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할 수 있는 곳을 찾는 다면, 너에게 권한다.
결혼 후 11년간 해외 체류 및 코로나를 제외한 4년여 기간을 제외하고, 매년 제주를 찾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가리지 않고, 마음 맞는 사람, 가족, 친구와 제주를 방문했다. 그때마다 주요 동선은 제주 공항을 기준으로 동쪽이 주요한 코스 였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여행 안 내지, TV 예능 프로그램까지 모두 동쪽 여행을 강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쪽은 이국 적인 바다색이 마음을 설레게 하고, 이 기분에 맞는 적합한 관광 요소들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
해운대를 닮은 함덕 해수욕장은 그중 가장 매력적인 제주도의 관광지 이기 때문에 나 역시 한 달 살이를 했었다. 크고 작은 카페마다 모두 다른 콘셉트를 자랑했고, 같은 고기국수도 분위기와 맛이 제각각이었다. 눈 뜨면 새로운 맛집들을 찾아다녔고, 그 행복에 취해 제주에 사는 이들이 내내 부러웠다. 이 때문에 늘 제주 여행엔 감히 함덕, 김녕, 성산의 코스를 바꿀 엄두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 한 달 살이의 여행이 마무리되던 즈음, 문득 이 달콤한 시공간의 사탕을 매일 먹어서 인지 조금씩 물리기 시작했다. 하루는 날씨가 우중충 하니, 여행의 기분이 급락하면서 두 배는 더 쳐졌다. 자극적인 것들이 주는 피로가 생긴 것일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적인 사정으로 제주 살이를 계획하게 되었다. 초등학생 두 아들에게 적합한 동네를 찾기 위해 자연스럽게 지리와 환경이 익숙한 함덕, 북촌, 김녕, 성산 쪽의 학교들부터 알아보았다. 사흘 밤낮을 고민하며, 한 달이 아닌 몇 년, 몇십 년이 될지도 모를 제주 살이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기 시작했고, 여러 가지 답을 내며, 지금의 대정읍으로 자리를 잡았다. 제주 여행을 수도 없이 했지만,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이 동네. 제주 서쪽, 대정읍에 살게 된 건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었다.
한 유명 제주도 유튜버의 콘텐츠를 보면, 대정읍을 언급하며, 마농(마늘)을 이야기한다. 마늘 밖에 떠오르지 않는 이곳은 제주의 여타 지역과 다른 동네다. 제주도 곳곳을 도장 깨기 하며 다니는 관광객들이 아니라면, 쉽게 찾아오지 않는 대정읍엔 매력이 참 많다.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바위 끝에 서면, 바다를 힘차게 유영하는 남방 큰 돌고래를 볼 수 있으며, 그 뒤 배경으로 서쪽 끝이라 가능한 화려한 듯 먹먹한 노을이 있다. 육지에서 손님들이 오면, 남방 큰 돌고래를 보여 주며, 드라마 우영우 촬영지임을 강조한다.
또한, 내가 제주에서 가장 애정하게 된 장소인 송악산이 있다. 일몰이 기대되는 그런 날에는 방과 후 송악산에 오른다. 고래등 같이 검푸른 바다 위 송악산 꼭대기에 자리를 잡고, 산아래에서 산 김밥을 우물거리며, 주상 절리 넘어 떨어지는 해를 눈으로 담아내고 내려온다.
이제 곧 6월 이면, 동네에 반딧불이가 나타난다. 제주 곶자왈 도립 공원이 단층 아파트 단지 틈에 있는데, 저녁 시간 주차장에 등장한 반딧불이를 애써 잡지 않는다.
이곳에서 난, 자연과 함께 잔잔하게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삶을 즐긴다. 불편함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뻔한 일상 속에 색다름을 찾고, 그것에 고마워할 줄 알며, 살고 있다. 오늘도 가로등이 덜 켜진 저녁 9시쯤, 차분히 하루를 들여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