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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Dec 13. 2020

지양과 지향  

그냥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좋은 자극이 되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 

지난주 제주에 갔을 때, 새로운 기기 두 가지를 발견했고, 엄청 신기했다. 서울에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먼저, <나한테 팝서> 라고 적힌 기계. 사려니숲길 안내소에 있었는데, ‘PET병 자동수거보상기 시범 사업’으로 만들어진 기기다. ‘PET병 자동수거보상기’란 빈 페트병이나 캔 등을 기기에 넣으면 이를 자동 분리해서 기존 부피의 10분의 1까지 줄여 재활용 처리 비용을 절감하는 기기인데, 수거함에 캔이나 페트를 넣은만큼 포인트가 적립된다.  이 기기가 설치된 곳은 올레길 7코스 외돌개, 8코스 주상절리, 정방 폭포, 사려니숲길 총 4곳이라고 한다. (4곳밖에 안 되는데, 그 중 한 곳을 간 덕분에 이 기계를 볼 수 있었다니! 왠지 기분 좋다)     


페트병과 캔을 기기에 넣으면 바로바로 포인트가 적립되는 시스템,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인구 1000만인 서울에서도 이 기기가 있다면, 얼마나 많은 페트병과 캔이 제대로 분리될 수 있을까! 다른 지역에도 있다면 마찬가지일텐데... 우선 제주에서라도 이렇게 시범 사업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다음으로 신기했던 기기는 화요일에서 수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발견했다. 여행하던 이틀 동안 숙소에 모아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고 봉투를 찾았는데 없었다. 친구의 집이었다. 싱크대 찬장에 일반 쓰레기봉투는 있었지만, 음쓰 봉투만 없었다. 오? 어떻게 버리지. 친구에게 묻기엔 너무 늦은 시간. 일단 쓰레기를 버리러 건물 아래에 갔는데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기기를 발견했다! 보통 떠오르는 음식물 버리는 커다란 통이 아니라, 커다란 기기였다. 이 기기에 음식물을 버리면 무게에 따라 요금을 낸다. 교통카드를 찍으면 바로 결제된다. 쓰레기 버리는 날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좋다.      


무엇보다도 함부로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경우가 줄어들 것 같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한 비닐봉투도 따로 사지 않아도 된다. 이 기기에 버릴 걸 생각해서, 음식물 자체를 덜 만들려고 하지 않을까. 내가 버린 건 음식물 쓰레기는 1L도 안 되는 양이었는데, 22원이 나왔다. 그러니 비용 부담이 엄청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계속 음식물 버리는 비용을 낸다고 생각하면 분명히 버리는 양에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멋진 기기! 멋져서 쓰레기 버리고 나서 그 기기 사진도 찍었다. (옆에 있던 친구는, 이걸 왜 찍냐고 했지만? 너무 영감을 주는 기기라서 찍었다.)     


요즘 가보고 싶은 가게도 이런 자극의 연장 선상에 있다. 알맹상점.(https://www.instagram.com/almangmarket/) 한 달 전쯤, ‘안녕망원’ 인스타그램 계정 스토리에서 보고 처음 알았다! 새로웠다. 리필스테이션이라니? 여기서는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면서 플리스틱 용기로 된 제품을 팔지 않고, 용기를 가져와서 제품을 담고, 저울로 가격을 메긴다고 한다. 여러 가지 환경을 생각하는 제품들도 판다.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정확한 뜻을 찾아보았는데,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모든 자원과 제품을 재활용 가능하도록 디자인해 궁극적으로는 그 어떤 쓰레기도 매립되거나 바다에 버려지지 않도록 하는 원칙을 일컫는 걸 의미한다고 한다. 멋지다 멋져.      


나도 뭔가, 일상에서 더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살아가는 동네에도 리필스테이션이나 페트병 수거 기기, 음식물 처리 기기가 생겨나길 바라지만 아직은 없으니까.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봐야겠다. 그렇다고, ‘나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해!!!’라고 티 내는 건 지양해야지.      


거대 담론에 대해 거품 물면서, 과하게 이야기 하는 사람보다 일상에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조그만 실천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고, 의식 있는 척 하는 사람이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그냥 아무데나 둔다거나, 배달음식을 시켜먹고는 음식물 처리를 제대로 안 하고, 일회용기 또한 대충 버린다면, 그러니까 일상생활에서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실망이다. 대실망.     


생색내지 않으면서도 평소에 분리수거를 잘 한다거나 식당에서 되도록 휴지를 덜 쓰거나, 손수건을 쓰려 한다거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걸 하는 사람에게 눈길이 간다. 이런저런 정보들을 알고, 공유하고 싶더라도 상대방이 부담스럽지 않게, 쓱- 이런 거 있는데 좋더라? 그렇다고~ 하고 알려주는 사람. 그냥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좋은 자극이 되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좋다. 나도 그런 사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싶다. 



구보라 


책방에서 일하고, 글 쓰고, 팟캐스트 만들고, 

독립매거진과 독립출판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태재 작가의 [에세이 드라이브] 9기 2번째 글_2020년 8월 17일 작성 / 글감 '재활용'

(9-1번째 글은 쓰지 못 해서 올리지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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