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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유니 May 19. 2023

여기 우리 동네엔 마을도 아이도 있다.

도시엔 마을이 없고, 마을엔 아이가 없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라는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들어왔지만, 그걸 실감할 수 있을 만한 기회는 없었다. 기껏해야 같은 동네에 사는 부모님과 여동생 내외의 도움을 받는 일이 아이를 키울 때 생기는 조금의 여유 일 뿐이었다. 온 마을까지 필요할 일이 있을까? 어차피 부모의 주관과 소신으로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건데, 너무 전근대적인 문장이라는 생각을 최근 까지도 했었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 큰 생각의 변화를 준 계기가 바로, 귀촌이다. 


 큰 아이는 6학년이고, ADHD이다. 어려서부터 본인 일에만 몰두하는 성향이다. 특히, 곤충에 관심이 많고, 최근 몇 년 사이 물고기에 꽂혔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관심 있는 것 외에는 집중하지 않았고, 아이들과의 다른 관심사로 충돌하게 되는 경우, 상대방의 입장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좋게 봐주는 이들은 관찰력이 뛰어난 아이 또는 아직 아이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공감이 서툴 다는 이야기로 위로해 줬지만, 학교를 보내는 내내 마음을 졸이며, 오늘은 아무 문제 없이 와주기를 바랐다. 도시와 같은 큰 집단에서 둥글지 않은 아이는 둥글게 만들어져야 했다. 내 교육관은 아이의 개성을 살려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학교를 보내고 나니, 어느 순간 제발 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모두가 각자의 별에서 빛난다’는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의 말에 크게 공감했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아이는 본인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불안해했고, 잦은 꾸짖음과 불편한 시선으로 힘들어했다. 나 역시,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관만을 내 세울 힘이 없었다. 그러던 중 지속되는 코로나의 여파로 아이의 사회성과 학습 능력이 많이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보름 간의 준비 짧은 준비 기간으로 제주도 귀촌을 감행했다.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아이가 학교에서 다양한 상황을 부딪히고, 배우길 바라는 마음 하나였던 것 같다. 결과는 매우 좋았다. 250명 내외의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면서, 아이는 크게 성장했다. 물론, 초반의 잦은 문제와 엉뚱한 행동들로 도시에서 만큼이나 자주 학교에서 연락을 받았지만, 내 기분도 학교의 대응도, 아이의 행동 변화도 모두 달랐다. 


 전교생이 서로의 얼굴을 한번쯤은 마주치게 되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조금씩 알았다. 피할 것은 피하고, 배려할 것은 배려하며 지냈다. 꾸준히 오래 보아주고, 장점을 먼저 찾아 주는 동네 어른들이 생겼고, 그 어른들의 아이들은 자기와 다른 아이에 대한 배척과 경계 보단 이해와 존중을 먼저 보내 주었다. 나의 아이 역시, 학교에서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혼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그리고 그 손을 누군가는 잡아 주었다. 선생님, 친구, 후배, 선배, 그리고 학부모까지. 부정적 의심보다는 긍정적 믿음이 바탕에 깔린 한 마을의 공동체에서 아이는 그렇게 성장하고 있다.


 이곳에 내려오지 않았더라면, 나와 내 아이, 그리고 우리 가족은 많이 외롭고, 지쳤을 것 같다. 비록 귀촌의 불편함을 도시와 비교하여, 열거하자면 수도 없이 많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누군가에게 깊이 존중받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것이다. 


 도시엔 마을이 없고, 마을엔 아이가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학교를 중심으로 한 마을의 공동체 속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 동네 여기저기서 꼭 부모가 아니더라도 오래 두고 지켜 봐줄 어른과 믿음으로 토닥 여쭐 이웃들이 있다면, 우리의 아이들이 보다 더 바른 생각과 바른 길로 스스로를 인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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