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호수로 별 보러 가요!

오늘 밤도 다들 정원에 모였다.


1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툭 내뱉는 말.


"오늘은 별이 보이지 않네."

"그러게, 오후부터 구름이 꼈는데... "


그리고 하늘을 보는데

문득, 떠오르는 옛 추억 하나.




20대 청춘.

성당 동기들과 술 한잔 나누면,

우리는 어김없이 이시돌 목장 호수로 별 보러 가는 게 국룰이었다.


이시돌 목장에 자리한 새미 오름.

그 오름 꼭대기에 자리한 호수.


호수 주변으로는 숲이 빙 둘러 싸여있어

요새처럼 숨겨진 안식처다.


일렁이는 물결에 별들이 춤을 추고

호수를 감싼 달빛과 폭포 소리까지 신비로운 곳.

비밀의 호수.


문득 그곳이 다시 가고 싶어졌다.
아니 우리 손님들과 그곳을 공유하고 싶은 나의 욕망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오늘 가보자!!'


그리고 나는 거침없이 외쳤다.


"우리, 이시돌 갑시다!"


나의 맥락 없는 제안에 황당한 남편!

지금 이 시각에 어딜 가냐고 난리다.


"엄마들끼리만 갈게, 1시간 안에 돌아올 테니까 걱정 마."


다른 집 아빠들은 다녀오라는데 홀로 반대하는 남편.


"1시간 안에 돌아오면 당신이 치킨 사!"


그리고 걱정이 한가득인 남편을 뒤로하고

당당하게 다른 엄마들 세 명과 함께 차에 올랐다.



차는 평화로를 달렸다.

달릴수록 가로등 불빛이 점점 줄어들고,

어둠이 짙어질수록

마음은 묘하게 들뜨고 우리 네 사람, 차 안에서 마냥 신났다!


차는 어느새 목장 진입로에 들어섰고

10여분을 더 달려 새미 오름을 향해 숲 길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아 설렌다!

이렇게 온 게 얼마만인가?'


젊은 객기로 한밤중에 오던 이곳을 손님들과 함께!

옛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한편 또 다른 사람들과 추억을 나누게 되다니,

이들도 나처럼 이곳을 추억이란 이름으로 자리매김하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뿌듯하다.


'그래, 힘들지만 숙박업 하길 잘했어!'


그간 이래 저래 힘든 일도 많았던 나 자신을 또닥또닥...

추억을 나누어주는 일이 보람 있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윽고 차는 나무가 울창한 숲 근처에 멈추었다.

이제 조금만 걸어 언덕을 오르면

눈앞에 곱디고운 호수가 펼쳐질 것이다!




숲.

인가 및 인기척, 하다 못해 가로등도 없다.


한 명, 두 명, 차 문을 열고 내린다.

나 역시 차에서 내리려는데 발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아파서는 아니고 모르겠다.

왜지.......


"언니 내려요."

"응"


그리고 간신히 뻗은 손으로 문고리를 당겼다.


다른 사람들은 차 밖에서 내가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열린 문으로 발 하나를 땅에 디뎌 몸을 세우는데.

세우는데...

세우는데!

다리에 힘이 풀렸다.



검은 숲


가로등은커녕 실빛조차 없는 숲.

칠흑 같은 어두운 숲.

끝없는 묵직한 어둠.


엄마들은 스마트폰 조명에 의지하며 앞서 걷고 있다.

걸을수록 그녀들 뒤로 검은 그림자가 길게 뻗는데,

순간 무언가 '훅!' 다가오는 게 아닌가!?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그래! 그때는 여자들끼리만 오지 않았어,

남자애들도 잔뜩 있었고 달도 휘영청 밝은 밤이었어!'


생각과 함께 순간 등골이 오싹!

온몸이 굳어 버렸다.

sticker sticker


"언니, 뭐해요? 빨리 가요!"


앞서가는 엄마들은 가자고 나를 재촉한다.


'아, 어쩌지... 어, 어쩌지.......!'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단 하나뿐.

차문을 여는 것!


찰나의 속도로 문을 열고 나는 차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의 행동에 다들 놀라 외친다.


"언니이이이!!"


다들 창문을 두들리며 나보고 나오라고 난리다.


"아니, 나 못 가아 아아!!"


"언니 나와요! 여기까지 왔는데."


"아니 아니, 나 못 가."


사람들 앞에서는 겁 없는 척했지만

체육 시간에 뜀틀 한번 넘어 본 적 없는 나다.


"나 못 가! 못 가!!"


"호수에 별 보자며?"


"별 없어! 없어, 없어!"


못 간다고 외치며 차 문을 잠갔다.

엄마들은 가보자고 창문을 두들긴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 치다 포기한 엄마들은

이제는 차 문이라도 열어달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그녀들도 차에 오른다.

숲 공포체험만 한 채...


차는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쏜살같이 목장을 빠져나와 평화로에 진입하였다.





숙소에 도착.


차에서 내리려는데 사람들의 질문이 벌써 들려오는 듯했다.


우리 네 사람,

'호수에 별이 예뻤다고 하자.'라고 입을 맞췄다.


그러나 궁금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결국은 공포체험만 하고 왔다고 이실직고.


그 순간 남편,


"내 그럴 줄 알았지! 구름이 꼈다 꼈어, 별이 있겠냐고오!!"




하긴, 지금 생각해 보면

별이 없는 밤에 무턱대고 간 내가 문제였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날 밤의 공기와 심장 뛰는 떨림은

또 하나의 별처럼 내 기억 속에 반짝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터진 웃음,

더불어 손님들과 나눈 또 다른 숲의 추억,

그리고 그날의 설렘까지.
별이 없어도, 충분히 빛나는 밤을 만들었다.

그걸로도 또 다른 추억이 되었다.


숙박업을 하면서 추억을 나눌 수 있다는 게 가장 보람 있는 일이다.




그날의 엄마들은 이야기한다.


“언니, 별 있을 때 꼭 가요!!”


그래, 우리 꼭 다시 도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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