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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Jul 08. 2020

나만의 물결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책, 태재 <스무스>


한 달 전 무렵, 팟캐스트 보끌보끌에서 태재 작가의 <스무스>를 소개했다. <스무스>는 내가 좋아하는 독립출판물 TOP 5 안에 드는 책이다.  (http://www.podbbang.com/ch/1775150?e=23555523


<스무스>를 처음 본 건 지난해 9월 말에 있었던 퍼블리셔스테이블(독립출판북페어)에서였다. 그때까진 태재 작가의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일단 그의 책을 먼저 읽어보고 사야지 싶었다. 그러다 11월에 열린 언리미티드에디션(독립출판북페어)에서 <스무스>를 구입했다. 10월에 태재 작가의 글을 읽고 좋았기 때문이다. 10월, 제주의 유람위드북스라는 책방/북카페를 갔었는데, 태재 작가의 산문집도 있어서 처음으로 읽었다. 그 책이 <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가고>였다. 공감가는 문장이 굉장히 많았다. 구체적이면서도 정확하게 써내는 에세이를 매우 좋아하는 편인데 태재 작가의 글이 딱 그랬다. 그때부터 태재 작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추가됐다.     


책에 적혀있는 책 소개를 적어보면 '3년차 취미 수영인 태재라고 합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때 광안리 앞바다에 빠졌었는데요, 그때부터 물을 두려워했어요. 그렇게 10여 년을 두려워하다 보니, 저는 저 자신에게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죠. 곰곰이 따지고 보면, 못하는 게 아니라 할 줄 모르는 것일 뿐이었는데 말이죠. 선입견이 잠재력을 누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스물여덟, 올해는 기필코 수영을 배우자 다짐했고 그 해 여름 수영장에 등록했어요. 기필코라고는 했지만 도중에 포기할 경우를 대비해서, 수영장을 등록하던 날부터 일지를 썼어요. 지금 소개하는 『스무스』 는 그 일지를 엮은 책이랍니다. 물에 뜨지도 못했던 제가 초급반을 거쳐 중급반, 자유수영 으로 수영장을 다녔던 10개월간의 기록입니다.'    


<스무스>에는 운동을 해보려했거나, 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공감할 만한 문장들이 넘쳐난다. 작년에 잠시 수영을 했었다. 8월 19일 월요일에 수영장을 가서 등록하고, 바로 이마트에 가서는 수영복을 구입했다. 그러지 않으면 자꾸 수영장 가는 걸 미룰 것 같았다. 덕분에 당장 그 다음날인 20일부터 다니기 시작했고. 주 3회 정도. 9월 26일까지 다녔다. 거의 뭐 1달 정도 하고 그만둔 셈이다. 아침 10시에 하는 초급반이었는데, 수영을 꾸준히 간다는 건 정말 쉽지는 않았다. 8, 9월에 수영장을 갈 때는, 아무래도 밖이 더우니까 물에 들어가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9월에는 뭔가... 춥고.. (하하하 이 모든 것은 핑계!) 여러 일정이 10월초에 몰려 있어서 그거 끝나면 등록해야지 했는데, 결국 하지 않았다. 9월 말에 책 나오고 나서부터는 좀 더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긴 했지만, 아무리 바빠도 운동을 하려면 할 수 있을텐데... 결국 뭐 의지 부족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10월을 보내고 나니 운동을 하지 않는 나에 대해서 또...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월에 심하게 감기를 앓았다. 심하게 앓던 중에, 결심했다. 요가를 하기로. 아프니까 오히려 더 운동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다. ‘내가 몸이 약하니까 이렇게 아픈 거다’, ‘근본적으로는 운동을 해야해’, ‘원래 하고 싶던 운동이 뭐였지?’ 그러다 요가가 생각났다. 11월 1일부터 요가 시작!  요가를 시작한 그 주에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갔다. 그리고 그때 이 책을 샀고 읽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서 <스무스>를 읽어선지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들이 수도없이 많지만, 그 중 몇 문장만 발췌해서 적어본다.      


‘오늘은 배영을 배운지 6일만에 처음으로 물에 누워서 나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노를 젓듯 팔을 곧게 펴서 힘차고 빠르게 저었더니, 처음 ‘부-웅’ 할 때처럼 부유한 느낌이 들었다. 강사님도 내가 부유해진 것을 알아차렸는지 “배영 좋아요. 발만 조금 더 차요.”라고 했다. 배영을 배운 후로는 처음 받은 칭찬이었다.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떠올라서 춤을 출까 했지만, 나는 고래가 아니라서 참았다. (65)’     


이런 문장을 보면서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래라니! 이런 유머 포인트를 좋아하는 편이다.      


‘이 오리발만 있으면 대한해협도 횡단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발을 차는 것도 팔을 젓는 것도 만사가 귀찮아지고 그저 유유히 떠돌고 싶어졌다. 심지어 월요일하고 목요일만 와야겠다는 생각도 2초 정도 들었다. 같은 힘으로 더 나아가게 하는 도구.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 (127)’      


이런 문장은 매우 근사하다. (덧붙이자면 태재 작가의 에세이 수업을 1월에 들었다. 그때에 많이 듣고, 그래서 꽂힌 말은 ‘근사하다’는 단어였다.)      


또 하나 소개하고 싶은 문장이 있다. ‘나 또한 이곳에서는 나를 향한 시선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수영장에 있는 모두가 자신만의 시간을 내어서 오늘 하루 치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를 이어나가는 것이다. (157)’     


이 문장이 좋아서, 이 문장을 글감 삼아 글을 쓰기도 했다. 당시 수강 중이던 요가 수업, 요가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썼다. ‘오늘 하루 치 호흡’으로 바꾸어서... 그 글은 브런치에 올라와있다. > https://brunch.co.kr/@9bora/36     


마지막으로 글과 관련해서 공감 갔던 지점들을 적어본다.      


‘힘들거나 아프거나 지루하거나, 현재가 고통스러울 때는 자꾸만 시계를 보게 된다. 지나갔으면 하는 시간일수록 느리게 느껴지고, 멈췄으면 하는 시간일수록 빠르게 느껴진다. 나는 이 시간이란 녀석을 이해하고 싶어서,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 기록은 마음의 양식이라 부르는 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책이 되기 전에도 이미 내 마음에서는 양식이다. (80)’     


감정을 기록하는 이유가 공감이 갔고, 그 기록이 책이 된다는 부분이 좋았다. 표현력에 감탄한다. 마음의 양식이 되기 전에 이미 내 마음에서 양식이라는 내용 또한 마음에 닿았다. 태재 작가는 읽기 어렵지 않은 문장을 쓰면서도, 다시금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문장을 쓴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참 좋아한다.      


‘어떤 내용이 담길지는 예상할 수 없었지만, 일지를 쓰는 일은 나의 호흡을 가다듬게 해주었고 나의 무력감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 노력이 성공한 덕분에, 나에게도 작업방식이 생겼다. 그 방식을 선언해보자면, ‘내가 주기적으로 입장하는 공간에서 관찰하고 경험하는 일에 관해서 쓴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작업이 여럿 쌓인 후에는, ‘맞아, 이 시간에는 이 공간에서 보냈었지.’하고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서른의 나는 그런 마흔을 노리고 있다.      

매일매일이나 꾸준히가 아니다. 앞으로 할 수 있는 일, 이따금 반복하는 일이 있다면 그 과정을 일지로 적어보자. 내 안의 생각을 바깥으로 꺼내 내 눈으로 보자. 다듬을 문장이 있다면 다듬고, 지울 문장이 있다면 지우자. 이 과정이 생활을 스무스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언젠가 당신의 생활에도 물결이 생긴다면, 그때는 당신이 먼저 말해주기를 바란다. 나는 계속 흐르고 있겠다. (163)’      


1월에 에세이 스탠드 수업을 들으며 매주 1편씩 총 3편의 에세이를 썼다. 3월부터 3달 동안 온라인 글쓰기 수업인 ‘에세이 드라이브’를 들으며 매주 1편씩 총 12편의 에세이를 썼다. 그러다 5월부터는 잠시 쉬었다. 그랬더니 나의 일상을 관찰하고 그 일상을 글로 옮기고 있지 않다. 또는 글감으로부터 촉발된 나의 생각을 정리할 일조차도 없다. 물론 콘텐츠 리뷰나, 책으로 만들기 위해 쓰는 편지 글은 쓰고 있었지만.      


내 생활이 어떠한 물결 없이, 고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에세이 드라이브를 신청했다. 7월 7일인 오늘, 첫 번째 글감이 온다. 그 글감으로 다음주 월요일까지 글을 써서 내야 한다. 최근의 내 안의 생각을 바깥으로 꺼내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에세이를 묶어서 책을 내야지, 라는 명확한 기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써서 내고는 싶다. 쓰다보면 그 글을 보며, 어떤 책으로 엮어낼 수 있을지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스무스>는 고여있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도록 만들어주는 책이다. 

나만의 물결을 만들어내고 싶게 만든다.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같은 영향력을 끼치지 않을까.       

    



+ 팟캐스트 방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태재 작가에 대한 소개를 더 잘 해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봤다. 그때 발견한 유튜브 [이게 책임감] 채널에 있는 태재 작가 영상을 보며 내용을 더 적어본다. 


먼저 태재라는 이름은 태재 작가의 동생들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동생인 태희 그리고 민재에서 한 자씩 섞어서 태재. 그래서 태재 작가가 어릴 때부터 집에서는 태재라고 불렸었다고. 그러다 독립출판으로 책을 출간할 때 본인의 필명이 갖고 싶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서 불리던 태재란 이름을 쓰기로 했다. 


"태재라는 이름에 의미를 규정한다면. 세상에 등록된 이름은 강기택. 등록되지 않은 이름은 태재"라고 한다. (나 또한 주민등록상 이름은 구보라이지만, 집에서 불리던 이름은 구슬이었어서 괜히 공감이...)     


태재 작가가 독립출판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평소에도 죽기 전에 책을 한 권 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긴 했었는데 한 친척과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는 걸 보며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써두었던 글들을 책으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대학교 행사 진행을 총괄하며 기념 도록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인쇄 업체에 찾아가서 견적을 내고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나온 책이 <애정놀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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