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 밤 국회 앞에서 목도했다. "과거가 현재를 돕는" 모습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광경을.
당시 기록들을 구구절절하게 늘여놔본다.
국회박물관 구내식당을 취재했던 날
한창 국회 구내식당 취재에 열 올리고 있던 참이었다. 의원회관, 소통관, 국회도서관 내 구내식당들은 '도장깨기'를 마쳤다. 그날은 국회박물관 지하 1층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거창한 기록 남기겠다는 건 아니었다. 단지 블로그 포스팅을 기획하고 있었다. ‘국회의사당 구내식당’ 등의 검색어로 필자 블로그를 찾는 시민들이 상당수 있었다.
관련 포스팅이 지난해 5월에 이뤄졌다. 약 1년 6개월 지난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포스팅이라 최근 가격변동(+500원) 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기록이 취미인 사람으로서 다시금 국회 구내식당에 대해 쓸 때라고 판단했다. 돌연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지난 3일, 국회로 출근했던 필자의 일과 중 행보다.
돌연 비상계엄 선포... 딥페이크 의심까지
이날은 정시퇴근했다. 카드 이용내역을 뒤져보니 19시13분께 집 앞 보쌈 식당에서 11,000원을 계산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필자는 ‘요즘 인생 고되다’는 생각이 들 거나 보람찬 일을 성취했을 때, 이도저도 아니면 다이어트 행보에 스스로 뿌듯할 때 이 식당을 찾곤 했다. 이날은 아마 고된 인생 운운하며 고기 앞으로 향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저녁 식사 이후 귀가해 25분간 온라인 영어회화 수업을 수강했다. 씻고 하루 마무리해야 하는데 몸이 무거웠다. 유튜브 등 시청하며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오후 10시 넘어서야 으랏챠 하며 몸 일으켰고, 느지막이 샤워를 마쳤다. 이윽고 침통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았다. ‘내일 뭐 쓰지’ 하며 포털뉴스와 라디오방송, 유튜브 등을 뒤적였다.
대통령 얼굴을 썸네일로 한 지상파 라이브 방송을 발견했다. 당시 시각은 오후 10시30분께였다. '대통령 대국민 담화 발표'였나, 그런 제목으로 기억한다. 이 시간에 뭐임 하는 생각으로 동영상을 시청했다. 방송 제목이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로.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다.
믿기 힘들었지만 일단 워딩을 시작했다. (한 잔 걸치기라도 했는지) 대통령의 거친 숨소리가 그대로 마이크에 들어가고 있던 방송이었다. 그러다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발언을 직접 타이핑했다.
이게 딥페이크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다만 유튜브 구독자수 400만여 명의 지상파 방송사가 내보내고 있던 영상이었다. 뉴스포털 살펴보니, 타사는 이미 속보를 냈다. 나 또한 10시38분께 덩달아 속보기사를 냈다.
일단 국회로... 그곳엔 시민들이 있었다
황당했다. 당황스러웠다. 대통령 입에서 나온 ‘비상계엄’이라는 단어를 접한 직후 이야기다. 실감은 안 났지만 아무튼 그랬다.
기록한 대통령의 방송 워딩을 살펴봤다. 구구절절한 야당 비판이 이어진 이후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다”거나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기계적으로 종합기사를 처리했다. 긴장이 몰려왔다.
불현듯 ‘국회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머리 다 말리지 못한 채 까치머리로 집을 나섰다.
도로에서 택시를 잡고 “국회로 가주세요” 했다. 늙수구레한 택시기사는 ‘이 시간에 국회는 왜’ 하고 묻는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다고 전했다. 택시기사는 “그런 사람으로 안 봤는데?”하더니 차를 갓길에 댄다. 그는 잠깐 핸드폰으로 포털뉴스를 뒤적이더니 이게 무슨 일이냐며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
'기사님 표정=10여분 전 내표정'이었을 거다. 아마 전 국민이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당황하지 않았을까. 혹은 황당했거나.
택시 타고 국회 향하는 길, 포털에서 실시간으로 뉴스 확인을 이어갔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 전문을 읽었다. 계엄사령관에 육군참모총장이 임명됐고, 이날 11시부터 계엄포고령이 발효된다... 뭐 그런 소식들이 타전되고 있었다.
포고령 1항에서부터 숨이 턱 막혔다.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라니. 그 조항이 옳고 그르고 따질 능력은 없었다. 처음 겪는 계엄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는 걸 알지만, 당시에는 감도 못 잡았다. 시민으로서나 기자로서나 본능적으로 국회로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뒤의 일은 차치하고.
2항 읽는데 '아뿔싸' 했다. 본인이 이제껏 써왔던 기사를 잠깐 참회했다. '잡혀갈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들었다. 이제껏 사실에 기반해 양심적으로 기사 써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그것이 현 정부에게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 따위로 비칠 우려가 있어 보였다.
애초에 정부 친화적인 기사를 쓰기가 힘든 환경이었다. 영부인 관련 의혹에 채상병/홍범도 등 국방 이슈 논란, 친일스러운 외교 노선까지... 총선 이후 지지율 20%대가 '뉴노멀'이 되지 않았나. 특히 영부인 관련 논란들은 천하의 '조중동'마저 고개를 절레절레한 사안이었다.
오후 11시 40분께 택시 타고 마포대교 건너는 길. 머리 위로 군용헬기 3대가 지나갔다. 국회 정문 앞에 도착하니 이미 경찰버스로 차벽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가장 겁대가리 없는 동물로 알려진 벌꿀오소리를 동경한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면 대책 없이 무작정 경찰 차벽 너머로 들어갔단 얘기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시민들이 포진해 있었다. 저마다 "비상계엄 해제하라!" 등의 구호를 산발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러다 의원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의원들이 월담해 국회 경내로 진입할 때 시민들은 환호했다.
계엄해제 요구안 가결까지...
“저 국회 출입기잔데요. 출입기자가 출입처 못 들어간다는 게 말이 돼요?”
“30분 전까지는 됐는데 지금부터는 안 된다네요.”
현장 책임자로 보이던 짙은 남색 복장의 경찰에게 따졌다. 기동대 소속 간부로 추측됐다. 그는 단칼에 내 출입 요구를 거절했다.
국회·국무조정실 등을 출입해본 바, 공무원들은 기자들의 곤혹스러운 요구에도 대개 예의를 차리는 편이다. 안 된다는 이야기도 아주 완곡하게 표현한다. 개인적으로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어구를 그 이유로 추측하고 있다.
다만, 이날 경찰 측 태도가 상당히 단호했다. 왜 출입 못 하냐, 언제부터 출입이 안 됐던 거냐, 이런 걸 꼬치꼬치 캐물었으나 그의 태도를 보아할 때 들어가게 해줄 것 같지 않았다.
실제로 국가 의전서열 2위 국회의장까지 월담했다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대목이다.
국회 정문 일대를 둘러보니 군용 장갑차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시민들이 장갑차 앞을 막고 비켜주지 않고 있었다. 창문 안으로 계엄군 탑승이 확인되는 승합차들도 왕왕 보였다. 이 또한 시민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계엄군 앞에서 "니네 이 XX들아!" 등 목소리 높이며 흥분한 시민들이 보였는데, 그 옆에서 시민들이 "쟤네가 오고 싶어서 왔겠느냐" "다 우리 아들뻘일 것"이라는 등 달래면서 '톤다운' 시켜주는 모습도 봤다.
"해제!" "체포!" 등의 고성과 아우성이 오가던 초겨울 밤 국회 앞. 그곳 공기를 들이마시는 와중에 기록하고, 사진/영상 찍고. 다만 참여자가 아닌 관찰자를 참칭했기에 소리 치지는 못했다.
이튿날 새벽 1시께. 국회의사당 앞 군중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졌다. "계엄 해제 요구안 통과됐대요!" 하자 "계엄 해제됐다!"하며 다들 소리친 것이다. 이후 시민단체/노동단체 등의 조직들이 속속 합류했다. 마이크 잡은 이들의 진두지휘 속, 국회를 향한 시민들의 "비상계엄 해제하라!"는 구호는 더욱 커졌다.
다만 이곳 긴장감은 여전했다. 대통령이 여전히 계엄해제 발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는 계엄해제 요구안을 1시께 결의했는데, 대통령은 4시30분께 계엄해제를 발표했다) 다행히도 계엄군들은 속속 국회의사당을 빠져나갔다. 이곳 분위기는 점차 집회와 축제 사이의 어떤 것으로 변모했다.
계엄군들이 부대 복귀에 한창이었던 여의대로. 어떤 군인들은 장갑차에서 내려 "도와주십시오! 복귀하겠습니다!"라며 인파 속 길을 만들고 있었다.
그 계엄군을 둘러싼 군중 사이에서 "나, 나, 나, 사진 좀 찍어줘!"하고 들려온 목소리가 또렷이 기억에 남았다. 아마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듯했다. 군인 옆에서 한 시민이 "명령 같은 명령을 들어야지" 하면서 장갑차를 툭툭 두드리던 모습도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