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물만 파는 것만이 미덕인 시절이 있었다.
이와 반대의 개념은 팔방미인이다.
'팔방미인(八方美人)'은 어디에서 보나 아름다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여성에게 사용된다. 단순히 외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다재다능한 사람', '다방면에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중국에서 전해온 표현다. 그러나 요즘 한국에서는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것저것 많이 하는 사람을 비유하기도 한다. 심지어 팔방미인은 배가 고프다는 말도 들어보았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당연히 한우물만 파야 성공한다고 생각했다. 내 의지라기보다는 사회통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한우물 이론은 우리의 내면 속에 살아있다.
그러나 지금은 멀티플레이어도 인정받는 시대다.
그 좋은 사례로 재러드다이아몬드를 들 수 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쇄 는
1997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후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다. 마치 연구논문과 같은 형식의 두꺼운 책이다.
내 나름대로 느낀 점을 요약하면 '문명에는 우열이 있어도 문화에는 우열이 없다' 그리고 '환경결정론'을 주로 다룬다.
책 제목만 보고 사회학자일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과 달리 저자는 생리학교수다. 저자는 새에 대한 연구를 위하여 뉴기니에 가서 그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원주민인 '얄리'라는 사람에게 "왜 백인들은 이런 엄청난 큰 배를 만들고, 우리는 만들지 못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저자는 질문을 받고 이에 대한 답변으로 연구를 하다 보니 '왜 문명은 유럽과 아시아에서만 꽃을 피울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신대륙이 구대륙에게 점령당하는 결정적 사건을 떠올렸다.
당시 구대륙인 에스파니아 사람들 수 백 명이 신대륙에 가서 수만 명을 정복한 초기요인은 '총'이었고 총은 '쇄'로 만들어졌지만 승패의 결정타는 '균'이었다. 당시 구대륙 사람들이 가져간 '균'으로 신대륙 사람들 90%가 죽었다.
지정학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은 하나의 대륙이자, 동서로 넓게 연결되어 다양한 작물과 가축들을 공유하며 가축 등으로 균에 대한 면역을 갖게 되었다.
반대로 신대륙은 남북방향으로 길게 연결되어 남과 북의 교류가 적었고, 다양한 가축이 적어서 균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졌다.
구대륙과 신대륙의 차이는 인간자체의 유전자보다는 지리적 위치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총, 균, 쇄는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어 저자의 본업을 넘어 방대하게 연구된 내용이지만, 나는 생리학자인 저자가 사회학의 관점에서 논리를 풀어가는 방식인 발상을, 현재 한국상황에 적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고속 성장으로 국가와 국민이 경제적 부는 이루었지만, 금수저는 계속 금수저가 되고, 흙 수저는 당대에 금수저가 되기에 점점 어려운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자신들의 탓이기보다는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인 '이미 주어진 환경결정론 때문'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다.
역사적으로도 고대부터 중세전후 까지는 귀족과 종교지도자들이 일반인과 대조를 이루었다. 산업시대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자본가들이 일반인과 대조를 이룬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조차 일반인이 당대에 자본가가 되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가장 인구분포가 많아야 하는 중산층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재의 한국사회의 미래를 재레드 다이아몬드 같은 관점을 응용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넘어 다른 관점에서 학자들이 연구하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좀 더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자기 분야 하나만 깊게 파기보다는 좀 더 다양한 분야들도 같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교육이 고등학교 까지는 다양한 수업을 하다가 대학과 직장에서는 전문성과 조직의 효율 등의 이유로 한 가지 분야만 집중하도록 한다. 마치 이런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이는 아마도, 기업의 효율이나 자본주의 논리를 넘어 신자유주의 체제의 산물일 것이다.
그 결과로 그 분야에서의 전문성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갖춰야 할 지식과 교양 등에 대한 균형은 깨질 수 있다.
이미 경험하고 있는 고령화시대에 은퇴 후의 삶은 어디까지 개인의 몫이다.
'부캐'와 'N잡러'가 늘어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전문분야를 넘어 다양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시기다.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