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수수밭(1987)

붉음은 아름답고 무섭다

by 화문 김범

쨍한 햇빛과 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는 강한 붉은 색 같이, 색감이 매우 인상적인 영화이다. 이 색감은 단순 미관이 되지 않고 격동의 역사에서 겨우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을 대변해준다.

영화는 그저 술을 빚는 민초 무리들을 몇몇 해프닝과 함께 보여주다가 역사적 사건인 중일전쟁의 여파를 담담하지만 섬뜩하게 보여준다. 나쁘게 시작했다가 좋게 가다가 다시 나쁘게 끝나는 구성이 인생 그 자체라서 인상적이다.

나라가 민국, 공산당, 일제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대라서 영화에 나오는 환경은 지금 기준으로 봤을 때는 이색적이다. 동시기의 한국과 일본과는 다른 풍경이라 그런 듯하다.
재산을 조건으로 딸을 환자에게 팔거나 가마를 메고 틈만 나면 민요를 부르는 모습은 당시 중국의 전근대성을 드러낸다. 동시에 공권력이 매우 약하고 도적의 힘이 강하며 일본군이 깽판을 치는 걸 보면 당시 중국의 역사가 매우 험난했다는 걸 알린다. 힘 없는 민초의 인생을 통해서 말이다.
불륜이나 도적의 횡포 같은 해프닝이 있지만 웃으면서 힘차게 살아가는 그들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붉은 색이 되어버리는 건 비극이 아닐 수가 없다. 장예모가 이후에 만든 인생의 작은 버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엔딩은 일식이 일어나서 무서울 정도로 빨갛다. 그동안 나온 붉은색인 장막은 요염했고, 술은 말끔했고, 피는 불쾌했다면 일식의 붉음은 공포이다. 발생한 상황과 이후 일어날 고난(독박육아와 격동의 중국 현대사)을 생각하면 이리 적절하지 않을 수 없는 색이다. 붉은 수수밭이라는 제목은 이렇게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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