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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Dec 12. 2021

레퍼런스를 생각한다는 건

매거진 <We See> vol.2  / 구보라 

그동안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그 방향을 명확하게는 알지 못했어도, 계속 마음이 이끌리는 사람들은 있었다. 자연스럽게 ‘멋지다’라는 생각이 절로 나고, 그들이 걸어온 길을 검색해보게 되고, 작품을 찾아보게 되는 사람들. 그들을 좋아한 건, 실은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감히’라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그러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은, ‘과연 내가 그들처럼 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1월 초,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형병원 몇 군데를 다닌 뒤에 수술 날짜를 잡았다. 어쩔 수없이 하는 일을 줄여나가다 5월 초 자궁근종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고 나서는 한 달 정도 일을 아예 쉬었다. 한 달 쉬면 회복될 줄 알았으나 생각보다 더 시간이 걸렸다. 


사실 3년 전 퇴사를 한 이후 쉬지 않고 일했다. 회사를 다니진 않았지만, 책방에서 계속 일했고, 글 쓰고, 독립출판으로 책이나 매거진을 냈다.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하는 팟캐스트도 1년 정도 진행, 제작했다. 이 활동들을 통해 콘텐츠에 대한 관심을 계속 둘 수 있었고, 사람들에게 나의 글, 나라는 존재를 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던 활동의 절반도 지금은 못 해내고 있다. 6월부터 다시 일을 사부작사부작하고 있지만,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힘에 부친다. 아픈 걸 알기 전에 했던 계획대로라면, 6월 말에는 단행본이 하나 나왔을 것이고, 이 글이 실리는 매거진 <We See> 2호도 더 일찍 나왔을 수 있다. 그러나 늦어지고 있다. 소통하는 즐거움을 주던 팟캐스트도 쉬고 있다. 책상에 앉아 집중할 체력에 한계가 있다보니, 글쓰는 속도도 더디다.   

   

그래서 불안하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치만큼을 해내지 못 하고 있어서 불안감이 생기는 것 같다. 지금처럼 불안한 생각이 들수록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레퍼런스는 누구인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레퍼런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지만, 그중 한 명을 꼽아본다면 곽정은 작가다.    

  

곽정은 작가에게 눈과 귀가 향한다. 그를 닮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든다. JTBC <마녀사냥>(2013~2015)을 보면서 곽정은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가 연애와 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만 해도, 연예인이 아닌 사람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이 흔한 건 아니었고, 여성이 연애나 성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당당하고 솔직한 그의 모습을 보며, 막연히 멋지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세대엔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확신을 주는 언니 세대가 별로 없었어요. 지금도 남성에 비해선 훨씬 적죠. 대단한 집안 출신이 아니어도, 어릴 때부터 주목 받을 기회가 주어진 게 아니어도, 자신의 지향대로 삶을 이끌어 나가다 보면 힘을 갖게 되고 그걸 누군가에게 나눌 수도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증거가 되고 싶어요.”      


그가 2년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드는 게 곧 레퍼런스가 아닐까. 곽정은 작가는 몇 년 전 상담심리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해 졸업했고, 여성, 심리 상담, 명상, 강의, 책이 있는 공간을 열어 운영하기도 했다. 글을 쓰고, 명상과 상담심리 공부를 통해 스스로에 대해 깊이 공부하는 점을 보며 닮고 싶어졌다. 그리고 강연, 공간 운영, 유튜브 등등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소통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모습도 닮고 싶다.   

   

사실 최근 그 덕분에 많은 힘을 얻었다. 수술 이후 한 달 동안 꼼짝없이 집에서 쉬고 있어야할 때, 에너지가 없고 무기력함에 휩싸였을 때 그의 유튜브 채널 영상들을 봤다.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편안하게 친한 언니처럼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말해주니 고마웠다. 힘이 났다.      


“여러분 주식 시장 그래프 보시잖아요. 상승장이 있을 때에 그래프가 올라가잖아요. 쫙 올라가요? 절대 아니죠. 그 안에서는 무수히 많은 하락세가 있어요. 내려갔다가 올라갔다가 하지만 그 전체적인 그래프를 1년치를 보면 올라가 있는 거죠 그쵸? (중략) 뒷걸음질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인생의 구간을 견디는 사람만이 결국은 내가 누군지 알게 되고 행복의 의미도 더 깊숙이 알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도 돌아보면 뒷걸음질 칠 때 성장이 일어났어요. 그때 뒷걸음질 칠 때 내가 주저앉지 않으면. 그게 중요합니다.”      


스스로가 하락세에 있다고 여기며 ‘계속 이렇게 내려가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던 나에게, 이 말은 큰 위로로 다가왔다. ‘뒷걸음질치는 이 시기를 견뎌내어 성장해야지’. ‘언젠가는 나도 곽정은 작가처럼 자신만의 전문성을 키워서,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도 끼치며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무기력한 순간들을 조금씩, 조금씩 빠져나왔다.      


레퍼런스를 생각하면 내가 무얼 바라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우선 나의 레퍼런ㅅ를 떠올리면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사람(은유, 장강명, 정세랑, 강민선 작가 등). 편집자 일을 하거나 책방을 운영하는 등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SNS, 유튜브 등을 통해 자신의 분야에 대해, 자신의 삶과 의견을 표현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사람. 이를 통해 대중들과도 소통하면서 성장하는 삶.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그들처럼 되기 위해서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만 앞서간다고 되는 일은 없으니까. 건강 회복에 신경 쓰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천천히 계속 해야겠다. 그게 지금 나의 최선이다. 원래 하던 일들을, 다소 더디더라도 멈추지 않고 하다보면 내가 바라는 레퍼런스처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레퍼런스를 생각한다는 건, 곧 나를 생각하는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과연 내가 레퍼런스처럼 될 수 있을까’라며 불안해할 때 내 삶 가까이에서 따스하게 손 내밀어주는 사람들도 떠오른다. 닮고 싶은 면이 많은 소중한 사람들. 불안해하거나 조급해하지 말라고,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그들 덕분에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나만의 레퍼런스가 있다면, 나를 잃지 않고 어떻게든 나아갈 수 있다. 넘어졌을 때 누군가가 손 내밀어주면 일어날 수 있는 것처럼.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멀리 아스라한 불빛이 보이면, 그 불빛을 보며 일단은 걸어갈 수 있는 것처럼.      











구보라

보고 듣고 씁니다. 글쓰고, 책방에서 일하고, 팟캐스트를 만듭니다. 좋아하는 콘텐츠를 보고, 그 의미를 짚어내며 쓰고 나누는 걸 좋아합니다. 공저로 <쎗쎗쎗, 서로의 데드라인이 되어>(2019), <이토록 씩씩하고 다정한 연결>(2021)을 썼습니다. 부드럽지만 단단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instagram @9_bora 

brunch @9bora 





독립 매거진 <We See> 2호는 2021년 9월 1일에 출간됐습니다.


매거진 <We See> 2호는 전국 40여군데 독립 서점에서 온, 오프라인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매거진 <We See> 인스타그램에서 더 자세한 소식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magazine.wesee/ 

 

2호에 대한 설명이 더 많이 담긴, 2호 텀블벅 펀딩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s://www.tumblbug.com/wese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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