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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아날로그문화 비교

by 피터정

한국의 디지털문화는 자타공인 전 세계 최상위권이다.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고 개인들이 빠르게 적응하여,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코로나시기를 지나며, 재택근무, 원격수업 등 비대면생활로 디지털문화가 더 확고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의 오래된 집에서 생활하며, 미국에 아날로그문화가 많음을 느꼈다. 내가 사는 집은 20 가구의 공동주택으로 현관열쇠와 개인열쇠 2개를 가지고 다닌다.

한국은 거의 디지털도어록을 사용하다 보니, 미국집에서 열쇠를 집안에 두고 현관문을 닫고 나가는 실수를 가끔 하게 된다.


집의 벽체와 프레임 칠이 여러 겹 칠해져 있는 것을 보고 세월의 흔적을 느낀다. 엘리베이터도 50년은 족히 넘은 것 같고 매우 느리다. 가끔 관리인이 공지를 하는데, 방송이 아닌 각 집의 현관문 앞에 공지문을 부착한다. 공지내용은, 공사나 점검 또는 관리인이 휴가를 가는 등의 이슈다.


비교적 도심이지만, 이웃의 주택 뜰에는 유실수를 가꾸고 열매를 먹는다. 감과 오렌지를 개인주택에서 키우는 지인이 나눠줘서 맛있게 먹은 적도 있다. 담장이 거의 없고 옆집과 낮은 울타리로 최소한의 경계만 유지한다. 이런 환경이니 자연스럽게 집 주변에서 야생 다람쥐, 도마뱀, 코요테 그리고 가끔 공작새도 본다.


도로에는 디자인만 봐도 오래된 차라는 것을 알만한 올드카가 많다. 반면에 최첨단의 테슬라 사이버트럭 등도 공존한다. 한국에서는 20년 넘은 차를 보기 어려운데, 이곳은 30년 넘은 차들도 많이 보인다. 물론 첨단의 신차도 많아서 과거,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느낌이다.


캘리포니아주는 번호판에 차량의 연도를 표시하여 출시년도를 알 수 있다. 30~50년 정도 된 올드카가 많이 보이는데 어떻게 관리하는지 궁금했다. 집 주변에 올드카전용 수리점을 발견하고 궁금증이 풀렸다.


버스를 타면, 좌석옆의 줄을 잡아당겨서 내린다는 신호를 보내는 시스템이 벨을 누르는 시스템과 공존한다. 지하철 플랫폼에서도 스크린도어를 볼 수 없다. 한국에 비하여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도심의 건축물도 한국보다 다양하다. 집에서 다운타운으로 걸어서 10분 거리인 Old Pasadina의 Play house district 에는 100년이 훌쩍 넘은 교회, 극장, 서점 등 이 있지만 여전히 운영한다. 미국이지만, 오래된 유럽의 도시 같은 느낌이다.


근처에 100년이 넘은 우체국과 시청의 청사가 있다. 이곳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것으로 유명한 장소지만, 실제로 운영한다. 시청은 많은 예비 신랑신부들의 웨딩사진과 성인식 등의 촬영명소다. 그런데, 드레스가 모두 특이하다. 흰색뿐만 아니라 파랑, 노랑, 빨강 등 원색의 드레스가 신기하게 느껴진다. LA지역은 남미출신의 미국인들이 많아서 이들의 전통에 기반한 드레스로 보인다. 한국도 100년 전에는 화려한 색의 한복을 입고 결혼했으니 이들의 다양한 색상의 드레스는 당연한 거다.



LA도심의 메인역인 유니온역은 1939년에 지어진 모습 그대로의 건물외관과 역사 내부 인테리어도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다. 한국의 KTX 같은 첨단고속열차는 없고, 오래된 열차들과 동부까지 며칠 동안 침대칸에서 잠자면서 가는 암트랙 열차 등이 오히려 아날로그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서울역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최초의 건물은 전시관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같은 케이스로, 서울시청도 최초의 건물은 도서관 등으로 사용 중이다. 서울은 발전속도가 빨라서 이전의 규모로는 감당이 어려워서 옆에 건물을 새로 짓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서울뿐만이 아니고 인천, 군산 등도 이런 사례가 많다.


한국과 달리 100년이 훌쩍 넘은 건물들이 즐비한 도심이 많은 이유는 남북전쟁 이후 전쟁이 없었던 것도 이유가 될 것 같다. 특별한 이슈가 없어서 오래된 건물들이 보존되었을 것이다. LA도심의 한인타운은 아날로그의 절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이 조성된 1960~70년대의 감성이 거의 살아있다. 건물뿐만 아니라, 이제는 한국에서 사라진 당시의

한글폰트(Font)를 적용한 간판등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근처의 그랜드센트럴마켓의 음식코너에서 메뉴를 주문하니

내 이름을 적어주면 메뉴가 완성되면 이름을 불러준다. 번거롭지만 사람냄새가 나는 느낌이라 아날로그의 감성이 느껴진다.


대형마트의 주차빌딩에도 빈자리를 표시해 주는 시스템을 보기 어렵다. 한국에는 이런 방식이 이미 보편화된 상태다. 마트에서 셀프계산 방식보다는 사람이 직접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한국은 눈에 띄게 셀프계산대가 늘어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거리를 다녀보면, 오래되고 나이가 지긋한 주인이 운영하는 리페어숍(Repair shop)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한국의 '아름다운 가게'같은 중고매장이 많다. 특히 중고의류 매장이 많은데, 이용자도 많다. 그중 어린이 의류와 용품을 취급하는 중고매장이 있는데 옷부터 유모차, 도서 등 많은 어린이용 중고품만을 사고파는 곳이다. 한국의 중고물품 디지털플랫폼인 '당근마켓'의 오프라인 매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미국도 한국의 당근마켓 같은 플랫폼들이 있다. 그러나 중고매장도 활성화된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내가 사는 지역의 작은 상가인 '벌링턴 아케이드'를 비롯한 주변상가에는 의외로 그림과 액자를 파는 점포가 많이 보인다. 이들은 집에 그림을 장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한 번은 산자락 주변에서 말을 타고 가는 두 사람을 봤다. 순간, 여기가 여전히 서부라는 것이 리마인드 되었다. 당사자들은 말타기가 당연한 일상인 것 같다. 이런 아날로그 라이프는 가끔 편안한 감성을 주기도 한다.


한국은 오래된 마을을 벽화마을화 한 것이 한때 유행했었다. 전쟁으로 인해서 생긴 마을의 슬럼화를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져서, 장단점이 있다. 전쟁 등으로 100년 이상된 건물이 드문 한국에서 건축물의 아날로그를 찾기는 어렵다. 벽화마을에 이어서 서울의 산업시대 성지였던, 문래동과 성수동이 아날로그 감성을 대표하는 명소로 꼽힌다. 조금 의도된 아날로그 문화지만, 잘 조성돼서 하나의 한국문화로 정착할 수도 있겠다.


미국에 머물며 의외로 아날로그문화가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디지털시대지만 가끔은 편안한 아날로그 라이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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