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섬광의 하사웨이 키르케의 마녀(2026)

파멸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구나

by 화문 김범

이번 섬광의 하사웨이는 과시적으로 보일 정도로 전작보다 야심차다. 제타와 다른 느낌으로 음울한 것도 좋고 리얼리즘 분위기를 추구하고 표현하는 방법도 탁월하다.

혁명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싶을 정도로 캐릭터의 심리를 파고드는 영화이다. 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의 욕망을 잘 포착했다.

하사웨이는 주인공이고 우상화도 진행되는 메시아격 리더이지만 그 내면은 썩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망가져 있다. 겉으로는 리더로서의 위엄을 유지하면서도 속세와 성욕에 휘둘리는 모습도 영화가 숨기지 않는다. 특히 중후반까지 망가진 마음이 점점 새어나오다가 뉴 건담과의 만남으로 터지는 클라이맥스 액션이 진국이다. 이것도 근본은 토미노의 건담이다 보니 뭔가 결함이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이런 묘사도 역시 재미로 이어진다.
역시 완벽한 주인공 보다는 이런 결함 있는 주인공이 나오는 작품이 재미의 참맛을 보여준다. 물론 완벽한 주인공도 재미없는 건 아니다. 그래도 입체성을 즐기는 데에는 결함 있는 주인공이 제격이다.

다른 캐릭터들의 내면 묘사도 좋다. 히로인인 기기와 서브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케네스는 물론이고 조연들도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영화를 풍요롭게 만든다. 특히 기기는 사랑에 흔들리고 돈으로만 볼 줄 알았던 백작을 동정하는 등 입체적 묘사가 인상적이다. 다른 여성 캐릭터들도 남자나 성적인 일로 묘한 행동을 보여서 영화에 대한 흥미를 유지 시켜준다.
캐릭터의 장식에 가깝기는 하지만 건담답게 혁명과 정치에 대한 토론도 흥미롭게 말하고 있다.

액션은 기대 이상으로 재밌다. 물론 다른 건담 액션만큼 미려한 작화를 보여주는 건 아니다. 3D라서 2D만한 액션을 선사할 수 없고 디자인이 복잡하니 3D 액션도 화려하지는 않다. 화면도 많이 어두워서 피아식별이 잘 안되는 경우도 좀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액션이 인상적인 것은 현란한 카메라 워킹과 적극적인 1인칭 시점이다.

연출과 배경 미술을 포함하여, 전반적으로 리얼리즘 분위기를 추구하는 작품이라서 모빌슈트 액션도 현실적인 느낌을 낸다. 다른 건담들과 달리 격투나 검술같이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기 보다는 미사일과 사격을 위주로 싸운다. 초능력 대전도 안 나온다. 때문에 액션이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화려한 촬영으로 묵직하면서도 빠르다는 인상을 줘서 그런 단점은 안 보인다. 사실 이게 일종의 속임수를 쓰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보는 눈이 즐거우니 상관은 없다.
전작에서 이어진 1인칭 시점도 여전히 박진감 넘친다. 마치 관객도 모빌슈트를 조종하는 느낌을 줘서 영화가 추구하는 리얼리즘 분위기와 부합하는 면이 있다. 모빌슈트 조종간의 인터페이스가 화려한 것도 꽤 멋지다.

전작과 같은 감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연출이 제법 도전적이고 눈에 띄는 지점이다. 전반적으로 촬영 같은 것이 액션이 아닌 상황에서도 급박하다. 신경질적인 클로즈업으로 감정 표현하는 방법도 애니에선 생소해서 신선한 느낌을 준다.
애니임에도 최대한 실사처럼 보이게 노력하는 것도 주목할만한 지점이다. 조명을 굳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둡게 설정하는 것도 최대한 실사의 느낌을 내고 싶어서 그런 것 같고 일본 애니 특유의 과장된 표현도 잘 안 보인다. 그렇다고 애니적 연출을 완전 배제힌 것도 아니다. 캐릭터의 심정을 대변하는 뮤직 비디오는 꽤 일본 애니스럽다. 실사 느낌도 내고 일본 애니스러운 요소도 쓰는 등 둘의 장점을 합친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덕분에 작품이 좀 다채롭게 느껴지는 편이다.

2부는 원작 내용이 별거 없다 들었고 이 작품 자체가 3편에서 완성된다고 들어서 그렇게 큰 기대를 안 했지만 결과적으론 1편 이상으로 잘 나왔다. 전작처럼 제작진들의 공이 크다.
이 하사웨이는 제타 이후로 거의 오랜만에 나온 음울한 건담이다. 원작의 결말을 생각하면 3편은 파멸일테니 그 우울의 끝을 기대하면 되겠다. 게다가 섬광의 하사웨이는 사실상 전기 우주세기의 최종장이니 여러모로 가치가 있는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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