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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특파원 Oct 16. 2024

북경에서 살?아남기

해외여행 처음 가보는 한국인, 북경 여행기(2)





























북경에서의 첫날... '움츠러듦' 그 잡채



한국에서는 '나 그래도 HSK 5급이야' 하며 어깨에 힘주고 다녔다. 그러나 북경에 왔더니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중국 사람들은 HSK 200급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륙인들은 목청은 왜 또 그렇게 큰 건지. 한국에서는 깨나 목소리 크다고 평가받는 경상도 출신이었으나 대륙 주민들에게는 감히 명함 내밀기 힘들었다. 언젠가 책에서 '중국에서는 크게 말하는 게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여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런 문화와 연관 있을 듯하다.


베이징에서는 여기저기서 붉은색 간판이 눈에 띄었다. QR코드 결제는 낯설고 생경했으며,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은 이용방법은 온라인에서 파악했으나 실제로 도전해 보자니 두려웠다. 세상 쫄아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숙소에 도착해 짐 풀고 나니 긴장이 좀 풀렸다. 문득 저녁식사를 하자고 생각했다. 첫 비행기 탑승으로 긴장한 나머지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기내식이 소화된 듯했다. 숙소에서 나와 약 5분쯤 주위를 둘러보다가 인근 현지식당으로 들어갔다.




북경에서의 첫 식사. 언어 문제로 골머리 앓았던 기억이 있다.



금요일 저녁 북경 식당. 이 도시에는 '불금'의 개념이 없는 걸까. 혹은 중국 특유의 '996 문화' 때문일까. 아무튼 너덧이서 모여 맥주 까고 있던 한두 테이블 외에 식당은 한산했다. 


자리 잡고 멀뚱멀뚱 앉아 있으니 직원으로 보이는 중년여성이 도통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흘깃흘깃 쳐다보기만 할 뿐... 이때까지만 해도 북경에서는 핸드폰 QR코드로 메뉴판 스캔해 알아서 시켜 먹는다는 그 사실을 몰랐다.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박절하게 대한다고!!!!!!!' 하는 서운함으로 식당 직원분을 불렀다. 그러곤 '请给我菜单(메뉴판 주세요!)' 했더니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뭐라뭐라 하고 주방으로 향한다. 이윽고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테이블로 오더니 메뉴판을 가져다줬다.


한자 까막눈이었기에 음식 사진에 주목했다. 이때는 구글 렌즈나 파파고 이미지 번역 등에 대해 전혀 몰랐던 때라... 다시금 '老板!(사장님!)' 하고 불렀더니 중년 남자분이 또 오신다. '这个 可以吗?(이거 가능합니까?)'하며 유창한 초급중국어회화 실력을 뽐냈더니, 식당 주인분은 '好好(하오하오)' 하고 주문을 받았다.


북경 첫 현지음식은 본인 입맛에 꼭 맞았다. 서울에서 먹던 음식보다는 확실히 간이 센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맵고 짠 음식을 먹는다고 알려진 경상도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내가 가봤던 북경 현지식당들은 대개 물을 구매해서 먹어야 했던 게 달랐다.


북경에서 첫 식사를 마치고 식당 카운터에서 알리페이 결제까지 마쳤다. 나중에 한국 귀국해서 이러한 이야기를 중국 친구에게 전했더니, 친구는 "테이블에 QR코드 못 봄? 님 진상으로 보였을 듯"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그러한 짐작을 북경 여행 이틀 차쯤 어렴풋이 했다. 왕푸징 거리 KFC 들러서 테이블에 있던 QR코드로 주문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문득 전날 식당에서 내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던 식당 직원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하여튼 부끄러움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니 하오? 나는 여행객"... 본격 북경도심 탐험



몸과 정신은 연결돼 있다고 했다고 했다. 고단했던 첫 출입국을 마치고 이튿날 아침이 밝아 왔다. 숙소에서 푹 자고 일어났더니 전날 느꼈던 두려움이나 불안감 따위는 온데간데 없어진 듯했다. 오히려 배낭 주섬주섬 싸면서 카메라 셔터 누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다.


숙소 나서면서 프런트 데스크에 있던 직원에게 '택시 어떻게 타용?' 하고 물어봤다. 전날 북경 택시와 관련해서 검색해 보고 핸드폰에 어플까지 깔았는데 작동을 안 한다. 구글 플레이스토어가 아니라 중국 어플장터 같은 데서 깔아야 하는 건가, 뭐 그런 생각이 들어서 물어봤다.


그 직원은 아~주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응대했다. '손님이 왕'이라고 배운 한국 사람으로서는 낯선 모습이었다. 그는 자기 핸드폰으로 알리페이 키고, 알리페이에 디디추싱을 검색하고, 위치와 목적지 설정하는 것까지 보여준다. 그러고는 이해했냐고 묻기에 '씨에씨에(감사합니다)' 연타로 화답했다.


내가 어플로 다운받은 디디추싱 어플을 보여줬더니 '이거 필요없음' 한다. 언어장벽은 여전했지만 우리는 비언어적 행위로도 충분히 소통했다(고 믿는다). 


거듭 씨에씨에 연타하고 호텔 프런트에서 나갈 채비를 하니 그 직원이 '근데 님 아침은 드심?'하고 묻는다. 엥? 아침밥이 있었나? 하며 번역기 돌려서 물어봤다. 그 직원이 '어제 체크인하실 때 식권 줬잖아요' 한다. 아 그게 식권이었구나, 내일부터 먹을게요, 뭐 그렇게 답했다. 


웃음기 쫙 뺀 서비스직, 근데 고객 응대 제반사항에는 일체 진심인...?? 뭔가 혼란스러웠지만 나는 이후 북경에서 3일 동안 더 지내보면서 익숙해졌다. 한국 귀국 후에는 해당 호텔 리뷰와 관련해서 '프런트 직원이 친절해요'라는 평가에 꾹 눌러줬다.






본인이 북경에서 3박4일간 묵었던 숙소는 도시 변두리였다. 참고로 북경은 천안문광장을 기준으로 2환, 3환, 4환... 의 순환도로가 도시를 감싸는 구조다. 그 가운데 본인 숙소는 5환 바깥에 위치해 있었다. 반면 본인 이날 첫 목적지는 1환에 해당하는 천안문광장. 


내가 알고 있는 한국 수도권 지리에 빗대어 보면, 이날 내 동선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서 출발해 서울 광화문으로 향한 것과 비슷했을 거다. 


처음에는 양평군 용문면... 아니 북경 5환 쪽에 숙소를 잡은 데 후회했다. 그러나 한국 귀국하고 여행기록을 정리하다 보니 오히려 외곽 지역에 묵었기에 이 도시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도시 중심부와 변두리 간 차이가 극명했기에 말이다.


디디추싱 택시 불러서 처음으로 북경 도심으로 향하는 길. 부산스러운 행동하면서 바깥 구경하고 있으니 택시기사가 '너 어디서 왔냐' 묻는다. 허접한 중국어로 "나 한국 사람인데 중국 처음 와봄 ㅎㅎ"했다. 


출장 왔냐기에 아뇨 걍 여행왔는데요 하니, 택시기사는 뉴비 만난 고인물마냥 주행 중 도심 건물들을 중국어로 설명해 줬다. 나는 당시 10마디 중 8마디 정도는 못 알아들었지만 아무튼 열심히 듣고 호응했다. 


그런데 본인 처음 목적지를 천안문 인근으로 설정했는데, 정작 택시에서 내리고 보니 동화문 앞이어서 약간 난감했다는...













사회주의의 심장, 북경



북경 2환에 들어선 이후 나는 수첩에 "사회주의의 심장, 북경"이라고 메모했다. 


세계에서 손 꼽히는 대도시. 근데 이곳 도심에서는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마천루라거나 통유리 빌딩이 안 보였다. 내가 목도한 건물 중 그나마 가장 높아 보였던 건 눈대중으로 20층이 안 돼 보였다. 


대신 이 도심이 굉장히 넓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중 백미는 당연히 천안문 광장이었다. 도심지에서 '광활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한국 서울에서는 도심 공터마다 건설사들이 줄곧 빌딩을 올리려 혈안이고, 땅 주인들도 이를 활용해 부동산 차익에 신경 쓰는 듯한 모습을 보여줘 왔으니... 북경 도심의 광활함에 놀란 건 한국인이라서 특히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북경이 서울에 비해 넓은 도시다 보니 뚜벅이 여행객으로서 약간 애로사항이 생기는 부분도 있었다. 카카오맵에서는 500m 정도로 여겨지는 거리표시계가 고덕지도에서는 2~3km로 나타났던 거다. 스마트폰에 나타난 지도만 보고 뚜벅이하다가 몸이 상당히 고단해지기도 했다.






토요일 오전, 북경 도심은 여행객들로 북적북적했다. 이날 내가 본 중국인들은 북경 처음 들른 한국인들과 표정이 비슷했다. 연신 관광지 풍경을 눈에 담는 데 주력하고 있었고, 핸드폰카메라 등으로 기록 남기는 데 바빠 보였다.


관광지다 보니 중국 전통복장을 입고 있던 사람들도 상당수 보였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한복 입고 돌아다니는 외국인들과 비슷한 맥락이었을 듯하다. 


다만 달랐던 점은, 한국에서는 주로 동남아/서양 등 외국 사람들이 한복 입고 서울 도심을 누빈다면 북경에서는 전통복장 차림새를 한 대부분이 중국인이었다는 것에 있다. 내수만으로는 경제 성장을 꾀하기 어려운 국가와 내수만 잘 굴려도 어느 정도 경제 계획이 세워지는 국가 간 차이가 아닐까.


언젠가 한 경제방송에서 들은 이야기. 중국 전문가가 출연해 '중국인들이 연휴를 맞이하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도시가 어디인지 아시느냐'고 방송 진행자에게 물었다. 진행자는 '뉴욕이나 파리, 도쿄 같은 곳 아니겠느냐'고 답변했다. 그랬더니 중국 전문가는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정작 중국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도시 1위는 베이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한중21 보도를 살펴보면, "중국 중추절 최대 관심 여행지 1위 '베이징'"이라는 기사가 있다. 중국 사람들이 평생 다 못해볼 일 중 하나가 중국 모든 곳을 여행해 보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북경 여행 와중에 대륙의 스케일에 매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사실 경상도 촌놈으로서 이전까지 한국이 그렇게 작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한 국가에 서울 이상의 도시(북경, 상해, 충칭, 선전 등)가 여러 개 있다는 대륙 스케일을 절감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세상이 '조중동' 대 '한경오' 정도로 나뉘는 줄 알았던 사람이었는데, 그것보다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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