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다큐 ‘Red Hunt’

by 조성봉 감독 [제주4·3항쟁 연재②]

by 김양훈

[제주4·3항쟁②] 다큐영화 ‘Red Hunt’

∎ 영화 'Red Hunt'는 1996년 조성봉 감독이 제작한 제주4·3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를 제작할 당시는 제주4·3에 대해 언급하기조차 쉽지 않았던 때였다. 1997년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상영했던 조성봉 감독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급되어 조성봉 감독은 수배 생활을 해야 했다. 또한, 서울인권영화제 서준식 집행위원장은 ‘레드 헌트’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구속까지 당했다.

∎ 1947년 3월 1일 미군정 아래에서 일어난 ‘3·1절 시위’를 기점으로 한라산 금족령이 내려질 때까지 제주4·3은 7년 7개월⁽¹⁾ 동안 계속되었다.

1948년 5월 처형을 기다리는 제주 사람들
[註1]‘제주4·3’은 1947년 3월 1일 관덕정 앞 광장에서 열린 3·1절 기념행사에서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시작되어,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禁足) 구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총기간은 약 7년 7개월이다. 제주4·3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핵심적인 순간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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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행사 도중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이가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에 항의하는 군중을 향해 경찰이 발포하여 6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이 도민들의 공분을 사며 대규모 총파업과 4·3 무장봉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 무장봉기(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주도로 12개 지청과 우익 단체들을 공격하며 본격적인 무장 충돌이 시작되었다.
‣ 마지막 무장대원 하산(1954년 4월): 이른바 '마지막 무장대원'으로 불리는 이덕구나 김희준 등 주요 인물들이 사살되거나 체포된 이후에도 잔존 인원들이 있었으나, 1954년 4월 2일 마지막 무장대원 중 한 명인 이남규가 생포되면서 조직적인 저항은 사실상 종식되었다.
‣ 종결(1954년 9월 21일): 제주도 경찰국장이 한라산 통제 구역(금족 지역)을 전면 개방한다고 선포함으로써, 전략적·행정적으로 사건의 종료를 선언하게 되었다.

사망자는 정부에서 공식 인정한 3만에서부터, 일반에서는 8만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군경토벌대의 한라산 중산간 마을에 대한 ‘초토화작전’⁽²⁾으로 1948년 10월에서 194949년 3월 사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빨갱이라는 이름 아래 학살되었다.

∎ 이 영화는 지금까지도 그 참혹한 악몽의 세월을 공유하고 있는 노인들의 한 맺힌 증언과 삶을 통해 78년 전 제주의 참혹한 학살과 인권유린의 실상을 보여준다.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註2]

제주4•3사건 당시 작전회의 중인 경비대 장교들
'초토화 작전'

제주 4·3 사건의 전개 과정 중 가장 비극적인 국면인 '초토화 작전'은 1948년 11월 중순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4개월간 제주 중산간 마을을 대상으로 자행된 대대적인 강경 진압 작전을 말합니다. 이 시기는 7년 7개월의 전체 사건 기간 중 가장 많은 인명 피해(전체 희생자의 약 80%)가 집중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1. 작전의 배경과 목적

1948년 8월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부는 제주 사태를 조기에 종결짓기 위해 강경책을 선택했습니다. 10월 11일 '제주도 경비사령부'가 설치되었고, 11월 17일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습니다.

•목적: 해안선에서 5km 이상 떨어진 중산간 지역을 무장대와 주민들이 접촉할 수 없는 '공백 지대'로 만들어 무장대의 보급로와 은신처를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2. '해안선 5km' 포고령과 소개령

작전의 시작은 제9연대장 송요찬 소령 명의의 포고령이었습니다.

"해안선에서 5km 이외의 지점에 있는 사람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폭도 배로 간주하여 총살하겠다."

이 포고령에 따라 중산간 마을 주민들에게 해안가 마을로 내려오라는 소개(疏開)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정보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거나, 집과 가축을 버릴 수 없었던 노인과 어린이, 혹은 무장대의 보복이 두려워 산으로 피신한 주민들은 순식간에 '폭도'로 간주되었습니다.

3. 작전의 실행: "삼진(三盡) 전술"

토벌대는 중산간 마을을 돌며 이른바 '삼진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이는 중국 항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잔인한 초토화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치진(炙盡): 보이는 모든 것을 태운다 (마을 전체 소각)

•살진(殺盡): 보이는 모든 사람을 죽인다 (집단 학살)

•수진(輸盡): 모든 물자를 약탈한다 (가축 및 식량 탈취)

4. 결과와 비극

이 작전으로 인해 제주 중산간 지역의 약 95%에 달하는 마을(약 300여 곳)이 불타 없어졌으며, 이를 '잃어버린 마을'이라 부릅니다.

∎ 대량 학살: '귀순'하면 살려준다는 말을 믿고 내려온 주민들이 정당한 절차 없이 집단 사살되거나, '함정 토벌'에 걸려 희생되었습니다.

∎ 피난민 발생: 마을이 불타 갈 곳이 없어진 주민들은 추위를 피해 한라산 천연 동굴 등으로 숨어들었고, 이곳에서 굶주림과 추위 속에 죽어가거나 결국 무장대와 섞이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초토화 작전은 단순히 무장 공산주의 세력을 소탕하는 것을 넘어, 국가 공권력이 무고한 민간인을 적대시하여 대규모로 살상한 반인륜적 범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재 제주 곳곳에 세워진 '4·3 유적지' 비석들은 당시 불타 사라진 마을 터를 기리고 있습니다.


제주4·3 다큐영화 ‘Red Hunt’

https://youtu.be/PSynIfc_L9Q?si=oSOF8ymXfbyqnbF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