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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Jul 03. 2018

라디오

2018년 3월 29일 (이후북스 독립출판물글쓰기 워크샵 2차 과제) 

오늘 아침, MBC 라디오 개편 소식을 듣고 슬퍼졌다. 이제 더이상 테이의 꿈꾸는 라디오를 들을 수 없다. 나는 지금도 꿈꾸라를 들으며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 퇴근하고 집에 오면 8시 즈음인데, ‘정유미의 FM데이트’가 할 시간이다. 아무래도 짐 풀고 저녁 준비하거나 씻으면서 많이 듣는다. 그런데 정유미의 FM데이트는 영 정이 들지 않았다. DJ 특유의 스타일 때문이었다. (윤식당의 정유미는 아니다.) 정유미는 걱정하는 척, 좋아하는 척 하는 경우가 많다. 면 다 티가난다. 아날로그 라디오다보니 주파수를 바꾸는 게 귀찮아서 그냥 두고 듣기는 한다.      


예를 들어 정유미는 '저 지금 혼자 제주도 왔어요!' 라는 문자를 소개할 때, "어유, 제가 지금 제주도라면 맛있는 밥이라도 같이 먹을텐데~ 아쉽네요~ 다음에 혹시 마주치면 꼭 아는 척 해줘요!" 이런 멘트를 했다. 제주도 갈 일도 없을 거고, 있더라도 지금 그 문자 보낸 청취자랑 어떻게 만날 줄 알고, 그런 맘에도 없는 빈 말을 하는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테이는 이런 문자에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와-혼자 제주도라니 너무 좋은데요. 저는 제주도 혼자 간 적이 언제였냐면" 라든가. "OO쪽 그 식당 가면 맛있어요"라거나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한다. 빈말이 없고, 수더분하고 소탈하다. 그래서 좋다. 그냥 친구랑 할 말만 하는 느낌. 라디오에 대한 애정도 듬뿍 느껴진다.     


언제나 10시부터 12시에는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물론 라디오를 너무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이렇게 애정하던 라디오 DJ가 하차하거나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지는 일은 늘 아쉽고 아쉽다. TV와는 다르게, 생방으로 평범한 일상에 그냥 스며드는 매체니까.     


신해철이 고스트네이션 하차할 때, 성시경이 푸른밤을 하차할 때 마지막 방송을 들으며 펑펑 울었었다. 무엇보다 종현이 푸른밤을 하차할 때가 아쉽고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방송을 들으며 울지는 않았다. 취재를 하기 위해 동료 기자와 함께 푸른밤 마지막 방송 현장을 찾았고,  라디오 부스 밖에서 종현을 지켜봤다. 작가들, PD들도 울지 않는데, 취재를 온 내가 ‘애청자’라는 이유로 같이 울기는 영 멋쩍었다. 종현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참고 참았던 기억이 난다. 그 누구보다 라디오를 사랑했던 DJ였다. 청취자들에게는 고스란히 듬뿍 전해진다.      

테이는 내게, 종현만큼이나 라디오를 사랑하는 DJ로 떠오르는 사람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다. 2016년에 테이는 인터뷰에서 “유희열 형, 이소라 누나, 신해철 선배 같은 DJ가 되고 싶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지만, 이미지에서 라디오가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디오를 하지 않는 순간이 오더라도 사람들이 ‘아, 나 저 사람 라디오 좋아했어’ 하는 생각이 드는...마치 하나의 히트곡처럼, 테이 하면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가 떠오르는 것처럼, 누군가 테이의 이름을 말했을 때 라디오가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시 꿈꾸라로 돌아올 거라 믿는다. 8일까지만 들을 수 있는 꿈꾸라 클로징멘트. 


"여러분들은 좋은 꿈들만 꾸시구요, 난 니 꿈 꿔." 


남은 시간 동안 더 소중한 마음으로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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