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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Aug 31. 2020

전해지지 못한 마음들이 담긴 책

<부치지 않은 편지>(익명의 발신인 82명, 77페이지, 2020)

‘부치지 않은 편지가 있나요? 

지나간 사랑에게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에게 혹은 지나간 날의 나에게 혹은 언젠가 내가 만나게 될 누군가에게 네 번째 pages는 ‘부치지 않은 편지’라는 하나의 말로 시작합니다.      

편지는 항상 대상이 있고 부친다는 (전달이라는) 행위를 수반합니다. (당신은 어떤지) 안부를 묻고 (나는 이렇게 지낸다는) 소식을 전하고 (상대방의 몸이나 마음이 움직이길 바라는) 용무를 전합니다. 당신이 부치지 않은 편지를 혹은 차마 부칠 수가 없어서 마음 한편에 접어 둔 편지를 모으고 모아 책에 실어 대신 보냅니다.’ 

- <페이지스 4집 - 부치지 않은 편지> 책 소개 중에서 -      


<페이지스 4집 - 부치지 않은 편지>(익명의 발신인 82명, 77페이지, 2020)는 부치지 않은 편지들을 가득 모인 책이다. 지난 봄 무렵, gaga77page 인스타그램 공지를 통해 부치지 않은 편지를 받는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 그 공지를 봤을 땐, 나에게 부치지 않은 편지가 딱히 없다고 생각했다. 연인에게 편지를 썼다가 주지 않은 적도 없고... 헤어지고 나서 썼는데, 안 준 적도 없다. 헤어지고 나서 일기는 썼어도, 그 상대방에게 편지를 쓰듯이 쓴 적은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생각났다. 내게도 써놓고 부치지 않은 편지들이 있다는 걸. 부치지 않은 것이라기보다는 부치지 못 한에 가까운 편지. 그래서 그 편지를 보냈고, 감사하게도 책에 실렸다.      


이 책은 7개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장의 시작마다 노래 가사가 적혀있다. 그 장에 있는 편지들의 결과 맥락을 같이하는 가사들이다.      


- ‘따로 돌아누운 외로움이 슬프기만 해요’ - 이승환 <가족> 중 - 

- ‘날 떠나던 뒷모습이 자꾸만 멈칫하신 건 날 사랑한단 얘기로 들렸죠’ - 휘성 <안녕히 계시죠> 중 

- ‘못다 했던 우리들의 사랑 노래가 저 하늘 별 되어 아픈 내 가슴에 맺힌다’ - 전영록 <종이학> 중 -

- ‘그대 지난날들을, 그대의 아픈 얘기를 모르고 싶은 걸’ - 애즈원 <원하고 원망하죠> 중 - 

- ‘서로를 위한 길이라 말하며 나만을 위한 길을 떠난 거야’ - 여행스케치 <옛 친구에게> 중 - 

-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 신해철 <나에게 쓰는 편지> 중 - 

- ‘눈물에 번진 구름같은 노을빛이 내리면 술 생각처럼 떠오르는’ - 포지션 <하루> 중 -      


사랑하는 가족에게, 지나간 연인에게,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친구에게, 한때 삶에서 마주쳤지만 지금은 만나지 않는 사람에게,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 쓰여진 편지들.      


82편의 편지들을 읽다 보면, 감정 이입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산 누군가가 쓴, 익명의 편지이지만... 진심이 꾹꾹 눌러 담겼기 때문이다. 그 진심이 한가득 보였다. 편지가 닿길 바라는 상대방에겐 정작 그 편지가 가지 않았다는 점을 알기에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여러 편지가 마음에 와닿았는데, 그중에서도 22번 편지 ‘바다에서 손을 잡고 싶었다’가 마음을 많이 건드렸다. 친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쓴 편지다.     


‘수도 없이 쓰다듬고 잡고 가까이 있고 싶었지만 결국 참았다. 대신 그때마다 매번 마음 속에 진한 선을 그었다. 이 이상 내 감정이 넘치지 않도록. 혹시라도 실수해서 그 애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내 생각을 들키지 않도록. 유일하게 용기냈던 것은 말없이 꽉 안아줬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애가 내 어깨에 먼저 기댔을 땐, 갑자기 등 뒤에 있던 바닷물이 모래 위가 아니라 심장 속에서 하얗게 부서지더라.’ (92)      


심장에서 바닷물이 하얗게 부서진다... 그런 마음. 이 편지를 쓴 사람은, 좋아하는 친구에게 고백할 마음을 먹지 않는다. 그 마음을 조용히 지니고 있다가, 스스로 끄겠다고 써두었다. 그래서 좀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25번 편지 ‘당신을 담은 가슴이’. 이 편지의 수신인은 사랑했던 연인이다. 지금은 헤어진 사람에게 쓴 편지.      

‘어차피 볼 일 없을 테니, 봐도 본인인 줄 모를 테니 좀 더 솔직해져 볼게. 몇 문장 안 되는 이 편지는 사실 눈물과 함께 썼어. 한 줄 쓰고 울고 한 줄 쓰고 울었어. 종이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야. 종이마저 울면 안 되잖아.      

 감정이 정돈되어 있지도 않아. 침착하려고 노력해봤는데 안 돼. 날것의 마음이야. 어차피 모르잖아. 내가 얼마나 생각하는지.      

 좋아해. 보고 싶어. 이 마음 몰라야 해. 

 보고 싶어, 아직도. 속으로 늘 되새기는 말이지만, 다음 생에는 같이 사랑하자.’(96)     


이렇게 먹먹하다니! 슬펐다. 눈물과 함께 썼다는 문장 그리고 마지막 문단은 통째로. ‘다음 생에는 같이 사랑하자’는 말에서도 마음이 툭... 다음 생이 존재할까.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지금 생에선 안 되는 걸까. 헤어지고 나서도 이렇게까지 못 잊을 누군가는 만난 적이 없었기에 전부 공감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좋았던 편지기에 인용해보았다.      


58번 편지 또한 마음에 와닿았다. ‘K에게’. 이 편지는 좋아했던 사람에게 쓴 편지다. 그 사람은, 이 편지를 쓴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알면서도 슬쩍 외면했던 사람.      


‘상처를 받아도 그것마저 다 나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제 스스로를 속이는 일은 그만두려고 해. 너를 좋아하는 내 모습이 더 이상 좋아 보이지가 않아.’    

 

‘그래서 네게도 부탁하는 거야. 이제 그만 서성거리고 싶어. 깨끗하게 마음 정리하고 발길 돌릴 수 있게 도와줬으면 좋겠어. 나는 너랑 수다 떠는 게 정말 즐겁고 좋아. 너의 그 시답잖은 농담 듣는 재미는 아마 세상 그 어떤 즐거움과도 쉽게 바꾸지 못할 걸. 그런데 앞으로도 우리가 이렇게 친구로 지내면 나는 계속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상처받게 될 거고 여전한 내 마음 확인하며 괴로워해야 할 거야.’     


너를 너무 좋아하지만, 너를 좋아하는 내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 공감이 간다. 그러면 뜨거웠던 마음도 식을 수밖에 없다. 일단은 내가 더 소중하니까..  ‘너의 그 시답잖은 농담 듣는 재미는 아마 세상 그 어떤 즐거움과도 쉽게 바꾸지 못할 걸.’ 이 문장을 읽을 땐 마음이 찡했다. 그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졌다. 이런 시덥잖은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인생에서 많지는 않으니까. 친구라는 존재들이 주는 즐거움과, 내가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누군가가 주는 즐거움은 또 다른 종류의 것이니까. 그만큼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지만, 이제는 호자 좋아하는 걸 그만하겠다는 단호한 결심히 담긴 편지. 인상 깊다.       


모든 문장을 필타하고 싶어서 필타한 편지도 있다. 71번 편지. ‘뜬구름 같았던 관계에.’     


‘어렸을 때부터 내 안의 커다란 존재였던 어머니로부터 ‘독립’했던 것처럼. 생각보다 무거운 존재였던 너를 이런 형태로나마 덜어놓고 나아가고 싶어. 

 그래서 고마워. 더 이상 나에게 짐이 아닌, 사람이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답례는 크지 않아. 

 널 잊지 않는 것. 

 네가 나를 잊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 것.

 너의 존재가 위태로울 때, 사라질 것 같을 때, 희미해질 때.

 나는 가만히 그곳에서 너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을게.

 너가 부탁하든 부탁하지 않든. 조금 오글거리더라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밖에 없네. 

 안녕’


널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안녕. 이 편지는 상대방에게 닿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편지를 쓴 사람은, 편지를 쓰면서 마음이 정리되었을 것 같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꼭 썼어야 할 편지. 

     

스스로에게 쓴 편지 중에서도 기억 남는 편지가 있다. 77번 ‘가장 용기 있던 너에게’.     

 

‘근데 안타깝게도 너의 생각과 다르게 너에게는 안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생길 거야.’

‘그중 가장 큰 나쁜 일은 너의 부모님은 네 생각보다 더 일찍 돌아가실 거야. 너는 나이가 먹으면서 네가 낳은 자식과 미친 듯이 싸울 거고, 그때마다 네 엄마가 보고 싶어도 너는 볼 수 없을 거야. 이런 현실이 앞날에 있다는 걸 내가 그때의 너에게 전했다면, 너는 다른 선택들을 하면서 더 행복해졌을까?’ (278)   

  

왠지 8~9년 후 즈음, 30대 후반의 내가 20대 후반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면 이럴 것 같다. 삶이라는 게 역시 생각과는 다르다. 생각한 것보다도 안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나도 그렇겠지,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다 보면 엄마가 보고 싶을텐데 이미 떠난 엄마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또 어떤 현실이 펼쳐져 있을까? 미래로 날아가서 먼저 볼 수는 없지만... 살면서 ‘다른 선택을 하면 더 행복해질까?’를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지금 최대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고 싶다.       


 ‘세상은 모두 다 힘들다는데 왜 이렇게 너에게는 안 좋은 일들 투성일까?

 내가 감히 너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근데 말이야. 너는 네 인생이 망가진 인생 같다고 말하지만, 나는 너를 보면서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해. 이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고,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느껴져.’(279)      


뭉클하다. 스스로에게, 너는 가장 용기 있고 강한 사람이야. 라고 말할 수 있다니. 그것 자체가 이미 멋진 사람이 아닐까.      


이 책은 빨리 읽을 수는 없다. 편지 하나를 읽고나면, 그 편지의 이야기에 깊이 좀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천천히 다른 책을 읽어가면서 읽게 된다. 생각해보면 이렇게나 많은, 다른 사람이 쓴 편지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진심이 담긴 편지를 읽었고, 마음이 움직이기도 했으며, 여러 자극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 브런치 매거진에서 이 책에 대해서 써보았다. (브런치에서 ‘부치지 않은 편지’에 대한 리뷰 글이 아직 없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맺음말이 3가지 있다. M이라는 사람이 쓴 <맺음말 1: 마지막 편지>, 책을 디자인하고 이 책에 편지도 실은 김현경 디자이너가 쓴 <맺음말 2: 편지가 책이 되는 일> 그리고 이 책을 기획한 gaga77page 대표님이 쓴 <맺음말 3: 그리고>. 아래의 글은 맺음말 1번 중 일부다.      


‘서로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커다란 행운이 곁에 머물렀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결국 서로에게 한없이 아름답던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는 건 우리밖에 없음을

그땐 서로가 몰랐고, 앞으로도 당신은 모르겠지만

부디 당신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이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부치지 않은 편지>에는 수많은 ‘바람’이 있다는 걸. 당신이 잘 지내길 바라고, 행복하길 바라고, 다시 한 번쯤 만나길 바라는 그 마음들. 


그 마음에 대한 답장이 실린 책 <페이지스 5집 - 답장 : 우연한 인연>도 곧 나올 예정이다. 현재는 텀블벅 펀딩 중이다. 나는 위에서 언급했던 22번 편지에 대해 답장을 썼다.

https://www.tumblbug.com/pages05?ref=discover


*페이지스(pages)는 gaga77page 에서 만드는 시리즈다. 매 권 특별한 주제(혹은 문장)와 장르 안에서 다양한 글을 엮어 만들어낸다. <페이지스 1집 - 사랑한 후에>(소설), <페이지스 2집 – 나를 채운 어떤 것>(에세이), <페이지스 – 3집 이름, 시>(시)도 전부 좋아서 누구에게든 읽어보라고 추천하곤 한다. 



*전국 독립서점에 입고되어있다. 물론, gaga77page에 있다. 아래 링크는 gaga77page 스마트스토어. 그리고 알라딘에서도 구입 가능합니다. 


https://smartstore.naver.com/gaga77page/products/4979382258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0086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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