레기 시작했다. 또 현재 몇 킬로, 몇 분째 달리고 있는지 보고 있으면 스스로에게 목표를 정해주는 것 같았고, '몇 초만 더'라는 생각으로 끝까지 뛰어 그 시간을 넘으면 내 자신이 뿌듯했다. 참 신기했다.
'드디어 좋아하는 것이 다시 생겼다.'
불안해하면서도 미루기만 했을 때,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간절함은 있지만 행동력이 없다'라는 말을 했을 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 내면엔 두려움이 컸다.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삶에 무언가가 더해져 달라진다는 게, 내 스스로를 움직이려 한다는 게 두려웠다. 어릴 적 이상향에 도전했다가 절망감에 피폐해진 것이 원인인가 싶다가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하길 바라는 내 자신이 싫었다. 어쩌면 게으름이란 핑계를 두려움으로 둔갑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를 생각할 때가 아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묻기도 한다.
어떻게 되었든 운동 하나는 시작했다. 이 사소한 것을 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불안이 꽤 컸나 보다. 하지만 어려울 것이라 두려워했던 것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간단한 일일 수도 있다. 이렇게 불안이 설렘으로 승화된 것을 실감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자기 전 내 머릿속에서 맴도는 걱정거리 중 하나를 없앤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불안이 설렘으로 바뀐다면 한 단계 위의 목표를 생각해 내는 힘이 생긴다. 그런 의미로 헬스장을 몇 개월간 다니고 나면 좀 더 익스트림한 운동에 도전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