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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유니 Dec 07. 2022

나의 귀여운 손님

자폐 스펙트럼 치료의 권위자 김붕년 교수님의 유튜브 영상을 본 나의 소감

유튜브 알고리즘은 때론 내 마음을 읽는 듯하다. 딱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영상을 보았다. 루틴 있는 삶을 살기 어려운 ADHD 엄마는 본인도 안 되는 루틴 있는 삶을 살기를 ADHD 아들에게 강요한다. 그 아들이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혀를 뚫고 앞뒤 없이 튀어나와 아이의 마음과 두 눈에 공포를 남긴 이틀 전, 영상 하나가 유튜브에 떴다. 유퀴즈에 나온 김붕년 교수님의 짧은 하이라이트 영상이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셨지만, 그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이에게, 특히 사춘기 아이의 반항과 혼란을 연민으로 여기며, 떠나고자 할 때 잘 떠나보내라는 말씀이었다. 교수님은 '귀한 손님'으로 여기라 하셨지만, 나에겐 '귀여운 손님'으로 다시 체화되었다. 


 손님은 멀지만, 가까운 사람이다. 잠깐 있다 떠나지만, 그 시간만큼은 즐겁고, 행복하며, 특별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는 밴쿠버 2년 반, 제주 살이 1년 동안 많은 손님들을 맞았다. 손님이 오기 전엔 집도 정리하고, 손님과 함께 할 그 동네 주요 관광지를 조사하고, 일정도 짜고, 맛집도 찾는다. 내가 짜 놓은 그들과의 일정이 나에게는 반복적이고, 일상적일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새롭고 특별하다.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는 그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내 마음이 뿌듯하다. 손님이 와 있는 시간에는 잠시 아이들의 학원이나 공부 일정, 잠자는 시간까지 흐트러지고, 다녀간 뒤에는 집을 또 한 번 뒤집어 청소를 한다. 버겁지만, 다시 또 오라는 말을 전하며, 떠나보낸다. 이렇게 따지다 보면, 우리 아이들도 나에게 20년 정도 지내다 가는 '귀여운 손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3kg이 안 되는 작은 핏덩어리는 목구멍에 우유도 제대로 넘길 줄 몰라 꼭 트림을 시켜야 했다. 나와 남편은 아이가 잠자다가 토해서 기도라도 막힐 까 봐 트림을 하기 전엔 절대 눕히지 않고, 아이를 안아서 등을 쓸어내려줬다. 그러다 보면, 아이가 작게 꺼억하고 트림 비슷한 걸 한다. 그제야 안심하고, 잠을 청하면, 곧 해가 떴다. 금이야 옥이야 한 일 년 돌보던 나의 귀여운 손님을 어느 순간 소유물로 생각 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나와 닮아서 일까, 나와 지낸 시간이 오래돼서 그런가, 아님 나의 오만가지 감정에도 늘 나에게 사랑을 요구하고, 안아 주기를 바라는 아이들의 존재를 가볍게 여기게 되면서 일까. 늘 옆에 있어 소중한 줄 모르는 나의 작은 위성들. 이 아이들이 없다면, 나의 세계는 황량하다. 뜨겁게 빛나는 태양이 함께 세계를 이루는 행성과 위성들이 없다면, 태양계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인생과 세계는 아이들을 통해 완성되어 가고 있고, 견고해지는 중이다. 


 한때 의대까지도 꿈꿨지만, 먼 일이었다. 도통 집중 안 되는 생활과 루틴 없는 일상으로 안정적인 생활이 필요했던 고교시절이 엉망진창이었다. 이유 없이 혼란스러운 사춘기와 조용한 ADHD 성향으로 누구도 내가 ADHD인 줄 몰랐다. 성적 좋고, 얌전한데 어떻게 눈치를 챘을까. 지금처럼 ADHD와 소아정신과가 TV 전면에 오르내리는 시절이 아니니 더욱 그러했다. 무서웠다. 10대 시절을 나처럼 스스로를 자책하며 지내게 될까 봐 두려웠다. 나도 잘 넘겼으면서 아이가 상처받을까 미리 걱정했다. 걱정을 연민 또는 측은함으로 바꿔야 했는데, 잔소리와 꾸짖음으로 일관했다. 나의 귀여운 손님이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을 만큼.  


 내 큰 귀여운 손님은 나보다 낫다. 좋아하는 취미가 있고, 그 취미에 집중하는 모습이 다르다. 제때 진단받아, 의사 선생님과 담임선생님, 학교 친구들과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에 남부럽지 않게 잘 성장해 주고 있다. 하얀 얼굴에 눈꼬리가 아래로 처져 웃상이며, 웃는 모습이 백만 불짜리인 나의 귀여운 첫 손님은 태어날 때부터 지금 까지 얼굴은 그대로고, 팔다리만 길어졌다. 울 때는 아랫입술이 먼저 튀어나와 울기 직전 신호를 보낸다. 눈물이 많고, 웃음은 두배로 더 많다. 사랑한다는 말을 수시로 하고, 행복하다는 말을 할 땐 내 눈을 꼭 마주치며 해준다. 글로 다 열거할 수 없는 이 귀여운 아이에게 뭐가 그렇게 바라는 게 많은지 모르겠다. 


 어제는 학교를 마치고, 차에 타는 아이에게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잘 다녀왔니?” 가 아닌 “나의 귀여운 손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라고 불러보았다. 어감도 정겹고, 가볍게 장난치는 듯한 첫마디로 시작한 우리의 오후 대화는 즐거웠다. 손님이라 부르니, 함부로 해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김붕년 교수님의 교훈이 나에게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 동안 꼭 내 마음에 새기며, 아이를 귀하게, 귀엽게 여기고 싶다. 글을 쓰며, 흘린 눈물과 감정을 한참 뒤에도 기억하길 바란다. 내가 다시 아이가 내 것이라고 여길 때쯤 내 글이 나를 다시 일깨워주는 기록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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