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은 무릎인데, 무릎이라는 단어가 무리하게... 한번 억지로 등장한..
고단한 하루였다. 오후 4시까지 집에 있었다. 약속이 없어도, 작업을 하든 글을 쓰든 뭘 하든, 밖으로 나가는 나로서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할 일은 많았다. 내일은 팟캐스트에 대해 강의하는 날. 3번째 시간인데, 수업 준비를 더 해두어야 했다. 에세이 드라이브 글은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 또한 오늘 오전과 오후에 할 일이었다.
그리고 매거진 작업. 9월과 10월은, 매거진으로 다 지나갔고 지나가고 있는 듯 하다. 목요일 오전에 신청해둔 ISBN이 오늘 오전에도 나오지 않았다. 큰일이었다. ISBN이 나와야 그걸 뒷표지에 넣고 인쇄소에 넘길 계획이었기 때문! 국립중앙도서관에 문의하니 오늘 6시 전에 나올 것 같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표지 디자이너에게도 전하고, 함께 매거진을 만드는 혜승씨에게 전하고... 혜승씨는 인쇄소에 전하고... ISBN이 나오길 기다리며 내 할 일을 하면 되는데 나는 넉다운이 된 상태였다. 도저히 뭔가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누웠다. 안대를 하고, 귀마개를 하고 누웠더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세상에. 피로가 대체 얼마나 쌓인 거지?
자다가 불현 듯 눈을 뜨니, 카톡으로 ISBN이 배정되었단 소식이 와 있었다! (무음이었는데, 눈을 떠서 다행!) 부랴부랴 바코드들을 다운받고 디자이너에게 넘겼다. 최종 파일이 메일로 왔고, 검토한 다음 인쇄소로 넘겼다. 이제 오늘의 할 일 하나 끝.
그러니 4시였다. 여전히 몸이 아픈 수준으로 좋지 않았다. 한의원을 갈까? 몸이 아프면 한의원에 가는 타입이라, 한의원을 갈까 생각했다. 원래라면 이 시간에 카페에 가서 할 일들을 착착 해야 하는데... 마음은 급하고, 누워 있는대서 컨디션이 회복도 되는 것도 아니고 한없이 가라앉기만 했다. 그때 친구로부터 저녁 같이 먹자고 연락이 왔다. 그럼 한의원 갈 시간이 빠듯했다. 고민하다가 목욕탕을 갔다.
매우 오랜만에 가는 목욕탕이었다. (한의원처럼 목욕탕을 좋아한다.) 목욕탕을 가면 온전히 쉬는 것 같다.
열탕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나를 돌보는 기분이 든다. 이제야 나를 위해 시간을 쓰는구나. 눈을 감고 멍 때려보기도 하는데, 쉽진 않다. 목욕탕 나가고 나서는 또 뭐해야하지 하며 끝없는 생각과 생각과 생각... 사우나에 가서도 그랬다. ‘오늘 에세이 드라이브 뭐 쓰지?’, ‘글감이 무릎인데...’ 하면서 무릎을 쳐다봤다. ‘내 무릎을 이렇게 보는 것도 얼마만인지?’라며 억지로 글감을 떠올리려 생각했지만 그걸로 글을 쓰기는 영 어려웠다. 아무튼, 목욕탕을 다녀오니 피로가 조금은 해소됐다.
요즘 지나치게 무리하면서 살고있는 것 같다. 9일 연속으로 쉰 날이 없었다. 무리하지 말자 생각한다. 그러고서는 글감은 무릎인데, 무릎이라는 단어가 무리하게... 한번 억지로 등장한, 이 글을... 부랴부랴 제출한다.
구보라
책방에서 일하고, 글 쓰고, 팟캐스트 만들고, 독립매거진 <We See>를 만듭니다.
태재 작가의 [에세이 드라이브] 11기 1번째 글_2020년 10월 12일 작성 / 글감 '무릎'
(9-1번째 글은 쓰지 못 해서 올리지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