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나는 삶의 목적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나는 삶의 목적을 이해했으며 그 목적을
목적으로 경외한다 그리고 이 목적은―
내가 이런 것들과 화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4월이 있다는 것과,
또 나날은 대장간의 풀무라는 것, 그래서
전나무에서 전나무로, 오리나무에서
오리나무로, 강철의, 비스듬한
줄기를 이루어 흘러넘쳤던 것
길 위의 눈처럼 녹은,
대장장이가 한 줌에 쥔 석탄 같은,
한량없는 노을을
소리 내며 빨아들이는 흐름이라는 것.
교회 종소리의 무게라는 것,
종 치는 이가 무게 재는 이에게 사로잡힌다는 것,
한 방울 때문에, 눈물 때문에,
부활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는 것.
이장욱 지음 『혁명과 모더니즘』
(러시아의 시와 미학) 中
작품의 배경과 시평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Pasternak)의 이 시는 삶의 거창한 정답을 찾아내려는 시도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의 역동성과 그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이 작품의 배경과 함께 시평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작품의 배경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이자 소설 『닥터 지바고』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던 인물입니다. 그는 본래 시인으로 시작했으며, 그의 시 세계는 '생의 약동(Élan vital)'과 '자연과의 합일'을 핵심으로 합니다.
∎ 시대적 배경: 이 시가 쓰인 시기는 혁명과 전쟁으로 점철된 러시아의 격동기였습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강요되던 시대에 파스테르나크는 정치적 구호 대신 인간의 내면, 자연의 순리, 그리고 기독교적 영성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 철학적 기반: 그는 화가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밑에서 예술적 자양분을 섭취하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시각적 이미지(노을, 석탄)와 청각적 이미지(종소리, 풀무질 소리)가 공감각적으로 어우러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 부활절의 의미: 시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부활절'은 단순히 종교적 기념일을 넘어, 겨울(죽음)을 뚫고 나오는 봄(생명)의 강렬한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2. 시평:
삶이라는 대장간에서 단련되는 영혼
"화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용기
시의 전반부에서 화자는 삶의 목적을 이해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독특합니다. 바로 "이런 것들과 화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모순이나 고통을 억지로 합리화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 갈등 자체를 삶의 본질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입니다. 4월의 생동감이 주는 설렘과 삶의 고단함은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몸이라는 통찰입니다.
대장간의 비유: 뜨겁고 치열한 생(生)
시인은 나날을 '대장간의 풀무'라고 표현합니다. 삶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불을 지피고 쇠를 두드리는 치열한 현장입니다.
∎ 흐름의 이미지: 전나무에서 오리나무로, 강철의 줄기로 이어지는 흐름은 멈추지 않는 생명의 연속성을 보여줍니다.
∎ 석탄과 노을: 타오르는 노을을 '대장장이가 쥔 석탄'에 비유한 대목은 압권입니다. 사라져 가는 저녁 빛조차도 시인에게는 생을 뜨겁게 달구는 에너지로 치환됩니다.
종소리의 무게와 부활의 통증
마지막 연에서 시의 분위기는 웅장하면서도 엄숙해집니다.
∎ 무게감: 삶은 가벼운 유희가 아니라 '교회 종소리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것입니다. 종을 치는 사람이 오히려 그 무게에 압도되듯,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삶이 주는 거대한 운명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 거룩한 고통: 부활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는 표현은 역설적입니다. 진정한 생명력을 얻기 위해서는 산고(産苦)와 같은 고통이 수반됨을 의미합니다. 눈물과 한 방울의 땀이 모여 '부활'이라는 거대한 생의 찬미로 이어지는 과정이 이 시의 결말입니다.
3. 총평
이 시는 삶을 관조하는 대상이 아니라, "소리 내며 빨아들이는 흐름" 속에 뛰어들어 그 무게를 견디는 과정으로 정의합니다. 파스테르나크에게 삶의 목적이란 어떤 도달점이 아니라, 매 순간 대장간의 쇠처럼 뜨겁게 달궈지고 종소리처럼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현재의 역동성 그 자체입니다.
"삶은 우리에게 이해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살아 내어 지기를 원한다"라는 사실을 파스테르나크는 이 시를 통해 웅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