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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라 Dec 13. 2020

작은 방

[에세이 드라이브] 8기 4번째 글_8월 3일 작성 / 글감 '무대'

공동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이 열리면, 계단을 두 층 오른다. 세 번째 층. 올라오는 계단 바로 왼쪽에 있는 첫 번째 집이 내 집이다. 원룸에 살고 있으니, 내게는 집이 곧 방이다. 나의 작은 방. 크기는 6평 남짓? 여기 이사 온 지 벌써 8개월이 지났다. 이사하는 날 눈이 내릴까 걱정해야 했던, 12월 첫째 주 금요일.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씽크대가 바로 앞에 있다. 왼쪽으로 몸을 돌리면 화장실이 보이고.... 아니다, 그냥 다 보인다~ 안 보이는 부분이 없다. (보일러실 제외). 전에 살던 집은 8~9평 정도여서 혼자 살기에 꽤나 괜찮은 편이었다. 지금 방과는 몇 평 차이지만, 그 차이는 꽤나 컸다.      


갑자기 왜 방에 대해 쓰냐면, 지난 4월 무렵, 참여한 독서모임에서 <내 방 여행하는 법>이라는 책을 읽고나서 ‘내 방 여행하는 법’에 대해서 글을 써야했다. 그때 내 방에 대해서 글을 처음 써보았다. 계속 이어서 써보자면.       

방은 좁지만, 남서향이라 창으로 햇살이 매우 잘 들어온다. 그 햇살이 참 좋다. 그러나 창 바로 앞에 책상이 길게 있기에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어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많지는 않다. 책상 왼쪽엔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 화초를 두 개 두었다. 테이블야자와 금전수(집에 돈이 들어온다길래...!)       


깨어있을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책상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집에서 쓰던 나무 책상과 책장이(23년 전!) 세트로 있다. 책상에는 쓰지 않는 컴퓨터 모니터가 제일 왼쪽에 있고 그 앞에는 독서대가 있다. 독서대엔 민음사 일력과 그림이 있다. 단골 책방인 별별그림 사장님이 선물로 주신 그림인데, 보고 있으면 그 그림 속 인물처럼 웃음을 짓게 된다. 민음사 일력은 지난 연말에 가가77페이지에서 구입했었다. 무심한 듯이, 이제 한두 개 남았다는 사장님의 말에 바로 샀던 기억이 난다. 영업력 짱. 이제껏 일력을 쓴 적이 없었는데, 아침마다 일력을 뜯는 재미가 상당하다! 눈 뜨자마자 뜯는다! 다음날 글귀가 엄청 궁금한데도 굳이 참는다. 딱히 일상에 큰 루틴이 없는 내게 기분 좋은 루틴이 생겼다. 늘 이 책상에서 노트북을 펼쳐서 작업을 한다.        

(글을 올리는 12월은 액자 자리에 다른 사물이 놓여져 있다. 액자는 책장에!) 

    


독서모임에서 다음으로 읽은 책은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유명한 책이라 제목만 많이 들어봤지, 읽은 적은 없었다. 유명한 책은 잘 안 읽고 싶기도 한 듯. 그러나 모임에서 읽는 책이니, 급한 마음에 속독을 했으나, 다행히도 내용은 제대로 잘 흡수한 것 같다.      


방에서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내 방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내 방 여행하는 법>을 읽으며 방을 바라볼 때와는 다른 시선이었다.      


24살때부터 자취를 했다. 자취 생활한 지 거의 9년째. 자취하면서 나는 내가 물건을 부족하게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정말 강했다.  제대로 갖춰놓고 살지 못 하는 나.   이런 마음이 강했다.      


‘혹시 모르니’ 그릇도 몇 개 더 있고, ‘혹시 모르니’ 반찬통도 여분으로... ‘혹시 모르니’ 이것저것... 작은 방이 ‘혹시 모르니’ 때문에 꽉꽉 차 있었다.      


<나는 단순하게~>를 읽으면서, 나도 혼자 사는데 이런 방에서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보다는 많은 걸 지니고 살고 있단 걸 깨달았다. 그중에서 정작 자주 만지고, 사용하는 물건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도.      


책을 읽으면서 책장을 정리했다. 책장은 칸에 따라, 대략 10가지 자체 기준으로 분류해두었다. 모든 책을 사서 읽진 않았고, 빌려 읽기도 했으니 책장의 취향이 나의 책 취향을 전부 반영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취향의 일부다.      


이 책의 저자는 책을 다 팔았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는 않다. 책장의 책은 ‘나 이런 사람이야~’라는 자기 가치를 드러내는 수단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다른 이들이 내 책장을 제대로 보지 않아도 된다. 나 자신을 위해서 둔 것이다. 힘이 들 때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는 책들로. 책상 3단 서랍장에서 쓰레기들을 버렸다. 작은 한 봉지가 채워졌다. ‘정리’ 수준도 아니고 솎아낸 느낌이랄까. 필요 없는 물건이 참 많았다.      


이 책의 저자는 미니멀리스트에 대해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소중한 것을 위해 줄이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나에게 필요한 걸 제대로 깨닫고 싶어졌다.      


앞으로는 방에 있는 물건들을 많이 비워내고 싶다. 부엌 찬장에도 안 쓰는 물건들이 많다. 그런데도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서랍장을 하나 더 사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지냈다. (세상에!)      


비워내는 삶, 이 책 덕분에 이 삶이 조금 더 머리에 그려지고 잘 치우지 못 하는 나도 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이야기하면 45페이지. 나도 이러고 싶다. 방을 깨끗이 해서, 집중되는 걸 느껴보고 싶다.      


‘아침에는 따사로운 햇살에 눈을 뜬다. 알람은 맞춰놓지 않는다. 물건이 없는 방의 하얀 벽지에 아침 햇살이 반사돼 방이며 거실이 무척이나 밝다. 미적거리며 억지로 일어나곤 했던 아침이 이제는 무척 상쾌하다.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하고 모카포트로 내린 커피를 마신다. 아침 식사에 사용한 식기는 바로 설거지한다. 설거지를 마치면 좌선 자세로 앉아 명상을 한다. 쓸데없는 일에 정신이 분산되지 않고 한곳에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중략) 나 자신조차도 같은 사람의 하루라고는 도저히 생각하기 어렵다. 어쨌거나 물건을 버리기 정말 잘했다.’ 





구보라 


보고 듣고 쓰고 말합니다. 

작은 방을 깨끗한 상태로 두기 위해 굉장히 고군분투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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