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처음 가보는 한국인, 북경 여행기(1)
옹색한 형편에 자투리 돈 모아서 마련한, 북경행 비행기표였다. 첫 해외여행인 만큼 명시된 비행시각보다 30~40분가량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본인: "비행기 운항시각 08시 20분이잖아요! 아직 40분 남았는데 비행기를 못 탄다구요?"
항공사 측: "출국 수속이 있어서 보통 비행 스케줄 1시간 전까지는 공항 도착해 주셔야 하세요. 성수기에는 2~3시간 전부터 대기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 비행기는 타기 어려우세요."
"40분 남았는데 비행기를 못 탄다구요?"라고 묻는 본인, 인천공항에 처음 와본 한국인이었다...
탑승수속이라거나 출국심사, 보안검색 등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에 해당했다. '이 비행기는 못 탄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방법이 없었다. 내가 잘 알아보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고 귀책사유는 온전히 내게 있었다.
나를 가장 착잡하게 만든 부분은 비용이었다. 북경행 비행기에 탑승하지 못한 상황은 프랜차이즈 치킨 열댓 마리가 홀연히 사라진 꼴이었다. 문득 '북경 그냥 가지 말까'라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아이러니한 건, 본인이 북경으로 향하게 된 것도 비용 때문이었다. 중국비자 발급비와 현지호텔 숙박비, 귀국행 비행기(비록 출국편은 놓쳤지만...) 등을 어찌할 수 없었다. 여기서 북경행을 미루게 된다면 그 손해가 더 막심했다. 여행 일정 꼬이더라도 결국 가는 게 '정배'라고 생각했다.
비행기 티켓 한 장이면 북경으로 향하기에 충분한데, 비행기 티켓 두 장 들고 중국 수도로 향했다. 예상치 못한 지출에 마음이 쓰라렸다. 솔직히, 다른 표 알아보는 과정에서 여행을 초장부터 망친 듯해서 우울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울은 '티켓값 2배 주고 다녀오는 대신에 여행기록을 2배로 남기자'고 의무감 부여하며 회복했다.
실제로 북경 여행하면서 평소보다 2배 열심히 기록했느냐고? 선뜻 답변하기 어렵다. 다만 첫 해외여행 경험이 다양한 브랜드의 치킨 열댓 마리를 각각 뜯어보는 것보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익숙한 모국 땅을 떠나서, 낯선 타국 공기를 맡기까지... 모든 과정이 처음 겪는 일이었다.
국내 출국수속 과정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법무부 출입심사국 직원들이 다소 강압적인 태도로 긴장감 조성하는 듯해서 특히 그랬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2018년 8월 경남 진주에서 만난 공군훈련소 조교들을 떠올렸다. 다만 인천공항 출입국심사대가 대한민국 실질적 국경으로 여겨지는 곳인 만큼, 직원들 업무에 괜히 각 세우지 말자고(직업병임) 속으로 되뇌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면세 지역에 들어갔다.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들뜬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 또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거다.
이곳에서 느낀 감정은 해방감이라거나 설렘, 기대 등의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법하다. 버거킹 인천공항T1점이 행사 제외매장이라 생애 처음으로 와퍼를 제값 주고 먹었지만 상관없을 정도였다. 나는 곧 비행기 타고 해외 갈끄니까, 뭐 그런 생각으로.
'내가 정말 한국 떠나는구나'하고 절감한 건 비행기 탑승구 앞에서부터였다. 이곳에서는 한국어보다 중국어가 더 많이 들려왔다.
아울러 약간 향신료 냄새 비슷한, 자극적인 냄새가 코를 찌르기도 했다. 땀이나 담배 냄새는 아닌 듯한데 도대체 뭘까. 외국인들이 한국인에게 마늘 냄새난다고 하는 거랑 비슷한 걸까. 뭐 그런 단상들을 기록했다.
기내에서는 해외여행을 앞두고 즐겁고 기대된다기보다는... 불안과 걱정이 앞섰다. 옆자리 앉은 중년 남녀 두 분이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나는 전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속으로 'HSK 공부할 때 들었던 중국어랑은 수준이 차원이 다른데?' 하며 진땀을 뺐다.
덧붙이자면, 비행기 추락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사실 좀 했다. 비행 와중에 난기류로 기내가 흔들흔들했을 때 이른바 '쫄았'던 건 덤이다. 상당한 맛집(?)으로 알려진 국내 항공사 기내식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났다.
비행기 이륙 이후 약 1시간 정도 지났을까. 휴대폰에서 해외로밍이 연결됐다는 알림이 나왔다. 중국 통신사 정책에 따른다나 뭐 그러한 설명도 있었다. 이후 3박 4일간 본인 핸드폰에는 한국 시각과 중국 시각이 함께 나왔다.
중국에서 휴대폰을 사용해 보니, 한국과 크게 달랐던 점은 두 가지 정도였다. 하나는 중국 측에서 제공하는 wifi로는 구글이나 유튜브 등이 접속이 안 됐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안에서 휴대폰 촬영이 무음이라는 것.
북경 수도공항 입국심사대. 마스크를 쓰고 있던 입국심사원은 나를 무심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앞서 내게 중국어로 한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나는 긴장 때문인지 허접한 중국어 때문인지 아무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후자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아무튼 나는 입국심사 와중에 "不好意思, 我没听懂(미안합니다. 못 알아들었어요.)"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윽고 입국심사원이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당신 중국 왜 왔냐'며 영어로 물어보는 것이었다. 한국 12년 의무교육으로 단련돼 영어는 좀 알아먹을 수 있었기에 '저 중국 여행 왔음!'이라고 영어로 답변했다. 아울러 '아차, 여기 중국이지' 하면서 "游客!游客!(여행객! 여행객!)"하고 덧붙였다.
입국심사 과정에서 유일하게 알아들은 중국어 질문이 나왔다. 심사원이 '你有中国的名字吗?(중국 이름을 갖고 있으시냐)'고 묻는 거다. 영어로 치면 'What's your name?' 수준의 기초적인 질문인데, 본인은 들려서 기뻤고 "我是OOO(저는 OOO다)"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던 입국심사원 얼굴에 약간 미소기가 도는 듯하더니, 결국 입국 도장을 받아냈다.
나중에 중국 친구에게 해당 일화를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내 이름이 중국에도 있을 법한 이름이라고 평가했다. 내친김에 내 이름을 한자로 바이두에 검색해 봤다. 동명이인이 몇몇 있는 듯했다. 충칭대학교 학생(??)이라거나 어느 도시 전문의사(???) 등등이 나왔다.
공항에서 택시 타고 숙소로 향하는 길. 보통 여행기라고 하면 설렘, 흥분, 기대 등이 내포돼야 할 텐데, 정작 본인은 불안과 걱정 등이 태산이었다. 까딱하면 국제미아 된다, 뭐 그런 생각에 긴장이 이어졌다.
진짜 큰일 났네, 근데 여기 바깥풍경 좀 신기하네,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택시기사가 말을 걸었다.
중국어인 만큼 당연히 못 알아듣고 "미안합니다. 못 알아들었어요"라고 중국어로 답했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당.신.어.느.국.가.에.서.왔.냐.'고 중국어로 천천히 또박또박 물어봤다. 본인은 "나 한국에서 왔음" 했다.
이후 번역기 도움을 받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중 기억나는 이야기가
기사: 북경 왜 왔냐. 출장(出差) 왔음?
본인: 나는 여행객(游客)임.
기사: 왜 공항과 이렇게 먼 곳에 숙소를 잡음?
본인: 싼 숙소 중에 남은 데가 여기밖에 없던뎅.
등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본인이 택시기사와 대화하면서 주목한 부분은 중국의 도로운전이었다. 북경시내 퇴근길 도로에서는 가히 대륙의 기질이 느껴졌다. 깜빡이 키지 않고 일단 차 머리부터 넣고 보는 과감함(?)이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운전했다가는 클락션 세례를 받을 듯했지만 북경 도로에서는 그런 광경이 자주 보였다.
한국에서 운전이 곤혹스럽기로 소문난 부산조차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이건 경험담이다. 부산은 도로가 문제이지 운전자들한테 화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근데 북경은 도로도 운전자도 엄청났다고 해야 할까... 중국어를 조금 더 잘했다면 분명 택시기사에게 운전을 물어봤을 거다.
아무튼, 택시기사가 '숙소를 왜 이런 곳에?'라고 의구심을 가졌듯이 내 숙소는 북경 4~5환쯤 되는 외곽에 있었다.
숙소 안내원과는 "니 하오!"하고 호기롭게 인사한 뒤, 그쪽에서 뭐라뭐라 말하면 나는 '흠 역시 알아듣지 못하겠군' 하면서 팔짱을 꼈고, 이내 우리 대화는 번역기 신공과 손짓발짓 등으로 이어지곤 했다.
한국에서 중국 여행을 준비할 때는 HSK 5급 정도면 대화할 수 있을 거라 예측했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안일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북경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HSK 200급 정도를 구사하고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