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디자이너인 나는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그 결과물이 실제 팔리는 시기와 상황을 예측하며 디자인해 왔다.
프로젝트마다 차이가 있지만 전체개발기간이 짧은 것은 1년 정도지만 그 이상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산업디자인 프로젝트는 기획과 디자인이 선행되고, 이후 생산을 위한 프로세스들이 진행된다. 디자인은 전체 개발기간 중 앞부분에 있기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긴다. 디자인이 결정되어야 다음 프로세스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마감시간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디자인하는 시점은 현재지만, 그 결과물이 완성되어 팔리는 시기는 미래라는 점도 압박요소 중 하나다. 현재의 시장상황과 출시시점의 상황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업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능력 중 하나는 예측력이다. 자동차로 예를 들면, 디자인하는 시점에는 '모터차'였지만 개발하여 출시시점에는 시장이 '전기차'로 상황이 변할 수 있다. 그러면 애써 수년간 개발한 모터차는 그 의미를 상실할 수 있다. 그래서 예측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예측은 열심히 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가능하다.
예측능력은 개발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측력'과 함께 '상상력'이 필요하다. 마감시간의 압박을 받아도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예측과 함께 끊임없이 상상을 해야 한다.
디자인에서는 내가 제시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어떻게 사용자에게 받아들여질지 상상해야 한다.
멋지게 느껴질지 아니면 끔찍하게 느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영역은 예측이 아닌 상상이다. 그만큼 상상력은 개인적 역영이며 결과에 대한 변수도 크다. 상상력이 잘못 사용되면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
상상하는 능력은 누구나 타고난다. 그러나 한국의 규격화된 입시교육과 사회시스템은, 상상력을 키우는 예상능력보다는 예측가능한 능력을 요구해 왔다.
실제로 제조업과 수출중심의 상황에는 예측능력이 시너지를 발휘했다. 그래서 짧은 시간만에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 냈다.
그러나 현재 전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는 제조강국이 아닌 소프트웨어 강국인 미국이다. 한국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AI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전면에 세웠다.
지금의 세계정세로 볼 때 AI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 달린 문제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캐치프레이즈에서 더 나아가 기존의 많은 시스템을 바꾸어 나가야 가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인식변화라 할 수 있다.
예측능력이 인간보다 뛰어난 AI가 보편화되는 시기가 오면, 인간은 반대로 상상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때 한국은 상상력 기반의 창작을 가르치는 사교육시장이 발전할지 모르겠다.
상상과 창작은 예술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그리고 교육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예측으로 인한 시스템화, 효율적 가치 같은 분위기가 어쩌면 사람들을 몰개성화로 이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서도 상상하는 습관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이 결국 미래를 이끄는 주역이 될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존레넌의 이메진(imagine)이 떠오른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Imagine there's no heaven)'로 시작하는 가사는 AI는 떠올리지 못할 것 같다.
지금 들어도 대단한 상상력이 담긴 노래다. 당시의 자본주의, 패권전쟁 등을 비판하며 만든 한 예술가의 독백치고는 그 파급력이 크다. 당시 상황으로는 개인적인 일탈행위처럼 보였을 수 있지만 지금 이 노래는 내 생각에 거의 클래식으로 느껴진다. 조용한 독백 같은 노래는 "지금 잘되는 것 같아도 항상 의심할 필요가 있고, 작은 현상에도 귀를 기울이라고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