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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Sep 21. 2020

라디오

라디오, 책, 팟캐스트…무엇이 되었든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싶다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가던 무렵 어느날 새벽 2시, 자기 전 MP3 라디오를 틀었다. 그날은 MP3가 새로 생긴 날이었다. 처음으로 혼자 내 방에서 라디오를 듣는다는 설렘이 컸다. 주파수를 돌리다가 낮은 목소리의 남자 DJ의 목소리를 들려왔다. 그는 고민 상담 사연을 읽고 있었다. 고민 상담의 내용은 ‘가정 폭력’이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심하게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을 겪으며 죽고 싶다는 내용의 기나긴 사연이었다. 평소 라디오에서는 듣기 힘든, 주제였다. 귀를 기울이게 됐다. 그리고 또 특이한 점이 있었다. 다른 라디오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사연 보낸 사람도, DJ도, 다른 청취자들도 모두 반말을 쓰고 있었다.     


“마왕, 나는 오늘 이랬어. 식구들은 어떻게 생각해?”

      

이런 식이었다. 생각보다 사연도 길었다. 그 라디오만의 분위기에 빨려들었다. 기나긴 사연을 읽고 나서, 낮은 목소리의 그가 상담 사연에 대해 조언을 하는 태도가 새로웠다. 평소에 들었던 다른 라디오의 DJ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DJ들은 고민 상담에 몇 가지 말(상투적인 말들)을 덧붙인 다음 “힘내세요! 선물 보내드릴게요!”로 끝내곤 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진지하게 사연을 대했다. 사연자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나갈지 마치 친근한 삼촌처럼 말했다. 뭉클했다. 알고 보니 그 DJ는 가수 신해철이었고, 프로그램의 이름은 ‘고스트네이션’이었다.     


아침에 등교하고,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독서실을 다녀온 하루의 마지막에 고스를 들으면서 낄낄거렸다. 매번 어두운 사연만 오는 게 아니었다. 시시콜콜한 사연들, 별 거 아닌 개그에 깔깔깔 웃었다. 청취자들은 서로를 ‘식구’로 생각했고, 서로의 닉네임을 부르며 조언해주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잘 알지 못 했던 노래들도 접하면서, 마음에 와닿는 노래들을 많이 알게 됐다.      


다양한 삶의 선택지가 있단 것도 알았다. DJ인 신해철 그리고 라디오를 함께 듣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힘이 됐다. 집안 형편이 힘들어 부모님의 근심이 커질 때,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질 때, 친구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학교에서 교사가 일관성없는 기준으로 학생들을 체벌할 때, 담임 교사가 수능 성적이 발표 난 다음날 자살한 선배들에 대해 ‘학교에 누가 되니 밖에서 이 얘기는 퍼뜨리지 마라’고 말하는 모습을 봤던 날 등등... 힘들고 답답한 순간, 고스를 떠올렸다. 숨통이었다.     


고스뿐만 아니라, 살면서 내 일상을 가장 많이 채운 매체는 라디오다. 어린 시절부터 언제나 라디오를 들었다. 라디오를 통해 위안을 얻고 삶을 즐기는 법을 배우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동안에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즐거움을 주는 콘텐츠를 알게 되면, 알리고 공유하는 걸 좋아했다. 이 모든 걸 라디오에 담아보고 싶다. 라디오 PD가 되어서 많은 청취자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다.     





이 글을 썼던 건 2년 전 무렵. 라디오 PD를 지망하며 썼던 글이다. 입사지원서 1번. 지원 동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      


내일 [구보라의 팟캐스트 시작하기]라는 이름으로 강의를 시작한다. 첫 강. 


그 강의를 준비하면서 외장하드에서 ‘라디오’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다가 이 글을 발견했다. 라디오를 참 좋아하던 사람이었고, 그래서 팟캐스트도 좋아하다가, 이렇게 직접 만들어보고, 팟캐스트에 대해 강의도 하는구나. 비록 ‘방송사 라디오 PD’라는 타이틀을 달지는 못 했지만.      


마지막 문단은 계속 이어진다. 삶에서 늘 해내고 싶은 일. 다만 ‘라디오’가 아니더라도. 

그 플랫폼은 다양할 것이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책으로. 

팟캐스트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팟캐스트로도. 

그 무엇이 되었든 좋은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꾸준히. 

그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야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동안에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즐거움을 주는 콘텐츠를 알게 되면, 알리고 공유하는 걸 좋아했다. 이 모든 걸 내가 만드는 콘텐츠에 담아보고 싶다. 나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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