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2개월 정도 머물렀던 시기에 미국인의 ‘마인드(Mind)’가 한국인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음을 느꼈다.
마인드의 대체 단어로 처음에는 의식, 태도, 생활문화 등으로 생각했으나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마인드’로 결정했다. 마인드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자연스럽게 사고하는 것으로 의식이나 태도, 생활문화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미국인의 마인드를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집에서다. 엘리베이터나 복도에서 이웃을 만나면, 미국인이 거의 먼저 내게 인사한다. 또는 간단한 스몰토크(Small Talk)를 먼저 건네준다. 자주 이용하는 마트의 직원도 내게 스몰토크로 친밀감을 느끼게 해 준다. 이런 상황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으나 한 달 정도 지나니 조금 적응이 되었다. 한국적 정서로 "밥 먹었어요?" 정도의 간단한 인사다.
두 번째로 반려견과 산책하는 미국인을 막다른 길에서 만나면 대부분 먼발치에서 반려견을 통제하고 내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준다. 처음에는 갑자기 다가오던 걸음을 멈춰서 “무슨 일이 있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멈추거나 반려견을 통제하며 내게 미소 짓고 지나갔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미소 짓는 것도 한국과 다른 점이다.
세 번째로 가끔 미국인끼리 길에서 대화하는 것을 보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내가 대화를 듣게 될 정도로 조금 크게 말한다. 대학 캠퍼스와 주변에서는 서서 거리를 두고 길게 토론하듯이 말하는 사람들도 자주 목격한다. 식당이나 마트에서 줄을 설 때도 앞사람과의 거리를 좀 넓게 유지한다.
네 번째로 앞사람이 문을 열고 가면 뒷사람이 있는지 보고 올 때까지 문을 잡고 기다려준다.
내가 좀 멀리서 다가가는데도, 앞사람은 문을 열고 기다려서 좀 당황한 적도 있다.
나는 미국문화를 접하기 전 미국인은 개인주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겪어보니 “대체 뭐가 개인주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앞의 네 가지로 내가 느낀 점은 스몰토크로 먼저 다가와 주고, 상대방을 위해서 반려견을 통제해 주고, 상대와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뒷사람을 위하여 문을 잡고 기다리는 것은 오히려 상대에 대한 배려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보다 오래 미국 조직문화를 경험한 주변의 한국인에게 한국과 다른 대표적인 미국인의 마인드를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변은 한마디로 “미국인들은 남의 눈치를 덜 보는 것 같다”라고 했다. 목표와 방향성은 분명하게, 운영체계는 독립적으로(Highly aligned, loosely coupled)'를 지향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 나의 의문이 조금 풀렸다.
성경의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먼저 남을 배려하면 나도 배려받는다’는 생각이 그들의 내면에 무의식적인 마인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보통의 한국인으로 집단주의 문화에서 성장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처럼 나쁘다고 여겼다. 어쩌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내 또래와 이전 세대는 대부분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뒤에 개인주의라는 것이 지구 반대편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들’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진정한 개인주의는 ‘공공성을 중시하고, 자신의 소임을 다하며, 타인의 권리를 해치지 않고, 타인과 다수에 대한 배려’ 임을 알았다.
그러나 모든 미국인이 그런 것은 아니다. 소수는 전철역 주변의 공공장소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표현의 자유라고 하기에는 정도가 심하다. 그런 장소에는 무장한 경찰등이 통제를 하기도 한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여전히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마인드가 섞여서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농경사회와 유교적 전통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민주주의, 경제는 자본주의사회로 여전히 나 자신이라는 개인보다는 가족과 자신이 속한 집단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나는 두 가지 중 어느 한쪽이 좋다는 편견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두 가지 모두 오랜 역사를 통해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재는 두 가지 성향을 균형 있게 가져가는 것이 이상적일 수도 있다.
나도 집단주의자였으나, 지금은 두 성향을 모두 갖고 있다고 느낀다.
이런 생각을 본격적으로 갖게 된 것은 ‘코로나펜데믹 시기’부터였다. 재택근무를 하며 일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교류도 뜸해졌다. 외롭다는 생각보다는 생존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동안의 인간관계가 줄어들었다.
내가 직장 등의 집단에 속해 있다는 생각도 잊은 채 주어진 일에만 집중했다. 내 직업의 특성상 출근하지 않고 대부분의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개인주의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된 것 같다. 그걸 인식한 것은 팬데믹이 끝날 무렵이었다.
아마도 같은 시기를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인의 마인드도 이미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큰 변화는 개인이 막기 어렵다. 변화의 물결에 맞설 것인지 변화의 물결을 같이 타고 갈 것인지는 개인에게 달려 있다.
그러려면, 개인이 좀 더 현명해져야 한다.
개인에 대한 정의를 단어의 뜻인 집단에서 벗어난 개인(Individual)보다는, 독립적인 사람(An Independent Person)으로 인식하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