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by 피터정

나는 경기도의 1기 신도시에 있는 현재의 집에서 15년 이상을 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자주 지나다니는 옆의 아파트단지에서 신기한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이 단지는 지어진지 30여 년 되었는데, 도로와 단지를 구분하는 펜스에 나무가 한 몸이 되어서 자라는 중이다.

처음에는 펜스와 나무 중 하나를 정리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현상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다?"라고 생각된다. 나무도 하나의 생명체인데 금속으로 된 펜스가 자신의 몸에 들어와 있으니 아프거나 어색할 수도 있다.


이런 신기한 현상을 보면 여러 가지의 생각이 스친다.


30여 년 전으로 돌아가서, 아파트가 지어질 때 조경과 펜스설치공사를 누군가 했을 것이다. 그때 나무를 심은 사람과 펜스를 설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체를 관리감독 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나무가 이들의 합작품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당시 각자가 자신의 전분분야에 맞게 일을 했을 뿐이다. 아마도 그때는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리고 넓게는 단지에 사는 사람들의 무관심도 어느 정도는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들도 이렇게까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공동주택이니 자신만의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거나 무심코 지나쳤을 것이다.


어쩌면, 단지의 주민들은 이런 현상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고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파트 주민자치회에서 누군가는 안건으로 상정했을 수도 있다. 관리사무소에서도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결과적으로 현재 이 나무는 1미터 정도만 남겨두고 가치 치기가 아닌 몸통이 잘려나간 상태다. 펜스가 함몰되어 있어서 현재의 상태로 우선 일단락되었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글은 펜스를 품은 1미터 정도만 남겨두고 잘려나갔지만 아직 생명이 있는 나무에 대한 나의 추측이다. 그러나 전혀 근거가 없거나 터무니없는 추측은 아닐 것이다. 결과가 있으면 분명 원인이 있다. 이 나무가 처한 현실을 보며 이런 현상은 우리 주변에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30여 년 전 아파트 조경공사를 하던 시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나무를 심었던 사람이 도로와 경계가 가까우니 좀 더 간격을 두고 심었더라면, 펜스를 설치했던 사람이 나무를 옮겨 심을 것을 건의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관리감독 했던 사람이 이를 조정했었다면, 이 나무는 지금 크게 자라서 사람들에게 푸르름과 산소를 제공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루에도 수없이 발생하는 사건사고, 법적다툼, 민원접수까지 누군가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나무의 현실처럼 원인제공자가 직접적인 제공자도 아니고 악인이 아니며, 의도하지 않았고 유일한 제공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 단지, 자신이 할 일을 무심코 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하나둘씩 더해지면서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된다. 그렇다고 딱히 누군가를 탓하기도 애매하다. 이런 일은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많을 것이다. 유추를 하다 보면 사람 간의 일은 정확하게 그 원인을 밝히기 어렵다.

성경 로마서 8장 28절에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는 구절이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은 그 능력의 한계가 있어서 한 치 앞도 못 보기 때문에, '합력하여 실수를 반복하는 존재'로 보일 것 같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고 버리는 일회용품들이 합력하여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한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사용을 멈추지 못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에 무슨 일들이 일어나서 자신의 운명이 현재상태로 변했는지 나무는 알고 있을 것이다. 생명이 유지되고 있는 동안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는 자연의 생명력은 참으로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