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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스펙'에 대한 변명

by 피터정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은 사자성어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잘못된 해석이다.


이 말은 '논어' 선진 편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에서 어떤 일이든 '중도(中庸)'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러니 실제로는 지나친 것이나 부족한 것이나 둘 다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항상 중도를 지키는 것은 어렵다.

사람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넘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조금 모자란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나는 중도를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여기지만 둘 중 하나만 선택한다면 조금 모자란 쪽이다. 나의 아내는 나와 반대성향이다. 그래서 둘을 합하면 중도가 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아내는 이런 나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인정할 것을 기대한다.

둘 다 중용이면 가장 좋겠지만, 각각 지나치거나 모자란 것도 나쁘지는 않다.

요즘 많이 사용되는 말인
'오버 스펙(Over Specification)'은 어떤 상황, 특히 취업이나 일의 요구 사항에 비해 자신의 능력이나 자격이 지나치게 높은 경우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오버스펙은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상황에도 적용된다. 나는 주로 신제품 개발에 관한 일을 해오고 있는데, 개발초기 상품기획단계에서 '오버스펙'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어떤 기능을 추가하는 데 있어서 사용자가 사용할지 않을지, 또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있어서 나쁠 게 없다는 것이 기획자의 주장인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 나는 그냥 빼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기획자는 넣자고 한다. 어차피 사용자가 잘 몰라도 추가하면 경쟁제품과 차별화도 되고 가격도 더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그러나 상품기획이 이렇게 정해지면, 디자인을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혹을 하나 더 붙이는 꼴이 된다. 더 비싸지니 더 고급스럽게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기 때문이다.

내가 지향하는 좋은 디자인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도를 지키는 디자인인데, 결국 지나침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더 고급스럽게 디자인하는 방법은 대체 뭘까?"를 다시 고민하게 된다. 결국 중용의 디자인에서 나름대로 조금 더 완성도를 높이며 마무리한다.

이런 일은 사람이사는 모든 곳에서 발생한다.

음식을 예로 들면, 나는 음식을 선택할 때 옵션을 거의 추가하지 않는 편이다. 작은 옵션이 새로움을 주기도하지만 지나친 옵션은 본질을 흐리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때 퓨전요리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때 몇 번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 보고 내 취향과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내 성향을 재확인했다.


음식뿐만 아니라 많은 면에서 나는 넘치는 것보다는 조금 모자라거나 적당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의 이런 성향이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각자의 성향을 스스로 정의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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