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사극
광개토태왕은 불량식품 같다. 그 맛이 저품질인 것이 저절로 느껴지지만 미묘하게 그 맛이 나쁘지 않다. 뛰어나지 않으면서도 버릴 수준이 아닌 것이 참 묘하다.
일단 이 드라마의 고증은 개판이다. 기록 부족과 극적 재미를 핑계로 고증을 크게 무시하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삼한 시절 작품들도 그럴 것 같지만 안 봤으므로 말은 안 하겠다. 이걸 문제 삼으라면 크게 삼을 수 있다. 근데 이건 교훈과 정보를 위한 다큐가 아니다. 예술과 재미가 중요한 드라마이다. 즉 교육용이 아니니 고증이 장식까지는 아니어도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약간의 아쉬움은 남을 수 있지만 큰 흠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애초에 이것 말고도 깔 거리는 많다.
광개토의 스토리는 좀 싸구려이다. 주인공 담덕의 왕자 시절은 전쟁, 정치 갈등, 외적들의 음모 이 루틴이 대다수이다. 왕이 된 이후로도 크게 바뀌는 건 없다. 정적인 국상이 사라져서 고구려 내부 갈등이 거의 사라지고 외국의 내부 갈등으로 대체된 것이 약간의 변경점이다. 이 루틴의 밀도가 높으면 상관없지만 문제는 그 밀도가 낮다는 점이다.
전쟁은 옛날 설화에 나오는 싸움 수준을 약간 개선한 정도이다. 각종 계략도 현명하지 못한 걸 넘어서 멍청할 정도로 허술하다. 정치 갈등은 전쟁보다 낫지만 캐릭터들 수준이 낮아서 훌륭함은 없다. 외적들은 같은 한민족인 백제를 제외하면 삼류이다. 외국의 내부 갈등이 그나마 흥미 있게 묘사된 것이 다행이다. 특히 반란 묘사의 박진감이 나쁘지 않다. 물론 이것도 잘 쓰여진 각본은 아니다.
위에서 잠깐 말한 캐릭터 설정에 좀 문제가 있다. 클리셰 투성이인데, 이게 나름의 멋과 귀여움을 주기는 하지만, 캐릭터를 기계적으로 보일 만큼 단순하게 만들었다. 싱싱하지가 않다.
주인공 담덕은 너무 이상적인 왕이자 장군이라서 그렇게 인간적이지는 않다. 그래도 이건 실제 광개토 대왕이 위인이라서 큰 문제는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조연들이다. 여석개와 설지를 비롯한 아군은 물론이고 모용보와 개연수 같은 적들도 다 일차원적이다. 착하고 의리 있는 캐릭터들은 끝까지 그 의를 단순하게 지킨다. 음흉하고 포악한 것들은 끝까지 못난 악인으로 남는다. 특히 왜나라 애들이 너무 한심하게 나온다. 배우들의 어색한 연기는 덤이다.
근데 이런 단점들이 몰려있음에도 이상하게 감상할 때는 재미가 있기는 있다. 물론 대단한 재미는 아니지만 껌처럼 계속 씹어줄 가치는 있다. 맞는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막장 드라마 즐기는 거랑 비슷한 감정이 아닌가 싶다.
소품, 세트, CG, 언어도 거슬리기는 하지만 이건 제작비와 환경을 생각하면 비판하기 미안해진다. 액션은 보는 즐거움이 어느정도 있기는 하지만 크게 적을 거리는 없다.
아까 말했듯이 광개토태왕은 막장 드라마처럼 욕하면서 즐기는 드라마인 듯하다. 이상하게 잔재미가 있는 것이 참으로 기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