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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정 Jun 29. 2024

춘천 여행기

나와 소양강 처녀와의 인연

춘천은 내게 특별한 지역이다. 사람들마다 제2의 고향이 있을 것 같은데, 춘천이 내게 그런 지역이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나서 살았던 적이 없다. 그래서 국내여행을 가게 되면 경상도나 전라도, 속초나 강릉 정도로 수도권에서 멀리 가는 편이다.

     

최근 아내가 춘천에 있는 ‘베이커리 카페’에 가보고 싶어 했다. 춘천은 우리의 입장에서 1박을 하기에는 좀 애매한 거리라서  당일 일정으로 갔다. 이전에도 속초 가는 길에 춘천주변의 남이섬이나 프랑스마을 같은 곳을 들른 적은 있지만, 춘천시를 목적으로 여행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베이커리 카페’라는 목적이 생겼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목적지는 시내에서 좀 떨어진 지역이었는데, 가보니 이상하게 내가 와본 장소 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3년여 기간 동안 군대 생활했던 부대를 근처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군복부 당시에는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통량도 많아지고, 일종의 유명관광지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다.    

  

나는 흥분하여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아내는 자기 덕분에 추억 놀이를 했다며 재미있어했다. 그래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춘천의 명동과 공지천, 그리고 소양강 처녀상이 있는 소양강스카이워크를 체험했다.


아내는 유리로 투명하게 만들어진 스카이워크 다리에서 소양강 처녀처럼 사진을 찍었다.   



  

남춘천역과 주변을 지나다 보니, 대학2학년 때 입대하여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기 위해 훈련소의 마지막 저녁식사 후 기차를 탔던 때가 생각난다. 10량 정도의 열차가 밤에 이동하며 정차할 때마다 비교적 후방지역에서 이름이 불린 훈련병들은 기뻐하면서 기차에서 내렸다. 특히 서울의 용산역에서 내린 훈련병을 볼 때는 부러웠다.


이름이 빨리 불려주기를 기다렸다. 기차는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커튼이 드리워져 창밖을 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기차에서 호송관이 "너희들은 가장 북쪽으로 배치가 된다"라고 했다.


긴 밤을 북쪽으로 달린 기차는 새벽을 열며 완전히 멈췄다. 

전 역들에서 대부분 하차하고 열차의 종점인 남춘천역에서 30여 명의 훈련병들하차했다.


12월 강원도의 차가운 새벽공기와 아직 가시지 않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역광장에 대기했다. 잠시 후 어둠이 걷히자, 남아있는 훈련병 동기들은 자신의 이름을 호명받고 하나둘씩 어디에선가 도착한 인솔자를 따라서 자대로 떠나갔다. 일부는 인제, 원통, 양구 등으로 배치받았는데, 차편이 없어서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간다고 했다. 훈련소 내무반 동기가 양구로 배치받고  눈가에 눈물이 촉촉해졌던 수 십 년이 지나 2024년 여름에 남춘천역에서 기억해 냈다.      

 

나를 포함한 남은 3명은 춘천에 자대배치가 되었다.


이후 10개월마다 휴가를 받으면  남춘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갈 때는 부푼 마음으로, 부대로 복귀할 때는 무거운 마음으로 역을 지나갔다. 제대한 날 마지막으로 춘천에서 기차를 타면서 나의 군생활은 막을 내렸다.


 이제는 그때의 나에게 “참으로 좋은 나이에 국민의 의무를 지키려고 군대생활 하느라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춘천 나들이를 해가며 군복무 시절의 나를 만나보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여행을 통해 그동안 기억의  상자 속에 넣어두고 까맣게 잊고 지낸, 군인이었던 시절의 기억상자를 열었다. 장소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춘천에 가면  군인이었던 나와 함께 소양강처녀상도 지금의 나를 반겨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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