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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Dec 22. 2021

'르포 전문' 한승태 작가를 소개합니다

-열악한 노동과 사육 현장을 바라보는 냉철하고 따스한 시선 -

2018년 겨울에 썼던 리뷰. 책 리뷰 매거진 <오글리>에 실었던 글이다. 




올해(2018년) 5월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한승태’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한승태 작가가 쓴 <인간의 조건>은 내 인생에 손꼽히는 책인데, 다음 책 왜 안 나오지 안 나오지 했는데 나!왔!다!’ 이후북스 서점 계정에서 한승태 작가의 신간을 소개하는 글이었다.     


한승태 작가라니. 그의 전작을 좋아하는 나로선, 그의 신간이 너무 반가웠다. 내게도 <인간의 조건>은 인생책. 5년 전인 2013년, 당시 대학교 4학년이던 나는 독서 모임에서 한승태 작가의 <인간의 조건>을 읽었다. 모임 멤버 중 한 명이, 요즘 이런 책이 나왔는데 같이 읽어보는 게 어때? 라며 추천해줬다. (추천해준 사람에게 정말 감사하다.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계속 이 책을 몰랐을 수도 있다. 생각보다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주위 사람들에게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이 정말 좋다며 추천하면 ‘한나 아렌트?’, ‘앙드레 말로?’라고 되묻는다.)      


5년 전이다보니 자세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책을 읽으면서 계속 감탄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승태 작가를 알게 된 걸 행운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독서 모임에서 <인간의 조건>을 읽었던 사람들 모두 이렇게 생각했었다. 아, 너무 책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계속 이 책이 좋다는 이야기만 써버렸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인간의 조건>이 대체 무슨 책이길래? 이런 생각이 들 것 같다.    

  

<인간의 조건>은 한승태 작가가 돼지농장, 자동차 부품 공장, 꽃게잡이배, 편의점, 강남의 주유소 등에서 일했던 경험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르포르타주다. 르포르타주는 기록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현장을 직접 체험해 작성하는 기록 문학이다. 이 책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노동 현장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밝혀두지만 이 책은 판타지 소설이 아니다. 나는 누구라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법한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꽃게잡이 배 선원이나 양돈장 똥꾼처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우리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들의 숙소는 어느 정도 크기인지, 여름엔 얼마나 덥고, 겨울엔 얼마나 추운지. 사람들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꿈은 무엇인지. 식사로는 어떤 음식이 나오고 급여는 어느 정도인지. 작업은 어떤 과정을 거치며 도구는 어떤 것을 사용하는지.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등...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잊힐 게 분명한 사소한 사항들로 책을 가득 메우고 싶었다.’

     

<인간의 조건>은 단지 하루 이틀 ‘힘든 일’을 ‘체험’해보고 쓴 책이 아니다. 위의 글에서 작가가 말했듯이, 자신이 일한 경험 그대로를 기록해서 보여주면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사람들이, 언론이 관심 가지지 않는 그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힘든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지나치게 미화하는 시각도 배제했고, ‘내가 저들보다는 낫다’는 시각도 가지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려는 태도도 없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조건>은 작가의 필력이 압권이다! 일하는 과정, 환경, 사람들의 모습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한다. 아주 심각하고 괴롭게 일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유머러스하게 표현할 때가 많다. 어쩔 수없이 피식거리며 웃게 된다.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재밌게 표현해서,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아... 모두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었지,라고 생각하면 씁쓸해진다.)      


<인간의 조건>에 대한 글을 쓰며, 책에 나온 일터에서의 노동자들의 현실을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아빠의 노동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아빠가 일하는 곳을 찾아간 적도 없으니, 어쩌면 <인간의 조건> 속 노동현장보다도 더 모를 수도 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빠로부터 조금 들었던 바에 따르면 아빠는 2년 전쯤부터 작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사무직이 아니라, 기계를 돌리는 일이라고만 들었다. 기계를 돌리려면 계속 서 있어야한다. 그래서 늘 다리나 발바닥, 허리가 아프다. 아빠의 일하는 시간은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8시까지다. 회사에 있는 시간만 12시간이 넘는다. 이런 쪽(?)의 일을 잘 모르는 사람은 ‘아니, 요즘 시대에도 12시간을 일하는 곳이 있나?’라거나 ‘나도 야근하면 12시간 일할 때도 있음’ 뭐 이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건 공장이라는 현장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생각이다. 이른 아침부터 일하고 점심도 그곳에서 먹고, 일하고 저녁도 그곳에서 먹고 또 일하고 퇴근한다.      


저녁 먹고 나서 하는 일이 ‘잔업’인데 ‘잔업’을 하지 않으면 월급의 상당수가 줄어든다고 한다. 아, 아빠에겐 주5일제도 없다. 토요일에도 5시까지 일을 한다. ‘잔업’과 토요일 근무는 사실상 필수다. 두 가지를 하지 않으면 월급이 반토막 나기 때문이다. 아빠는 이렇게 하루의 반 이상을 회사에 바치는데, 정작 월급은 적다. 주52시간 근로제, 주5일 근무 이런 건 아직 매우 머나먼 일터인만큼, 월급도 옛날 기준에 멈춰있는 것 같다. ‘아빠의 인생(시간)을 월급이라는 적은 돈으로 바꿔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이 아프다. 아빠는 일하고 집에 오면 9시가 다 되는데, 그럼 그 때에 집안일을 좀 하고, 아빠가 좋아하는 TV를 몇 편 본다. 이마저도 11시쯤엔 잠들어야 해서 아빠의 자유 시간은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셈이다.      


<인간의 조건> 속 50~60대 아저씨들이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꽃게잡이배를 타고 돼지농장에서 일하는 것처럼, 다른 일터를 구하기 힘든 아빠 또한 회사에서 ‘그만 나오라’고 할 때까지는 계속 일할 것이다. 아빠 생각이 나서였을까. <인간의 조건>의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읽으며, 더 크게 공감하고 마음이 안 좋았던 것 같다. <인간의 조건>은 2013년에 나온 책인데, 시간이 훌쩍 흐른 2018년에도 왜 노동 환경은 별반 달라진 건 없는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승태 작가가 이런 공장에서 일을 한다면 또 어떻게 바라보며 묘사할까 싶기도 하다.      


올해에 나온 한승태 작가의 신간 <고기로 태어나서>는 <인간의 조건>만큼이나 흥미롭다. 물론 다루는 내용이 결코 밝은 내용은 아니지만. <인간의 조건>이 생생하고 진솔하게 와닿았던 건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일을 한 게 아니기 때문이란 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방의 한 대학 졸업한 뒤, 쉽게 취업이 되지 않자 우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을 시작했다. 한승태 작가는 <인간의 조건> 이후로도 4년 동안 여덟 곳의 동물 농장에서 노동자로 일했고, 그 경험이 담긴 책이 바로 <고기로 태어나서>다.     

 

이 책은 ‘채식을 하자!’는 책이 아니다. 작가는 본인이 채식주의자도 아닐뿐더러 채식을 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내가 이 책을 통해서 어떤 목표를 꿈꿔볼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맛있는 먹을거리뿐 아니라 동물의 살점으로서의 고기 역시 있는 그대로 보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회식 자리에서 육즙이 흐르는 삼겹살 한 점을 집어 들었을 때 당신과 고기 사이에 어떠한 환상도 남아 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는 그저 닭, 돼지, 개가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위해 길러지는 실상을 보여준다. 동물들을 그토록 비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기르는 모습, 동물의 부리나 이빨을 자르는 모습,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동물을 굶기는 것, 갓 태어난 동물을 쓸모없다는 이유로 쓰레기처럼 버려버리는 모습, 20년을 살 수 있는 동물을 한 달 만에 죽이는 모습 등.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몰랐고, 외면했던 이야기다. 묘사가 너무 적나라해서 읽다보면 내가 그 장소에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영상보다도 이처럼 글을 통한 묘사가 사람들의 뇌리에 더 강렬하게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선지 <고기로 태어나서>에 대한 기사나 글에서는 이 지점들을 많이 부각하곤 한다. 그런데 한승태 작가는 동물이 처한 상황만큼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였고, 그들의 목소리와 삶을 기록했다. 특히나 똥물에 질색하던 쌍남, 수리얀, 이 씨 아저씨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 환경과 그들의 발언들이 생생하다.      


“농장장 새끼 돼지 사료 안 챙겨. 다 내가  챙겨. 새끼 돼지 굶어 죽어. 어떡해? 농장장 생각 안 좋아. 농장장, 팀장 똥 안 치워. 나 또 똥 치워. 힘들어.”     


“다른 데 똥 다 빠져. 여기만 이렇게 해. 여기 CCTV 많아. 사장님 봐. 못 앉아. 여기 다섯 사람 일 못 해, 그만뒀어. 승태 내일 가. 여섯 사람, 나 가, 일곱 사람.”     


언론이나 일자리 관계 부처에서 만약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는다면 ‘동물’만큼이나 열악하게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그 환경을 개선해나갈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깊이있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을 쓰고보니 너무 긍정적인 바람같기도 하다. 너무나 만연하거나 잘 보이지 않는 문제들은 시급하게 여겨지지도 않아서, 중요한 정책 의제로도, 언론에서도 다뤄지지 않는 게 현실이니까.      


한승태 작가는 자신이 속해있던 환경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하다. 그리고 그 비판들이 현실에서 붕 떠 있지도 않다.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여러 사람들을 살펴보고, 강자나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해서는 매우 날카롭게 비판한다.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 이렇게 강강약약의 자세로 사람과 구조를 바라보는 눈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선은 <인간의 조건>에 이어 <고기로 태어나서>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돼지농장의 용 과장은 태국인 노동자들에게 “이 개새끼야!”, “이 씨발놈아! 그따위로 일하면 니네 나라로 쫓아내 버린다!”를 밥먹듯이 한다. 그리곤 “내가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욕 안 하고 소리 안 지르면 그날 일 못 끝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래전에 스티븐 파스퀄이라는 배우의 인터뷰에서 용 과장 같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이야기를 읽었다. 그는 열심히 노래를 부른 뒤 폭언을 당하고 터무니없는 이유로 오디션 장에서 쫓겨난 경험을 들려준 뒤 이렇게 덧붙였다. (할 수만 있다면 한국의 모든 일터마다 붙여두고 싶다.)      


“It is easy to do your job, any job without being jerk. It's simply a choice."’(쓰레기처럼 굴지 않고 일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말이다. 그건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짐작건대 ‘좋게 얘기하면 들어 처먹지를 않는’ 이유는 좋게 얘기한다는 그 사람들이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것이 복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복종은 좋은 말로 이끌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니 그들은 애시당초 방법을 잘못 선택한 셈이다.’(p.173)     


특히 이 지점을 읽고 너무 공감했다. 직장에서 힘들었던 경험이 떠올라서였다. 사실 정말이지, 폭언을 하는 등 쓰레기처럼 굴지 않아도, 직장에서 사람들은 서로 일을 잘 해나갈 수 있다. 그래서 더욱더 ‘쓰레기같은 행동을 하는 건 개인의 선택’이라는 저 문장이 와닿았다. 이는 식용 농장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일터에서 일어나는 문제다. 그리고 평생을, 안그래도 힘든 일을 하면서, 쓰레기같이 행동하는 사람들과 계속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 조건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      


<인간의 조건>에서도 이런 식의 비판적인 시각이 매우 좋았다. 아래는 발췌.      


'막내를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했다. 가장 주눅 들어 보이는 사람을 찾으면 됐다.'(p.78)   

  

'상위 계급은 하위 계급을 마음껏 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나는 이 권리를 행사하는 데 소홀한 선주를 본 적이 없다.'(p.84)     


'고기 반찬이 나왔다고 잔치 분위기로 변하다니, 그게 무슨 쌍팔년도 이야기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지금이 21세기라고 해서 모두가 화상 통화를 하고 제트팩을 메고 출근하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IMF 시절을 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서울 올림픽 시대의 삶을 산다. 삶의 스펙트럼 전체를 살펴본다면 얼마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동시대적인’ 생활 수준을 누리는지 확인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p.237-238)  

   

'나는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누군가는 최악의 생활환경에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면 일하는 게 문제 될 게 없다는 사고방식 말이다. 그런 생각은 엄하게 훈육받은 아이들이 장래에 성공한다는 믿음만큼이나 헛소리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왜 누군가는 항상 고통 받으며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인가? 어째서 가장 영향력 없는 사람들만이 이 엉망진창인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단 말인가?'(p.332)      


'인건비를 줄이는 것. 나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악의 근원이 이런 모습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사람에게 들어가는 돈을 줄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 말이다.'(p.383)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한승태 작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어떤 작품이든 현실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도록 만드는 작품을 좋아한다. 그것도 어려운 말이 아니라 쉬운 언어로. 그래서 한승태 작가의 책이 좋다. 앞으로도 그의 책을 오래오래 계속 보고 싶다. 



2021/12/22 메모 

퇴사를 하고 공부를 하던 다소 답답하고 어렵던 시기였던 3년 전에 썼던 글이다. 한승태 작가의 책은 1년 전 팟캐스트에서 다뤄서 그때 다시 읽었었다. 역시 좋았다. 신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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