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낯설었던 고3, 대학 면접날 아침

"서울이 익숙하지 않아, 엉덩방아를 크게 찧고 나서도 다행히 통과했다"

by 구보라

처음 면접을 봤던 건 고3때였다. 당시 지원한 대학이 수능을 보지 않았고, 대신 자체 필기시험과 면접이 있었다. 필기를 통과해야만 면접을 볼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첫째날 필기시험이 있었고, 그다음날이 면접이었다.

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서울에 하루 머물러야했다. 학교는 서울에 있었고, 나는 창원 사람이었으니까. 그전에도 수시로 지원했던 대학의 논술 시험을 보기 위해서 한 두차례 서울에 올라오긴 했었다. 그땐 친구들과 함께였다. 지원한 대학은 달랐어도, 같이 같은 숙소에 머물렀다. 또는 엄마랑 같이 왔다.


그런데 이땐 일정이 맞는 친구들도 없었고, 엄마도 바빴는지 같이 오지 못 했다. 첫 번째날 어떻게 서울로 올라왔는지는 기억이 없다. 다만 그날의 시험장이 떠오른다. 그날 시험에는 수능의 언어영역 스타일의 문제들이 있고, 아주 기다란 영어 지문을 해석하는 문제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영화의 첫 장면 10여분을 보여준 다음, 그 이후를 상상하며 쓰라는 주관식 글쓰기 문제도 있었다.


언어영역 스타일이야 조금 자신이 있어서 어떻게든 썼는데, 영어 지문 해석이 참으로 난감했다. 영어도 나름 자신은 있었지만, 그 자신은 객관식 시험에서만 발휘되는 것이었나보다. 해석이 쉽지 않았다. 해석한 내용을 적으면서도 ‘이게 과연 맞을까?’, ‘아, 나는 떨어졌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빈 종이를 낼 수는 없으니까, 창원에서 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아까우니, 어떻게든 꾸역꾸역 써내려갔다. (의지의! 19살의 구보라)


영화 장면을 상상해 쓰라는 것도 아득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후에 알았다. 그 영화가 장률 감독의 영화 <두만강>이었다는 걸. 정말이지 고등학생 때 열심히 봤던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른 스타일이었다. 영화가 어둡고, 난해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이런 ‘어둡고 난해한’ 영화들을 많이 보며 익숙해지긴 했지만...) 난해한 영화의 이후를 억지로 상상했다. 쓰면서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도 있었던 것 같다. 이걸 읽는 심사위원들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기도 했다.(놀라지는 않을지..)


시험을 보고나서 학교 후문을 걸어가며 엄마랑 전화를 했는데, 그 장면은 떠오른다.


“엄마~ 나 떨어질 것 같다~ 그냥 오늘 내려갈까?”


엄마는 그래도 면접 보고 오라고 했다.


숙소로 갔다. 학교에서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청량리에 있는 모텔이었다. 사실... 학교 근처에도 모텔은 있었을 것이다. 완전 근처는 아니더라도 외대앞 정도면 있었다. 그러나 지방에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입장에서는, 어디가 어딘지 정확한 감도 오지 않았다. 그나마 청량리는 역 규모가 큰 곳이고, 택시타면 되겠지 싶어서 그곳에 잡았다.


숙소에서 뭘했을까. 면접을 준비했을까? 그렇게 혼자서 모텔에 묵어본 건 처음이라서, 살짝 신기하기도 했던 것 같다. 모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부끄러움도 있었고, 아마도 TV 채널을 돌려보다가 야한 장면이 나오는 채널을 보면서 ‘호! 신세계군!’이라고 생각도 했을 것이다. (어머 이게 뭐야! 라며 놀라지는 않았을 듯.)


다음날 아침, 매우 일찍 일어났다. 차로 20분 거리라는 개념이 없어서, 일단 무조건 빨리 일어나야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구씨여서 면접 순서도 제일 먼저였나, 그래서 이른 시간이었다. 긴장돼서, 아마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했던 것 같다. 모텔 바로 근처에 24시 감자탕집이 있었다. 7시 반도 되기 전에 그곳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면접 전 아침으로 감자탕~ 그때나 지금이나 아침을 먹어야 힘나는 스타일이라서, 꼭 먹었다.


밥을 맛있게 먹고, 계산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섰다. 가게 문 앞에는 주차하는 곳이 있었고, 인도가 있었다. 그런데...인도에서였나? 우당탕~ 시원하게 나자빠졌다. 정말 그냥 순식간에!


정신이 없었다. 왜 넘어진 거지? 어리둥절. 발 밑에 얼음이 있었다. 못 봤다. 서울엔 눈이 내린 이후라 길이 많이 얼어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창원 사람이라(남쪽에 있는 창원은 많이 따스하답니다...) 1년에 한두번 눈을 보는 게 전부였다. 창원은 눈이 내려도, 잘 얼지도 않았다. 바로 녹았다. 여튼 그래서, 얼어있는 길이 낯설었다. 호된 신고식 같았다. 아파할 겨를도 없었다. (부끄러워할 새도 없었다.) 얼른 면접을 가야했으니까. 심하게 다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택시를 타고 학교를 갔더니 나말고도 몇몇이 대기하고 있었다. 앞사람들이 면접볼 동안 엄청 긴장하고 있었다. 코트를 벗어야 하나, 입고 가야 하나 망설이다가 그냥 입었다. 들어가니 세 명이 있었다. 남자 교수, 여자 교수, 외국인 남자 교수. 그들은 내가 제출했던 4장짜리 자기소개서와 관련해서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근데 지금 기억나는 건 이 문장이다.


“책도 좀 골고루 다양하게 읽어라”

책 읽는 걸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주로 소설만 읽는다고 했더니 저 말이 돌아왔다. 뭐,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쪽 등등.


면접을 보고나서도 ‘와, 망했네?’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면접을 봤는데 어떻게 붙나,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붙었다. 대학 다닐 때는 “교수님, 왜 저를 붙여주셨어요?”라고 물을 용기가 없었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사실은 널 뽑을 생각이 없었다거나, 별로였는데 이런 점은 좋아서 뽑았다거나... 뭐든 안 좋은 얘기는 먼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늘 궁금했는데, 물어볼 걸.


스트레스 받아가며 공부하고, 긴장하면서 봤던 수능은 모의고사에 비해 아쉽게 나왔다. 그런데,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몰라서 준비할 수 없었던 자체 필기시험과 면접은 붙었다. 어리버리하고 서울이 익숙하지 않아, 면접날 엉덩방아를 크게 찧고 나서도 다행히도 통과했다.


그러고나니, 열심히 한다는 게 무엇일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기보단, 수능 공부하면서 그래도 쌓인 지식들이 이 자체 시험과 면접에서 빛을 발했다고 생각해야할 것 같다. A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이었는데, 하다보니 B와 적합해서 B라는 목표에 가닿는 것. 인생에서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나는 것 같다. A를 이루지 못 했다고 해서 그걸 준비하던 시간이나 과정이 소멸하는 건 아니니까.




+ 수능 안 보는 대학 갈 줄 알았으면, 가장 골칫거리였던 수학에 대한 스트레스를 안 하고 살았을텐데... 역시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

+ 여전히 책을 좋아하지만, 골고루 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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