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의 목격자, 취재수첩 털어보기(2)

나만의 작고 소중한(?) 국회, 닫히다

by 방구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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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이후 첫 국회 본회의


암담했다. 국민으로서나 국회 출입기자로서나.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 1차 표결을 앞두고 국힘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퇴장할 때 이야기다. 토요일 본회의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야당 측 의원들은 이미 여당 의원들의 ‘투표 불참’ 당론을 알고 있는 듯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앞서 영부인 특검법 표결이 있었다. 그때부터 야당 쪽 의석에서 ‘국민의힘 의원님들 투표해 주십시오!’ ‘역사에 부끄러운 행동하지 마십시오!’ 등등의 목소리가 본회의장을 메웠다.


본회의 개의 시간은 오후 5시였다. 오후 4시55분께 본회의장 바깥에서 “탄핵하라!” “탄핵하라!”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함성들은 4시58분께 점차 “탄핵! 탄핵! 탄핵!”하는 아우성으로 바뀌었다. 그 함성은 규탄·성토라기보다는 호소에 가까워 보였다.


본회의 시작 이후 국힘당 의원석에서 ‘회의장 입장하는데 민주당 보좌진 때문에 큰 불편이 있었다’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본회의장 바깥서 들려온 “탄핵!” 등의 구호와 연관 있어 보였다. 알고 보니, 계엄을 몸소 겪었던 야당 보좌진들이 필사적으로 외친 것이었다.


여야를 논하기 이전에 모두 입법부 구성원 아닌가. 국회 동료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두고 ‘큰 불편’ 운운하다니. 설득은 없고 선동만 남은 듯한 요즘 정치권 모습이 겹쳐 보였다.


대통령의 쿠데타가 계획대로 이뤄졌더라도 여당 측 의원들은 대부분 숙청과는 거리가 멀었을 거다. 오히려 '내란 부역자'들은 그 상황에서 웃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반면 야당 측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다. 의원들을 포함해 보좌진들은 계엄 겪은 이후 집에도 못 가고 국회에서 먹고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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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선서' 저버린 국힘당


그날 여의도에는 주최 측 추산 100만 명, 뉴스타파 측 추산 30만여 명의 시민들이 ‘윤석열 탄핵!’을 외치며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날 주요 일간지 사설을 보면, ‘조중동’마저 대통령의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했다. 특히 영부인 담당일진 순덕이 누나(김순덕 대기자)가 계시는 동아일보의 이날 사설은 폼이 좋다. 제목은 “음모론과 충동에 휘둘리는 지도자에게 국정 맡길 수 있나.”


이번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다. ‘친위 쿠데타’ 내지는 ‘내란’에 준하는 행위였다. 민의의 전당이 군홧발에 짓밟힐 뻔한 상황을 전 국민이 다 봤다.


그런데 국힘당이 돌연 대통령 탄핵안 표결 불참을 선언했다. 정작 첫 안건인 ‘김건희 특검법’에는 투표에 참여해 부결시킨 이후 말이다. 국힘당 의원들이 우르르 나가는 모습,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비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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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원 개개인이 하나·하나의 헌법기관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국회법 24조에 따르면 임기 초 국회의원들은 이렇게 선서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그날 국힘당 의원들의 모습은 헌법 준수 내팽개치고, 국민 자유·복리 증진은 안중에도 없었으며, 평화 통일과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국가 지도자를 옹위했고, 국가이익 따위는 개나 줘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개개인의 헌법기관은커녕 똘똘 뭉친 이익집단이 보여줄 수 있는 최악 중 최악이었다.


그 와중에 안철수·김예지·김상욱 의원의 모습은 빛났다.


안철수 의원, 정치권에서 갈팡질팡의 아이콘으로서 ‘간철수’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빛철수’ 그 잡채였다. 안 의원은 이날 행보로 차기 대권에 도전하기 전까지 언론으로부터 ‘까방권’을 얻었다고 본다.


김예지·김상욱 의원에게서는 젊은 의원들의 소신과 헌법기관으로서의 책임감 등을 봤다.











방패막이로 전락한 국회 셔틀버스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1차 표결은 국힘당의 “계엄 옹호당”스러운 행보로 결국 무산됐다.


선거가 닥치면 ‘투표해 달라’며 구구절절 호소하지만 정작 국난을 맞닥뜨렸을 때 자기네들은 투표를 외면했던 모습, 전 국민이 똑똑히 봤다. 특히 이번 촛불집회를 주도한 2030세대들은 ‘쟤네만큼은 절대 못 뽑겠다’고 오래도록 기억할 만하겠다.


기자로서도 한숨 나오는 상황이었다.


야당 대표가 ‘탄핵 될 때까지 할 것’이라고 이미 공언했다. (쿠데타 일으킴? 탄핵소추 당연함)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에 발의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의 원칙을 감안, 1주일 뒤 탄핵안 2차 표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됐다. 일주일 동안 뉴스가 또 켜켜이 쌓일 것이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입법부는 행정부의 위헌·위법적 비상계엄을 경험하곤 트라우마를 겪는 듯했다.


선량한 국회 직원들 태워 다니던 요구르트색 국회 버스. 이 버스들이 곧 국회 잔디밭에 주차됐다. 버스 창문에 ‘오늘의 국회 카카오톡 추가’ 같은 일상문구를 그대로 달아둔 채.


혹여나 계엄군의 헬기 착륙이 또 있을까 봐,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 광경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국회가 '계엄 트라우마'로 잔뜩 위축된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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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문도 굳게 닫혔다. 계엄 이전까지 내가 봐온 국회는 열린 공간이었다.


매번 쌈박질 벌어진다는 이미지가 있지만(어느 정도 사실 기반이긴 하다) 국회는 자세히 보면 시민 친화적인 공간이다.


이에 대해 설명해 보자면


1)정장/넥타이 고관대작부터, 제복 입은 시민들, 조끼 입은 노동자들, 교사 인솔에 따르는 학생과 어린이들, 구수한 사투리 쓰는 지역민들, 이동권에 제약을 받고 있던 장애인들... 한국사회 속 거의 모든 인간군상을 볼 수 있는 곳임


2)점심시간에는 '여의도 1번지(?)'로서 인근 회사원들이 모임. 정확히는 국회 구내식당에 모인다는 뜻임.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시대에 한 끼 5천원 내외 '국식'은 못 참지


3)국회 앞에는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가늠도 안 되는 천막농성이 줄줄이. 출퇴근 때마다 'NPC'처럼 보여 국회 경비인력마저 익숙해 하는 시민들이 계심. 국회라는 권력기관 앞에서 목소리 내는 국민들의 모습, 자유민주주의를 방증함


등등이 있다. 이제껏 입법부는 국민 누구에게나 문을 활짝 열어놨었다는 얘기다.


그런 곳이 행정부 수장의 돌발행동으로 문을 굳게 닫았다. 국회가 받은 충격이라거나 아픔이 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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