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 담기

배움의 즐거움

by 피터정

나는 경기도의 1기 신도시에 살고 있다. 우리 집은 학원가와 가까워서 밤늦은 시간까지도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차에 태워 귀가시키려는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이런 사교육의 현장을 보면 한국인은 교육열이 매우 높은 민족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의 경우도 교육열이 매우 높다.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유교의 영향을 오랫동안 받은 나라들이다. 유교는 세상의 이치나 사람의 도리와 함께 열심히 배울 것을 강조한다. 공자의 논어는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로 시작한다. 공자 왈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다.

이 문장은 2500년을 훌쩍 넘겨, 지식정보시대인 지금도 여전히 통용된다. 공자입장에서 논어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시작글로 적합해서 채택한 문장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입시경쟁에 처한 학생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배움이나 지식 자체보다는 '경쟁'이 더 먼저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문장에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에 관심이 간다. 나도 지금의 학생들처럼 입시를 거쳐서 대학에 입학한 경험이 있지만 그때는 사실 대학합격이 목적이어서 배움의 즐거움을 몰랐다. 그러나 이후 나의 배움은 즐거움으로 변하고 있다. 대학은 내가 원했던 전공이니 당연히 배우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그리고 전공을 살려 입사한 회사에서 실무를 경험할 때도 같은 마음이었다.

직장생활에서 전문분야 외에도 다양한 국내외 연수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나의 분야를 넘어 경영, 마케팅 등의 프로그램을 접하며 식견을 넓혀갈 수 있었다. 이때부터 경영 관련 독서는 내게 재미로 느껴졌다. 피터드러커나 찰스핸디 같은 경영그루들을 책으로 만나는 것은 지금도 즐거운 일이 되고 있다. 이들의 지혜와 경험을 내가 시간 될 때마다 '때때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경영학 학위를 받기 위한 공부를 한다면 관련공부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때때로' 시간 될 때마다 하는 공부는 오히려 즐겁다. 이런 책을 읽는 것은 공부인지 여가를 즐기는 것인지 구분이 어렵다.

'학습'의 본래뜻인 '배워서 익히는 일'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못한다면 지식만 습득하고 써먹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입시공부는 진학이 목적이니 익히는 것까지는 경험하지 못하고 사장될 수 있다. 그러나 삶 전체에서 학습의 기회는 입시 말고도 많다. '배우고 익히는'과정에서 자신의 적성을 스스로 발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려면 나이와 상관없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고등학생처럼 다양하게 공부할 필요가 있다. 나의 학창 시절 국어수업에는 작문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되어 글을 쓰며 늦게나마 나의 글쓰기 적성을 발견했다. 다양한 관심사의 글을 쓰다 보면 내가 모르는 분야를 얕게나마 공부하게 된다. 글쓰기도 내게 공부방법의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글을 쓰며, 소크라테스의 명언인 "너 자신을 알라."가 내게도 해당됨을 최근 느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글로 쓰다 보니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것에서 공부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걸 모르면 평생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꼴이 된다.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모르면 결국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최근 일본에서는 50세 이상의 시니어들을 위한 대학입학제도가 확대되고 있다. 메이지대학 같은 명문대도 60세 이상 정년퇴직자의 경우 대학원 입학시험을 면제해주고 있다. 고령화의 현상 중 하나로 70세가 넘는 노인들이 노인대학이 아닌 일반대학에 입학하는 경우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어쩌면 한국도 이런 일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배움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나이에 비해 더 젊게 사는 비결이 되고 있다.

이런 시니어들이 대학에 가는 그것은 배움의 ‘즐거움’ 때문일 것이다. 공자도 학습을 이야기하면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했다. 배움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는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면 더 재미있고 신나는 놀이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려면 우선 공부와 배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부가 재미있을 수 있다는 작은 성공경험도 필요하다.

공부는 반드시 교육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질 필요는 없다. 학교나 직장 같은 형식이 아닌 개인적 차원에서도 얼마든지 좋은 배움을 이어갈 수 있다. 그리고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지금은 AI를 잘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공자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글로 옮기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2500여 년 전 공자도 이런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니 배움의 즐거움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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