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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특파원 Aug 11. 2024

나를 만든 건 팔할이 악플이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건설적인 비판을 위한 고민



"기레기에게 경고한다. 아까운 먹물 뿌리지 말고 펜대 꺾고 절필하시라!"


'기레기'라는 단어에는 익숙했다. 다만 "아까운 먹물 뿌리지 말고"라거나 "펜대 꺾고 절필하시라" 같은 표현은 상당히 신선했다.


신입사원 시절, 처음으로 칼럼기사를 써봤다. 유력 정치인 행보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받았던 악플들 중에 가장 정중하면서도 고상한(?) 내용을 가져와 봤다.




처음 기자수첩을 써보다


입사 한 달 차 신입사원 시절. 된장과 카레를 구분 못하던 시기였다. 부서회의 중에 본인 등줄기에 식은땀 주륵 나는 이야기가 나왔다.


회사 측에서 내게 이렇게 주문했다. "OOO 있잖아, 그 사람 겨냥해서 비판 기사 한 번 써봐. 옛날부터 말을 자주 바꿔온 사람이야. 옛날 기사 찾아보면서 준비해 봐."


참고로, 이날 언급된 OOO는 과거 대통령선거 출마까지 해본 정치인이다. 경력으로 보나 경륜으로 보나 본인은 하룻강아지 신세였다. 그래서 회사 측에 "나까짓 신입사원이 어떻게 그런 거물을 건드립니까"하고 하소연했다.


그랬더니 회사 측 반응은 이랬다. "건전한 비판도 할 수 없는 기자가 기자냐"라며 도리어 나를 나무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어서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기자라는 정체성으로 보나 회사 소속 노동자 입장에서나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제... 제가요? 비판을 해보라고요?



예상보다 과분한(?) 독자 반응을 받고


부담감과 두려움, 그리고 약간의 열정을 안고 며칠간 애썼다. 안 그래도 새치가 많다고 친구들이 놀리곤 했는데 이 시기에 흰머리가 좀 늘었다(고 주장해 본다).


기사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피드백을 받았다. 처음 완성해서 데스크에 보고했을 때는 '글 줄여'라는 한 마디로 퇴짜 맞았다. 분량을 2/3 수준으로 줄인 이후에도 피드백이 수차례 이어졌다. '주어와 동사는 인접하게 써야 문장 가독성이 좋아진다'라거나 '이 문장에 해당 서술어 사용이 적절하다고 보나', '여긴 논리적 비약이 상당하다' 등이었다.


이대로라면 첫 보고 때 데스크에게 보여준 글이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지겠다는 우려가 들 때쯤이었다. 마침내 기사 송고 결정이 났다. 첫 원고 대비 절반 수준의 분량이었고, 논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내용이 뒤엎어졌지만 상관없었다. 얼른 이 성가신 과제를 해치우고 싶었다.


당황스러웠던 건, 해당 기사에 수백 개 댓글이 달리면서다. 일을 시작한 이후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방망이 깎던 심정으로 준비했던 글을 드디어 내보냈다는 데 뿌듯함 정도만 있었을 뿐, 큰 반응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에 생각 외로 많은 독자들이 관심을 표출해 줬다.


나름 양심과 직관에 따라 썼지만, 기레기로 전락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독자 반응을 톺아보니 이랬다. "이걸 글이라고 끄적인 건가"라거나 "기득권 앵벌이 기레기다운 수준의 글", "기레기는 아까운 먹물 뿌리지 말고 펜대 꺾고 절필하시라" 등이었다. 이러한 부류의 댓글이 가장 많은 공감을 받고 있던 건 덤이었다.


솔직히, 본인은 크게 괘념치 않았다. 이는 메X플스토리라거나 던X앤파이터, 마X노기 등 온라인 게임을 두루 섭렵해 온 본인 과거에 기인한다. 어릴 적부터 디지털노마드의 삶을 살아오면서 악플 문화에 어느 정도 내성이 있던 셈이었다.


입사 후 처음 받아본 뜨거운(?) 반응. 위축되기보다는 오히려 더 들떴다. 새치 늘어난 데 대해서 충분한 위안이 됐다. 줄곧 기사 공들여 써왔지만 번번이 무플 행진을 이어가던 시기였는데 악플일지언정 내 기사에 독자들이 반응해 준다는 사실은 무척 반가웠다.



건전한 비판, 좋은 글에 대해


첫 칼럼기사 작성한 지 2년이 다 돼 간다. 그동안 경험이 쌓이고 숙고의 시간을 거쳤는데 그러면서 본인 생업의 본질을 짐작해 보게 됐다. 그것은'건전한 비판'에 관한 내용이다. 상대를 그저 까내리고 비판하기 위한 야바위성 수단이 아니라, 정확히 지적하고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행위 말이다.


제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만, 건설적인 비판은 무엇보다 그 사람(또는 사물)에 대한 관심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관심이 없으면 비판은 고사하고 언급조차 안 한다. 괜히 여의도에서는 '정치인은 본인 부고기사 빼고는 모든 기사가 이득'이라는 이야기가 나도는 게 아니다.




좋은 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직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이는 글쟁이든 글장이든 비슷할 거라고 짐작한다. 모두가 그저 잠정적인 답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내 잠정적인 답은 이러하다. 독자 1000명이 읽었지만 그중 1명의 행동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글이 있을 거다. 독자가 1명밖에 되지만 실제로 명의 의식변화를 촉발한 글도 있을 테다. 나는 계속해서 전자에 해당하는 글을 써내야 한다. 읽히기 위한 글을 쓰는 것이 내 생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후자에 해당하는 글들을 써낼 있기를 갈망하고 있다. 


글로써 독자들의 사고에 영향력을 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 굉장히 거창한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의 속성이다. 비록 "아까운 먹물 뿌리지 말고 펜대 꺾고 절필하시라"는 이야기가 돌아올지언정 그걸로 충분하다. 쓰는 이와 읽는 이의 상호작용이 이 일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요인이니까.


그러고 보니, 부끄럼 많은 내 첫 칼럼기사에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댓글에는 '기레기'라는 단어가 없었다. 독자들이 가장 공감했던 독자 이야기는 "그 정치인도 사람인데 다 옳기만 하고 시기적절하게 정확한 판단만 했겠어요. (... 중략 ...) 예전처럼 서로 보듬으며 그 정치인의 성공을 위해 뭉쳤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였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그 댓글에 조심스레 좋아요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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