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불온한 생각하기

색다른 관점, 삶을 에움길에서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을까

by 방구석 특파원





올해가 마지막 -


이라는 말을 3년째 되뇌고 있다. 미래 밥벌이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준비하는 것을 두고 혹자는 고시라고 한다. 다른 누군가는 입사시험이라고 평가한다. 개인적으로 후자에 좀 더 공감하는 쪽인데.






12층 화장실 북적북적... 11층은 텅 비었는데


지난달 26일, 모 경제지 필기시험에 응시했다. 필기시험장은 회사 사옥 12층 대강당. 140여 명 정도 되는 인원이 들어서니 강당이 빼곡해졌다. 주말 오전부터 생판 모르는 백여 명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 4시간 가까이 '멘붕 실시간 스트리밍'을 겪고 있던 현장이다. 우리는 국어, 영어, 논술, 종합교양 순서대로 내리 연타를 맞고 있었다.


그 와중에 본인이 눈길을 던졌던 광경. 시험 중간중간에 주어지는 쉬는시간 때였다. 여느 언론사 필기시험과 마찬가지로 쉬는시간 족족 시험 응시생들이 대거 화장실로 몰렸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로도 단박에 수용이 불가능해 보이는 인파가 모여들었는데, 시험장 화장실은 협소했기에 자연히 그곳 앞에는 대기줄이 형성됐다.


화장실 사용을 원했던 본인. 그러나 이 낯선 인파에 섞이자니 멋쩍었다. 시험이 모두 끝나지도 않았는데 쉽네 어려웠네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게 싫었다. 변기물 내려가는 소리 적나라하게 들리는 공간에서 이성과 나란히 서 있기도 부끄러웠다.


문득 들었던 불온한 생각. 꼭 12층 화장실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본인은 이내 11층으로 향했다. 그게 용무 해결에 빠를 것 같았다. 낯선 사람들과 굳이 뒤섞일 필요도 없어 보였고.


물론 몸을 더 움직여야 했기에 약간 번거롭기도 했고, 혼자 계단 내려갈 때 문득 '가도 되나' 싶은 불안감도 엄습했다. 그러나 아래층 화장실에 도착했더니 고속도로 하이패스 도로마냥 뻥 뚫려 있었다. 홀로 조용히 볼일 보고 다시 필기시험장에 돌아오기까지 그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시험장 돌아오는 와중에 12층 화장실 앞을 봤더니 대기 인파는 여전했다.



'불온한 생각'도 하나의 실력 요소 아닐까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불온한 생각과 과감한 행동은 실력 요소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우리는, 특히 한국사회는, 정량평가에 익숙하다. 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점수라는 획일화된 평가 기준 위에서 나와 너, 너와 나의 순위가 매겨졌다. 그 틀 안에서 우리는 상대적이었다. 나는 친구보다 5지선다 문제 하나 더 맞추려고 용을 썼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들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이어진다. 대학생들도 여전히 학점이라는 정량 수치에 목맨다. 학점이 높으면 우등생, 학점이 낮으면 열등생으로 분류됐다. 학점이 3.5점 이하면 대기업 '서류컷'이라느니, 그래도 어떤 회사들은 학점 3.0까지는 괜찮다느니, 언론사는 학점 안 보고 학벌만 본다(?!?!)는 등 풍문과 함께.


문제는 사회생활이 시작되면서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량적 평가가 통용되지 않는 모양새다. 고교 시절 수능 고득점, 대학생 시절 고학점-고스펙 등이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특히 실무경험이 생길 때부터(한국 남자는 군대에서부터) '공부머리와 일머리는 다르다'는 이야기에 은근히 고개 끄덕이게 된다.


공부머리는 정량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일머리는 그렇지 않다. 맡은 업무에 대한 이해는 기본 전제라고 가정하자. 핵심역량은 답이 없는 사안에 대한 문제해결 능력으로 귀결되는 듯하다. 관행을 존중하되, 관성에 얽매이지 않는 신선한 생각 이야기다.


회사가 MZ세대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고 한다거나, 신입의 패기 따위를 운운하는 것은 이와 맥락을 같이 하지 않을까. 신입사원으로서 관행을 지키면서, 조직의 관성에 얽매이지 않는 불온한 생각을 해보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기본 위에 덧대어진 창의성이라고나 할까. 회사에서는 이런 것들이 요긴해 보인다.



기사는 '야마 싸움'... 특이한 야마는 불온함에서


마이너매체 소속 기자. 양질의 기사에 대해 줄곧 고민해 왔다. 독자들이 내 기사 좀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내 기사를 찾아보는 시민들도 생기길 바란다. 뭐 그런 욕심들이다. 그런 생각 속에서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기사의 관점이다. 업계에서는 '야마'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게 불온할수록 독자들이 더욱 호응하는 듯했다.


가령 금융투자소득세 관련 논란을 보자. 많은 언론사가 금투세는 1400만 개미투자자에게 악법이 될 것이라는 보도를 내놓았다. 그런데 해당 기사들을 살펴보면, 주로 맥락이나 분석보다는 발언 인용에 그치는 듯한 모양새였다. 금투세 폐지론자들의 따옴표만 붙여서 그대로 전한 것이다.


이러한 와중에 어떤 언론이 '금투세는 진짜 개미에게 악법인가'라는 야마로 분석기사를 내놨다면? 금투세 폐지론자들은 이런 이야기도 하지만, 과거 여당 원내대표도 금투세 도입에 찬성했고(비록 지금은 반대하지만), 왜 야당은 금투세를 도입하려고 하는지 등. 이러한 내용들이 들어가 있다면 어떨까. 일단 독자 눈길을 사로잡을 것이다. 금투세 폐지론자들로부터 거센 비판에 직면할지언정.


대통령 기자회견 상황을 가정해 볼 수도 있다. 대개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연다면 그의 발언 발언이 실시간 속보 기사로 쏟아진다. 만약 한국 대통령이 일본 외신기자로부터 향후 대일 관계에 대한 질의를 받고 "일본 총리와 충분히 신뢰한다"는 답변을 한다면, 그 발언 내용 자체만으로도 속보기사를 낼 수 있다. 실제로 대통령 기자회견 날 뉴스포털을 모니터링해보면 초 단위로 속보기사가 쏟아진다.


다만, 한국 대통령의 해당 발언이 라인야후 사태가 불거진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는 맥락을 짚는다면? 또한 대통령 발언과 연관된 야당 측 논평도 덧댄다면? 그놈이 그놈처럼 보이는 '속보 홍수' 속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기사가 된다. 시민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상으로 기사를 공유하기도 한다. '선동 기사'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하겠지만, 독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호응을 얻기에는 충분한 뉴스가 된다.


물론, 업계에서는 이러한 기사들이 상당히 불온해 보인다고 평가받을 수 있겠지만.



두려움을 촉발하는 불온함, 하이리스크-하이리턴


'불온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다. 물론 무작정 맞서기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그걸 보고 사회 부적응자라고 일컫기로 약속했다. 사실과 지식, 경험 등에 기반한 불온성. 그러한 기질은 사회 속 유의미한 가치가 되지 않을까.


불온성에는 불안함이 수반된다. 인간은 보수적인 생물이다. 불온한 생각 운운하는 나조차도 '이제껏 해왔던 대로'를 편하게 여긴다. 그런데 불온한 생각은 이제껏 굴려왔던 관행에 물음표를 던지는 행위다. 조직 내부자들은 기본적으로 의심하고 거부감을 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 생각이 받아들여지면서 변화 과정을 모색하게 된다면, 이 또한 상당한 에너지 소모를 수반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온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자신의 경쟁력으로 여겨도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것은 취업을 위한 이력서 한 줄로 명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취업 및 승진을 위한 인사고과 점수에 반영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관습에 얽매인 단순노동 일자리가 줄어드는 "이미 와버린 미래"의 시대가 아닌가.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혁신이란, 생각과 변화가능성이라는 고유기능에 맞닿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언론사 사옥 12층 화장실 앞. 그곳에서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분명 하나의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내 주변에서 함께 기다리고 있으니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약간의 멋쩍음만 감수하면 됐다. 다만 '이거 괜찮나' 생각이 들 약간의 불안함을 감수하고, '그래도 해보자' 하는 불온함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때, 생각지도 못한 해답을 찾아냈다.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그래서 감히 내세울 수 있는, '11층 화장실의 존재' 같은 특별함에 대해서 말이다.






요즘 나는 관점에 목말라 있다. 한국사회 속 불온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찾고 있다. 혐오는 사랑보다 힘이 세다거나, 산업화 이전에 이뤄진 농지개혁, 피에르 부르디외의 상징폭력 등에 대한 이야기들에 눈길을 던지는 와중이다. 올해가 진짜 마지막


- 이라고 되뇌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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