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옆집 강인이1 >
6월이 생각보다 덥다. 후텁지근하여 급 여름인 것만 같았다.
에어컨을 틀었다 껐다 반복하다가 작업실 문을 열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강아지도 오줌을 누일 겸 나왔는데 옆집 강인이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강아지 오줌을 누이고 잠시 콧바람을 넣어주려고 작업실 근처를 어슬렁거리는데 강인이가 그 사이 빨간색 엄카를 들고 와서는
“샘! 저 엄카 받아왔어요. 샘 아이스크림 사드리려고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와! 정말?? 나를? 근데 너 손에는 이미 아이스크림이 있는데? 내 것을 사준다고?? ”
“네!! 이건 제 것이고요. 샘 거 사드리려고요. 그런데 어디로 가서 사실 거예요?”
강인이는 자기 아이스크림을 먹으려는 찰나에 나를 본 것이다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는 곳이 작업실 양쪽에 다 있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아이스크림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것이다.
가끔 내가 길을 지나가고 있으면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린다. 고개를 돌리면 강인이가 손을 흔든다.
머리 위로 높이 들고 좌우로 크게 흔든다.
어느 날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건너편 인도에서 부르고, 어느 날은 아빠 차를 타고 가다가 도로 위 달리는 차 창에서 고개를 내밀고 부른다.
친구들과 놀다가 나를 발견하면 잠시 달려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는 친구들 무리로 돌아간다. 주로 나와 같이 있는 강아지가 반가워서 달려온다. 강인이의 “선생님!!! “ 하고 부르는 소리는 유달리 기분이 좋다. 특유의 두성이 쩌렁쩌렁 좋은 녀석이기 때문이다.
꼬불거리는 파마 머리에 머리가 커서 멀리서 봐도 강인이인줄 바로 안다. 그런 아이가 엄카를 들고 와서 아이스크림을 사준다 하니 더위에 지친 지루함을 날리는 한 방의 감동!
편의점에 가서 내가 아이스크림을 고르자 계산하러 들어간 강인이가 급하게 다시 뛰어나온다.
투 플러스 원이라며 두 개를 더 꺼내러 나왔다
”샘, 세 개 다 가져가서 드세요“
”아니야~ 샘은 하나면 돼! 냉장고에 넣었다가 다음에 너도 먹어봐. 엄마도 드리고~”
”샘 저번에 저랑 탕후루 처음 사 먹더니 그 맛을 이제 안 거예요? ? “ 하하
내가 고른 아이스크림이 탕후루 샤인머스캣 맛이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일인데 그것과 연관 짓고 있는 강인이는 과거의 일과 관계의 연결성을 생각하는 친밀한 아이였다.
사실 강인이 누나인 예린이랑 자주 산책을 했었다.
산책의 끝머리에는 가끔 엄마 몰래 먹는 군것질거리가 묘미였다.
“엄마한테 혼나면 어떻하지?”
예린이가 뭐라고 둘러대는지 반응을 살피는 재미가 있었다.
강인이에게 말하지 말라고 알면 서운해한다고 말했었는데
강인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나에게 따지는 것이었다.
군것질거리를 사 먹은 것이 서운한 게 아니었다.
누나랑 만의 비밀을 만든 것이, 자기에게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이 서운한 것이었다. 그것이 신기해서 내가 재차 확인했었다. 의외의 포인트였다. 하하 예린이는 말하지 말라고 내가 말한 것까지 전달하며 동생을 약 올렸다.
원래 친 남매 중에 연년생들은 더욱 경쟁하고 싸우고 미친 듯이 치고받고 이겨 먹으려고 한다.
나도 그랬었는데 이 둘은 더욱 심했다 하하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말하던 강인이와 단둘의 첫 산책에서 탕후루를 예린이 몰래 사 먹으면서
회포를 푼 것이다. 누나에게 자기도 똑같이 약 올리며 말할 거라고 다짐했던 것이 과거 우리 둘의 일이었다.
“강인아 선생님 아이스크림 잘 먹을게. 와우 이거 정말 맛있다 와우!”
나는 강인인가 더 뿌듯해지라고 감탄을 연발했다.
“선생님 오늘 강아지 산책할 거예요? ”
“왜?“
”저도 강아지랑 같이 산책하고 싶어서요“
딱 산책하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왠지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아이를 실망하게 할 순 없었다.
“산책하려면 해 떨어지고 나서 해야 해. 강아지가 햇볕 때문에 헉헉대거든.
7시는 돼야 그래도 시원해지지!”
“그럼 7시, 작업실 앞에서 기다릴게요”
그순간 오래전 강인이가 강아지랑 같이 산책하겠다고 저녁에 나온다고 했었는데 나오지 않은 것이 생각이 났다.
그 순간의 마음이 그랬을 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또 다른 그 순간에 집중하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내가 작업실 상가에 화장실을 가려고 계단을 오르는데
태권도복을 입고 지나가는 강인이가 뒤에서 날 부르는 것이다
“선생님, 죄송해요”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뭐지? 하고 뒤돌아보았다.
”어제 제가 간다고 하고서는 집에서 티브이 보다가 귀찮아지기도 하고
그냥 계속 집에 있었어요. 혹시 기다리셨을까 봐 너무 죄송해요”
”하하하 “
그 순간 강인이가 달리 보였다. 자기 딴에는 자기가 한 말을 지키지 못한 게,
아니 내가 혹시라도 기다렸을까 봐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걸 마음에 담고 있던 것이 귀해 보였다.
자기 마음 상태와 그 상황과 심지어 상대방의 입장에서까지 말로써 다 할 줄 아는 아이였다.
강인이가 특별하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어른 같았다. 나는 그거 평생 못했던 거 같은데.
사람들과의 관계하는 방법들이 마음과는 다르게 말이 나가는 어른들보다 강인이가 훨씬 훌륭했다.
나는 속으로 크게 박수를 쳤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후,
작업실에서 그림은 안 그리고 전화 통화로 해결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이곳저곳 전화로 일들을 해결하고 통화를 하고 있는데 누가 노크도 하지 않고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내가 통화를 하니 노크는 안 하고 기웃기웃 두 손을 눈썹 위로 가져간 채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강인이었다. 강인이가 왜 저기 서 있지. 생각하고는 통화를 한 5분간 더 했다.
그러다 번뜩했다. 저녁 7시였던 것이다.
내가 문을 열고 무슨 일이야? 강인아? 묻는 순간 아차차 했다.
“미안…. 아, 맞다 맞다 산책 가기로 했지?“
까먹기도 했고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된 줄 몰랐다.
“샘 정리하고 나올게, 우리 바로 산책가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