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이나 스탈린이나
꽤 좋은 영화이다. 직접적인 폭력 대신 그 상흔으로 사회의 처참함을 알려주고 삭막함이 그 사회와 책임자의 공포를 일깨워 준다.
스탈린의 대숙청 시대라는 큰 사건을 다룬 영화이지만 지금도 유효한 작은 문제도 세심하게 포착했다. 사회초년생의 실수와 그로 인한 곤혹인데 이게 세심하게 나오니 공감되면서 인상깊다. 극에서 젊음과 정의의 열정만으로 움직여서 생기는 실수는 많이 봤다. 근데 이건 별거 아닌 일에서도 벌어지는 실수나 약간의 망신을 자잘하게 보여주니 큰 사건을 겪은 적이 없는 사람도 공감가게 만든다.
스탈린과 소련에 대한 증오도 영화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상 주인공을 제외하고는 냉정하고 속물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상은 스탈린의 책임이다. 사실 기차 안에서 썰 푸는 노인 얘기를 들어보면 레닌도 스탈린보다는 나아도 결국 상류층이고 엘리트라는 사실을 직시한다. 공산주의랑 사회주의를 떠들어 봤자 그들도 권력자이니 피지배계층의 권리에는 크게 관심 없을 것이다. 소련 배경 영화이긴 하나 북한같이 지금의 여러 독재 국가들한테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코르녜프 정도는 정의롭다고 쓰기는 했지만 위의 기차씬을 보면 그도 외면하고 침묵하는, 비겁한 면이 있다. 레닌 욕해서 불편한 건지 그냥 타인한테 관심이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노인의 썰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종국에는 사람이 얘기하고 있는데 잠까지 잔다. 졸려서 그런 거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외면하고 싶어서 잠든 척한 것이면 비겁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정의와 열정이 넘치는 그도 결국 인간이다. 영화가 참 섬세하다.
영화의 엔딩이 좀 클리셰적이긴 하지만 딱히 그게 단점이 되는 영화는 아니다. 보여줄 건 꽤 재밌고 의미심장하게 보여줬으니 이 영화는 성공이다. 그 클리셰도 영화가 추구하는 것과 알맞기는 해서 어울리는 끝맺음이기도 하다.
그닥 관심 없던 소련사에 대한 관심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