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다른 삶을 보는 것
정지영의 거리의 악사, 지금까지 본 그의 영화 중 그나마 순하다. 불륜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동안 나온 정지영의 소재(전쟁, 고문, 비리, 표절)들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니 순한 것이 맞다.
영화는 연애 문제로 방황하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철없는 도련님과 거친 대학생이 그 사랑 대상이다. 도련님인 윤수는 흔해빠진 재미없는 캐릭터라 뭐라 쓸 건 없다. 대신 대학생 정태는 꽤 흥미로운 캐릭터이다. 거칠면서도 상냥함과 책임감이 있는 성품이 마음에 든다. 사실 이런 캐릭터는 클리셰로 분류해도 될 흔한 유형이지만 워낙 호감 가는 설정이라 문제로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가 그리 특별한 스토리를 품은 건 아니다. 불륜을 빼면 크게 자극적인 건 없고 불륜의 그 정도가 약하다. 어떤 가정에선 실제로 있을지도 모르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이 평범하면서도 독특한 여인과 가정을 지켜보는 건 나쁘지 않다. 게다가 엔딩에서 확정된 주제가 인상적이다.
영화에서 중요한 대사가 세 번 나온다. 첫 번째는 일제와 전쟁 세대인 부모에 대한 동정심, 두 번째는 산업화 시대에서 자신들은 미래를 위한 과도기라는 사명감, 세 번째는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감이다. 특히 세 번째는 친자가 아니어도 사랑하는 사람의 자식이고 미래를 위한 아이이니 아름답게 키울 것을 다짐하는 게 상당히 머릿속에 각인된다. 저 세 개의 대사를 생각하면 영화는 미래 세대에 대한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느낌이다. 이게 원작자의 의도를 따른 건지 정지영의 의도도 들어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정 감독의 영화 중 상당히 선해서 흥미로운 편이다.
정지영의 영화를 많이 보고 싶기는 한데 필름 문제인지 많이 보이지 않는다. 다른 건 옛날 영화라 납득은 하는데 비교적 최근작인 까는 왜 안 보이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