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구석 특파원 Aug 25. 2024

유튜브와 언론

'하꼬 매체' 소속 국회 출입기자의 단상들





Q.


유튜브 채널(유튜버)는 언론이 될 수 있는가? 


'언론'의 정의를 각자 설정하고, 그에 기반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라.




A.


지난 2022년 7월 필자가 응시했던 한 언론사 필기시험.

언론인을 꿈꾸면서 '유튜브는 언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상한(weird) 일이었다. 미식축구 꿈나무가 '요즘 야구가 관중도 많이 모으고 전망 밝아보이는 종목인 듯함'이라고 평가하는 셈이니까. 


언론사 입사준비생 시절에는 '유튜브는 언론이 될 수 없다'는 게 소신이었다. 내 경험상 기자를 꿈꾸는 동료들도 으레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현업에서 일을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유튜브의 파급력을 절감하고 있다. 정치 뉴스를 다루다 보니 더 그렇다. 유튜브 저널리즘에서는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레거시 미디어들은 '음모론' 운운하며 애써 외면하는 논란들이 있다.


명품가방이라거나 녹취록, 주가조작 같은 단어들을 널어놓고 보라. 브런치 독자님들도 으레 떠오르는 뉴스들이 있을 거다. 그러한 내용들은 유튜브 저널리즘이 공론화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레거시 미디어들이 머뭇거릴 때 유튜브 저널리즘이 치고 나갔다.


최근 뉴스소비 채널이 포털뉴스에서 유튜브로 점차 넘어가는 듯하다. 주요 일간지들마저도 유튜브 채널 성장에 주목하는 모양새니까...




추석이란 무엇인가


서울대 김영민 교수는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세상에 전한 바 있다. 글쟁이들 사이에서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쯤 되는 글로서 회자된다. 다음 달 추석을 앞두고(연휴 만세) 짚어볼 만하다.


지난 2018년 9월 경향신문 보도 갈무리.


김 교수는 "밥을 먹다가 주변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싶은가. 그렇다면 음식을 입에 한가득 물고 '나는 누구인가'라고 소리 내어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마 밥 먹던 사람들이 수저질을 멈추고 걱정스런 눈길으로 당신을 쳐다볼 것"이라고 했다.


요컨대, 'OO란 무엇인가' 같은 정체성을 따지는 질문은 위기 상황에서나 제기된다는 이야기다. 일상이 평화롭다면 사람들이 굳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이유가 없다. 현상유지만으로 충분한데 굳이 머리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할까.


김 교수의 이러한 해석을 '유튜브는 언론이 될 수 있는가'라거나 '언론의 정의를 설정해 보라' 같은 질문에도 적용할 수 있다. 


언론의 위기라거나 유튜브 급부상 등 의제가 지속적으로 언급된다. 언론사 입사준비생이라면 당연히 본인글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할 논제들이다. 


기실, 이러한 상황은 뉴스를 다루는 언론사들이 더욱 절감할 테다.




언론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언론의 정의란 '시민들에게 필요한 사실 정보를 제공해서 그들이 일상생활 속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주체'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유튜브 저널리즘은 이미 레거시 미디어만큼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즈음 기성언론들이 선뜻 다루지 않는 '필요한 사실 정보'들을 유튜브 몇몇 채널은 다루고 이를 통해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기성언론 기사들이 모인 포털뉴스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어떤 식당에서 식당주인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이랑 손님들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이 영 다른 상황이 아닌가 하고.



2024년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 모습.


총선 정국을 뒤흔들었던 대통령 영부인 명품가방 수수 의혹이 있다. 유튜브 저널리즘 작품이다. 


대통령이 "솔직히 대통령 자리 귀찮다"고 말했다거나, 당시 여당 대표를 겨냥해 "3개월짜리"라고 말했던 녹취록도 공개됐다. 유튜브 방송에서 '[단독]' 달고 공론화한 내용이다. 해당 뉴스에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반응하자 레거시 미디어도 앞다투어 다루기 시작했다.


대통령 영부인에게 제기된 주가조작 사건은 어떤가. 영부인을 제외하고 가담자 모두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안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의구심을 표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야당 또한 특검법 추진을 벼르고 있다. 그런데 레거시 미디어는 사안의 크기에 비해 다소 잠잠한 분위기다.


언론사를 준비할 때 가끔 '대안언론'이라는 실체 없는 단어를 접하곤 했다. 최근 유튜브 저널리즘을 접하며 그 단어가 다시금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물론 레거시 미디어라고 권력 비판적인 보도를 안 한 것은 아닐 테다. 다만, 언론사와 기자 개인에 대한 국가기관의 '합법적 폭력' 관련 소식이 줄곧 전해지고 있다.


'바이든-날리면'을 보도한 MBC기자, 대통령실 이전 의혹을 제기한 뉴스토마토 기자, 검찰/영부인 겨냥 탐사보도를 이어가는 뉴스타파 기자 등... 고초 겪는 저널리스트들 소식이 한두 건이 아니다. 최근에는 채해병 순직사건 관련 보도를 이어가던 JTBC 기자에 대한 법적 조치 소식도 들려 왔다.



언론사든 기자든 자의 반 타의 반 '자기 검열'을 하는 시대가 아닐까.





레거시 미디어의 관심사: 유튜브


향후 2년 8개월이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브 저널리즘 간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튜브 저널리즘은 레거시 미디어가 다루지 않는(혹은 못하는) 의제들을 지속적으로 다룬다. 아직 방송법-신문법 등 규제에서 다소 유로운 덕분도 있을 거다. 


유튜브 저널리즘이 정파성이 짙다거나 선정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런데 레거시 미디어라고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전혀 아니라고 본다.


유튜브는 음모론이 만들어지는 장소라는 지적도 있다. 기성 언론은 어쨌거나 사실을 다루니 유튜브보다는 더 신뢰성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유튜브 채널들은 색깔이 다양하다. 음모론에 치중한 채널이 있다면, 팩트체크에 열심인 채널 또한 있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유튜브가 시민들 '알 권리'를 충족해 준다는 게 요즘 내 진단이다.


유튜브 저널리즘은 제22대 총선 과정에서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포스트 총선'이라고 평가받았던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있었다. 대법원이 유죄 판결한 인물을 대통령이 고작 3개월 만에 사면해 줬다. 그러면서 구청장 선거가 전국구 선거로 발돋움해 버린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결과는 야당 압승이었다. 여당과 격차는 17%p 이상.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선거 결과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했던 곳이 유튜브 저널리즘이었다는 것이다.


22대 총선에서도 유튜브 저널리즘이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본다.


레거시 미디어는 총선을 앞두고 여당과 야당 간 정당지지도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는 점을 조명했다. 보수 성향 언론에서는 "경합지 선전하면 (여당이) 130석도 가능"하다는 진단도 내놨다. 국가기간 뉴스통신사도 '여당 110~130석'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반면 유튜브 저널리즘에서는 '정권 심판론'을 앞세웠다. 이러한 주장에 근거를 싣기 위해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지속적으로 진행했다. 유튜브 저널리즘 측에서는 '범야권 200석 압승론'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결과적으로 레거시 미디어도 유튜브 저널리즘도 모두 틀렸다. 여당은 130석은커녕 개헌저지선을 겨우 지켰다. 야당도 200석은 언감생심이었다. '협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결과를 재확인했을 뿐이었다.


유튜브 저널리즘의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고 본다. 전망 예측이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레거시 미디어의 안티테제 역할은 충실히 수행했다. 개인적으로, 오는 2027년 진행될 제21대 대통령선거까지 유튜브 저널리즘이 얼마나 클지 가늠이 잘 안 된다.




유튜브 저널리즘과 대안 언론


유튜브 저널리즘이 레거시 미디어를 대체할 수 없는 지점들이 있다. 출입처 취재 시스템이라거나 기자들의 질문권 등에 대한 부분이다.


유튜브에게 검찰/법원 등의 출입처 취재는 언감생심일 거다. 언론계에서도 공공연하게 '그들만의 리그'라고 일컬어지는 곳이다. 유튜버들이 판사나 검사들에게 질문하는 장면은 상상조차 어렵다. 


다만, 국회의 경우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분위기다. 유튜버들도 소정의 절차를 거치면 충분히 취재활동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다. 사실 국회 운영비라는 게 결국 국민 세금 아닌가. 응당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권력기관들이 다 국회처럼 개방적인 분위기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검찰이든 법원이든 국민세금으로 운영된다면 당연히 국민감시를 받을 의무가 있지 않을까. 당사자들이야 반대하겠지만...







'하꼬 매체' 소속인 덕분에


개인적으로 본인이 유튜브 저널리즘에 주목하는 건 '하꼬 매체' 정치부 소속이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만약 본인이 언론고시를 통과해 언론사 수습교육을 마치고, 기성언론 기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면... 굳이 유튜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거다. 잘 나가는 미식축구 선수가 굳이 옆 동네 야구선수들에게 시선을 던질 필요가 있을까.


다만 마이너 매체 소속 기자라는 건 그렇다. 미식축구 선수라고 하기에는 뭣하다. 그런데 야구선수는 확실히 아니다. 누군가에게 명함을 건네면 대개 '이런 회사도 있냐'는 표정이 돌아오는데, 어쨌거나 그들은 나를 미식축구 선수로 인식하기는 한다. 괜한 이야기가 기사화되면 피곤해지니 최대한 언행을 삼가하려는 게 보인다.


스스로 기자라고 내세우자니 민망한데, 100% 회사원인 시민도 아닌 상황. 모호한 정체성을 가진 '회색 기자'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러한 인간군상은 대개 기자로서의 괜한 정의감(?)과 회사원으로서의 워라밸 본능을 함께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언젠가 유시민 작가는 유튜브 방송에서 언론계를 이렇게 평가했다. "기득권을 위한 언론"과 "기자들을 위한 언론"이 남았다고. 유 작가의 이러한 통찰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다. 


물론 모든 언론인을 싸잡아 이렇게 평가하는 건 지나치다. 누군가는 문제의식이 있을 테고, 어떤 이는 내부에서 비판 목소리 내고 있을 테니까. 다만 그런 경향성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정황들에 눈길이 계속 간다.


레거시 미디어들이 정국 쟁점안을 유튜브 저널리즘에 사실상 위탁한 신세로 보이는 건 착각일까. 지난 정권 시절과 언론이 너무 다른 모습이라 낯설다. 공직자 비위행위, 부동산 문제, 외교 논란, 국가 채무 등에 다양한 사안에 대해 엄중한 비판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나.



미디어 분야를 취재한다는 한 기자. 그는 오늘날 기자들을 두고 "기자라는 집단은 찍어 누르면 찍소리 못하고, 풀어주면 악을 쓰는 집단 같다"고 비판했다. 


국회로 출퇴근하는 한 장삼이사는 그 이야기에 괜히 뜨끔했다고 알려졌다. 그 장삼이사는 요즘 유튜브 저널리즘의 성장세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혹자는 "사랑의 가장 큰 표현은 '나는 너를 관찰한다'가 아닐까"라고 하던데...?





작가의 이전글 나를 만든 건 팔할이 악플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