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내 어릴적 놀던 제주는...

나의 제주 이야기.

by 좌충우돌 산장일기


*함박눈이 자주 내리던 그 시절.

1970년대 중반, 제주 서쪽에 자리한 작은 읍내.

지금과는 달리 겨울이면 함박눈이 많이 내리던 우리 동네는 근래에 2차선 신작로가

새로 개통이 되었다. 그러나 버스와 트럭 이외에는 통행이 거의 없던 시절,

뒷산 민드레기 오름에서 눈썰매를 타던 동네 아이들은 어느 날부터 매끈하게

깔린 신작로로 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신작로 풍경은 마치도 하얀 천국에

알록달록 빵모자들이 공중을 붕붕 떠다니다 못해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6살, 어리다는 이유는 나는 난로가 켜진 가게 안에서 그 모습들을 지켜보았다.

유리창 너머 보았던 그날의 새하얀 세상과 행복한 아이들의 모습은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보다,

햇살처럼 환하게 아직도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그러나 점차 신작로 주변으로 2층짜리 건물 들어서고 차들이 지나는 모습이 일상이

되어 가면서 어느샌가 신작로 눈썰매장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 아버지의 아침, 거리의 아침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읍내 네거리 중심가에 자리한 건물 1층에 작은 슈퍼와 신문 보급소를 운영 중이던 아버지는 아침이 되면

언제나 한 손에는 걸레, 한 손에는 빗자루를 들고 구석구석 쓸고 닦으셨다.

마지막으로 가게 앞 도로까지 말끔히 청소한 뒤 먼지가 날리지 않게 호스로 물을 뿌려 마무리, 늘 시원하고

쾌적한 아침을 만드셨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나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아침 풍경은 햇살이 가득한 화창한

어느 오월의 봄날 같은, 말 그대로 생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기억한다.


잠시 후 그렇게 먼지를 잠재운 거리 위로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나란히 있던 동네엔 아침마다 아이들의 물결이 흘렀다.

거기다 하교 시간이 되면 마치 방죽이 터지듯 학교에서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로 거리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슬리퍼를 끌고, 책가방을 흔들며, 교복 윗도리를 어깨에 걸치고 우르르 몰려오는 그들 틈에서 어른들마저 반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폐교 위기를 겪는 지금으로서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 일하지 않는 아이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동네는 또 다른 참으로 신기한 문화가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이다.

쌀농사가 없던 제주는 가을이 아닌 보리가 익어가는 6월이 농번기다.

그러나 학교에서 농번기 방학까지 함에도 불구, 아이들은 밭에 가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동네의 일상은 새벽이면 어른들은 밭일을 나가고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다녔다.

그렇다고 딱히 정해진 놀이는 없었다.

위태롭게 쌓아 올려진 돌담 위를 넘나들어 이 집 저 집 가서 놀다가 친구가 차려준 밥도 얻어먹고

그러다 작살 들고 바다 물에 풍덩 들어가기도 하였다.

또 어떤 날은 탐험대를 조직,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훈련을 빙자한 놀이를 하였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하곤 했다.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 여기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대”

“그래, 우리 할머니도 이 밭은 사람들이 죽은 자리라고 그랬어.

참!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큰일 난다고......”


지나가는 어른들도 "거기 무덤에 올라가지 말라, " 한 소리를 듣는 게 다반사였다.


그렇다고 왜? 무슨 일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다...



* 황혼의 동네 풍경

그렇게 놀다가 해가 지면 읍내는 어느새

오렌지 빛에 가까운 주황색 불빛의 따스한 거리로 변하였다.

여기저기 가게의 불빛들이 밝혀지면 유리창 너머 가게들은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오는 세상 같았다.

새하얀 장식 위에 빨간 꽃잎으로 장식된 케이크가 유독 눈에 뜨이는 빵가게,

과일을 탑처럼 쌓아 올려진 과일 가게,

천장 중심에 미원을 매단 통이 특징인 슈퍼,

두부 판이 큼직하게 놓인 식료품가게, 전파사... 등등

특히 금성사 대리점에 전시된 네, 다섯 대의 브라운관에서 나오는 TV 프로그램은

어린 나조차도 가던 길을 우뚝 멈추게 만들었다.


또 한편 작은 읍내라도 교육에 관심이 많은 곳이라 중,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은

삼삼오오 모여 과외 집으로 향하는데 돌담 사이로 그들을 볼 때면

왠지 또 다른 어른들 세상 같아 몹시 부러웠다.



* 우리의 밤은 낮보다 더 아름답다. (feat. 공터)

그렇게 시간이 지나 흩어졌던 가족들이 얼굴을 마주 보고

TV 앞에 모여 저녁을 먹는데 잠시 후 어김없이 9시 뉴스를 알리는 소리가 들리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아이들은 전봇대가 지키는 공터에 모이기 시작했다.


위아래 5살 차이도 친구가 되는 신비한 공간, 밤에만 느끼는 스릴을 이미 맛보았던

아이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모여, 다음 날이 등교를 해야 됨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신나게 놀았다.

돌담 넘어 날아오는 옆 집 할머니의 물세례에도 또 다른 놀이처럼 신이 났던 그날들.

그렇게 우리는 눈이 쌓이는 한 겨울에도 놀았다.

생각해 보면,

나의 기억에는 함박눈이 쌓여 발목까지 올라온 적은 있어도 비가 오던 날은 없었다.

신기하다.


지금도 명절날 우연히 그들을 만나면 당시를 행복하고 따스했던 추억으로 기억하며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 넓디넓은 공터는 지금 보면 건물 한 채 앉을자리였고

얼마 전 신협 건물이 들어섰다.

그나마 남은 여분의 공간은 사람들이 지나는 길, 골목이 되어버렸다.



* 시작은 돈이었으나... 추억의 공터로.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해 들어온 이곳에 들어왔고 그렇게 운영을 하였다.

그러다 문득문득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행복한

제주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졌다.

그 시절의 제주는 사라졌지만,

조금이나마 아이들의 추억이 자라날 공간으로 이곳을 꾸미고 싶어진 것이다.

즐거운 밤놀이 공간,

어른들에게는 어린 날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는 공간.


산천초목이 변해가는 제주에 통탄하기에는 지금도 아름다운 곳이기에

제주를 알리고 지난날 행복한 추억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나는 운영을 해 나갈 것이다.

어떻게 변하게 하겠다는 다짐 뭐 이런 건 없다.

그저 그냥 그렇게 하고 싶고 하게 된다.


사람들이 제주살이 끝나서 다시 본디로 돌아갈 때 좋은 추억 많이 쌓아 갔으면 좋겠고

훗날 어려울 때 문득 제주에서의 추억이 생각나 입가에 미소가 잠시나마 머물렀으면 좋겠으며

또 제주 가면 친구 있다! 그 느낌 하나만으로도 든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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