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처음 가보는 한국인, 북경 여행기(3)
"没办法(방법이 없네요)"
언젠가 중국 유학을 다녀온 한국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 그는 상해에서 대학 생활을 했는데 학사행정 등으로 대학 직원을 찾아가면 '방법이 없다'고 반복해서 치가 떨렸다고 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이야기였는데 내가 중국에서 아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
한국인이 '시옷비읍' 시전하자 일본인이 "헤에, 본토의 시바루!"라고 반응했다던 일화처럼, 나는 중국인의 '방법 없음'이라는 얘기에 귀가 쫑긋해져 있었다.
약 1시간 기다려 다다른 자금성 입구. 나는 이곳 입구에서 꽤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입장티켓 현장 구매가 가능하겠거니 막연히 생각하며 줄곧 입장줄에서 대기해 왔다. 외국인 신분인 데다가 수중에 중국 현금도 있었다. 우여곡절 있더라도 당연히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금성 입구에서 관계자가 '입장권 없으시냐'고 물어보는 상황을 상상했다. 이에 대해 "저 외국인인데 어디서 입장권을 사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여기서 현금 지불하고 입장하고 싶습니다"라고 답변하는 시나리오까지 그렸다. 불쌍한 표정 짓는 건 최후의 보루였다.
문제는 자금성 입장이 인터넷 예약제 'only'였다는 점이다.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신분 확인도 편리하고 QR코드 사용에도 익숙하니 별 불편함이 없을 법했다. 그러나 북경 처음 들러본 외국인 입장에서는 QR코드 입장은 예상 밖에 있던 상황이었다. 어쩐지 관광지 입구에 티켓 판매소가 없더라니...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첫 여행일정부터 '입뺀' 당할 위기에 처했다. 더구나 공식적인 북경 여행 첫날이었다. 가장 먼저 자금성을 들렀던 건 당연히 이곳 일정이 가장 주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1시간 넘게 기다려서 겨우 도착한 입구,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본인은 관계자에게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저 외국인인데 무슨 이야기하시는 건지' 등의 이야기를 전했다. 참고로 '무슨 이야기'에 관한 부분은 본인이 중국어에 미숙했던 관계로 팩트 기반이다. 나는 들여보내 줄 것 같은 분위기일 때는 알아듣는 척했고 못 들여보낸다는 뉘앙스에는 못 알아듣는 척했다. (결국 못 알아들었다는 이야기다) 선택적 의사소통에 나선 셈이었다.
내 입장줄을 관리하던 남자 공안은 영어가 미숙했고, 입장을 학수고대하던 나는 중국어가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내게 남색 표지의 여권을 돌려줬다. 이윽고 그가 다른 공안을 부르자, 나보다 키가 큰 여자 공안이 다가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후에 도착한 공안과는 영어 대화가 충분히 가능했다. 당시 그 공안의 설명에 따르면, 자금성 입장은 Wechat으로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것이고 오늘 예약인원은 마감됐다는 등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북경 초행객은 이내 '근거를 제시하는 하소연'을 시전했다. 본인이 한국에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때 자주 구사하는 생존 방식이다. 1)자신이 처한 상황을 간곡하게 전달하고, 2)본인이 왜 이것을 부탁하는지 설명하며, 3)내 부탁을 받아들여 줬을 때 상대도 이득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혹자는 '우리는 그걸 진상이라고 부르기로 약속했어요'라고 짚는다. 상당한 통찰력에 박수를 보내드린다. 다만 이 근거를 제시하는 하소연이란 대화 상대방의 감성과 이성을 같이 건드리는 기제다. 비록 구구절절함으로 이어질지언정 국민주권주의를 채택한 한국 사회에서는 성공률이 상당한 소통 방식이었다. 내 경험상 50 대 50 정도?
내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상대 뇌리 속 인간극장 BGM을 재생시킬 수 있을 때 '이게 되네?' 하는 일들이 벌어지곤 했다. 물론 그 결과까지 도달하는 과정에서는 팩트로 MSG를 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문답법을 활용했고, 고대 아테네인들이 수사학을 강조했다면, 방구석 특파원은 '근거 하소연'을 구사했다.
나는 공안에게 "자금성 구경을 손꼽아 기다려 왔어요"라거나 "수중에 중국 현금 만땅인데 여기서 입장권 사고 싶어요", "이쁜 사진 찍어서 한국에 공유할 거예요" 등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내 한국식 생존 방식은 만리타국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그 공안 입장에서는 정말 방법이 없다는 분위기를 시종일관 보여줬다. 'I'm sorry'라는 어구로 시작해 '님은 자금성 못 들어감'이라는 말을 돌려 돌려 반복했다.
- 나 들여보내 줘! / 아무튼 안 됨
- 나 자금성 짱 기대함. 사진도 잘 찍어! / 어쨌든 입장은 못함
이러한 대화가 돌림노래마냥 반복됐다. 비록 상대 표정은 미안함보다 무뚝뚝함에 가까워 보였지만...
몇 분간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결국 본인은 "我的天哪(오 마이 갓)"으로 시작해 "我很伤心(저는 매우 슬퍼요)"로 끝나는 초급중국어작문 시간에 나올 법한 문장으로 체념 의사를 밝혔다. 그랬더니 공안은 "没办法(방법이 없네요)"라고 어깨를 으쓱했다.
자금성 입구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길. 입장줄은 꽉 차 있는데 퇴장줄은 나 혼자였다. 화려한 시선이 나를 감싸는 듯해서 고개 푹 숙이고 나왔다.
상당히 아쉬웠지만 별 수 없었다. '중국어가 조금 더 유창했으면 설득할 수 있었으려나' 등의 상상을 해보면서, 동화문 방향으로 돌아갔다. 비록 자금성 구경은 못한 여행객 신세였지만 어쨌거나 어딜 가도 처음 보는 풍경들이 이어졌다. 금세 기분이 괜찮아졌다.
오전 일정이 갑자기 텅 비게 되면서 시간이 생긴 상황. 북경 도심을 거닐어 보기로 했다.
2월 말~3월 초 북경에서 들이쉬는 공기. 같은 시기 한국에서 들이마셨던 것에 비해 조금 더 시리고 시큰했다. 한국인 입장에서야 이 한기가 새로웠지만 북경 사람들에게는 일상인 듯했다. 봄기운이 도시 곳곳에 곧 스며들 시기가 도래할 텐데 사람들은 여전히 패딩 차림이었다. 또 상당수 사람들이 모자(후드 포함)를 착용하면서 보온에 신경 쓰는 듯한 모습을 보여 줬다.
북경인들의 보온과 관련해 백미는 오토바이 담요였다. 형형색색의 바람막이를 두르고 있던 오토바이들 모습은 상당히 신기했다. 그 색깔도 각양각색이었는데 무채색부터 시작해 분홍색, 노란색, 하늘색, 회색 등... 없는 색깔 찾는 게 더 힘들 정도였다.
아울러 여러 담요에는 아기 이불에 그려진 무늬들처럼 곰돌이, 고양이 같은 캐릭터들이 많이들 그려져 있었다. 나는 속으로 '북경 사람들은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속으로는 귀여운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 추론을 검증할 방법은 없었지만.
나는 북경 오토바이 부대들이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담요부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만큼 북경 겨울은 춥다는 얘기겠다.
북경 자금성 일대. 이곳은 한국 인사동 일대와 비견할 법하다. 고층 빌딩은 거의 볼 수 없고 옛 문화 형식을 살린 건물들이 줄이어 있으며, 전통복장 차림을 한 관광객들 모습이 많이 보여서다. 다만, 서울과 달리 북경은 빨간색-노란색 이외에는 도시가 무채색인 듯해서 약간 쓸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북경 풍경에서는 건물이나 간판 등에서 파란색을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이는 귀국한 이후 사진첩을 정리하면서 깨달았던 사실이다. 역시 빨간색에 진심인 중국 사람들... 이라고 단언하기에는 나중에 다녀온 상해에서는 파란색 천지였기 때문에. 아무튼 중국 참 다채로운 국가다.
역마살 기질이 다분한 사람으로서 북경 도심 '뚜벅이'는 즐거웠다. 구역 구역이 너무 넓어서 '아오, 엄복동하고 싶다!!!!!!'며 한국인 DNA가 발현된 거 빼면 완벽했다. 길거리마다 자전거가 널브러져 있었는데 하나만 빌려보자는 생각이 간절했다. 근데 그 방법을 몰랐다.
이제까지만 해도 단순 여권만 소지한 외국인은 중국 내 자전거 대여가 불가능한 줄 알았다. 그러나 이튿날 단순 해외여행객도 알리페이 자전거를 대여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나는 그냥 뚜벅이에서 '날개 달린 뚜벅이'로 진화했는데, 그건 차차 연재하면서 설명해 나가도록 하겠다.
북경 여행객이라면 흔히 떠올릴 만한 공원들이 있다. 천단공원이라거나 징산공원 등이다.
그러나 이날 북경 뚜벅이가 정처 없이 떠돌던 중에 도착한 곳은 창푸허 공원이었다. 이곳을 종착지로 설정하고 간 게 아니었다. 그냥 걷다 걷다 흘러들어 가게 된 것. 북경 뚜벅이는 자금성 일대에서 출발해 천안문 인근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 길에서 우연히 목도한 공간이다.
창푸허 공원 거닐면서 '이... 이곳은?'(대충 백종원 선생님 표정) 했다. 가장 선명하게 떠올랐던 단어는 '북경 탑골공원'.
토요일 오전 시간대에 중국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계셨다. 근데 어르신들 패션이 상당히 '힙' 했다. 1호선 동묘 인근에서 뵙는 멋쟁이 어르신들의 내뿜는 '힙함'과 비슷했다.
무채색 일변도인 한국 사람들 패션과 달리, 북경 사람들은 오토바이 담요도 그렇고 복장도 그렇고 색깔이 다채로웠다. 근데 도시는 왜 무채색일까? 이건 의문
북경 어르신들은 주말 오전부터 춤사위에 한창이셨다. 나로서는 당연히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는 흥겨운 중국 노래를 틀어놓고 저마다의 파트너와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혹은 그 춤사위를 구경하고 있거나. 그 분위기는 흡사 우리가 고속도로 휴게소 갔을 때 들려오는 트로트와 비슷했던 것이다.
북경에서 처음 맞닥뜨린 광장무 문화였다고 할까. 물론 이날 저녁 왕푸징거리 등에서 진짜 광장무 문화를 보기도 했는데, 이 공원에서 본 건 예고편쯤 될 듯했다.
귀국하고 창푸허 공원 관련 기사를 검색해 봤다. 유명 관광지인 징산공원, 천단공원 등이야 이미 트립닷컴 등에서도 유명하다. 다만 창푸허 공원은 한국에는 거의 소개가 돼 있지 않은 장소였다.
그나마 이 공간에 대한 기사를 써낸 조선일보는 "톈안먼과 자금성, 인민대회당 등 주변 명소들 틈바구니에 낀 이곳을 굳이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은 드물다"며 "홀로 된 노인들이 생의 마지막을 함께 보낼 이성들을 찾는 '노인들의 에덴 동산'으로 불린다"고 설명했다.
나는 '노인들의 에덴 동산'이라는 기사 야마(프레임)에는 의구심이 있다. 조선일보가 어련히 알아서 독자들을 신경 쓰는구나, 그렇게 짐작할 뿐. 다만 이 조선일보 기자가 어쩌다 창푸허 공원에 흘러들어 가게 된 건지 기사 읽으면서 다소 궁금했다. 그도 나처럼 '북경 뚜벅이' 하다가 이 공원에 흘러들어 가게 된 걸까, 혹은 취재원들과 함께 술 마시다가 '뭐 좀 쓸 거 없어요?' 하다가 얻어걸린 걸까... 뭐 그런 게 궁금했다.
자금성에서 '입뺀' 당했을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잘못 끼운 첫 단추 때문에 '로컬'이 아니라면 굳이 들르지 않았을 공간을 가봤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물론 창푸허 공원이 자금성만큼이나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었겠지만, 개인적으로 여행에서 관광지보다 생활 터전에 더 눈길이 가는 이상한(?) 사람이라...
북경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에 비해 남 눈치를 덜 보고 사는 것 같았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자금성 인근에서 분홍색 담요 둘러진 오토바이 몰고 다니던 아저씨들 봤을 때부터, 귀국하는 날 수도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신 듯한 여성 운전기사님 만났을 때까지... 북경에서 줄곧 해왔던 생각이다.
남 눈치 살피는 데 일가견이 있는 반도 태생 사람. 비록 한국 미디어에서는 '무개념' '민폐' '비개념' 등의 이미지로 비치는 대륙 태생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 사람들의 생활에 눈길이 갔다. 대륙 사람들의 행동은 한국인이 보기에 다소 투박하게 보이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 사람들 행동에서 악의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에 그들의 모습은 다소 신선했고 심지어 정겹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