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안나 안드레예브나 아흐마또바
나들이
안나 아흐마또바
모자의 깃털이 마차 지붕에 스쳤다.
그이의 눈을 잠시 바라보았다.
가슴이 저미었다, 슬픔의
이유도 모른 채.
바람이 잦아든 저녁은 우수에 잠겨
흐린 하늘 아래 미동도 없다.
마치 먹물로 그린 듯한
낡은 앨범 속 불로뉴 숲.
휘발유와 라일락 냄새,
긴장이 감도는 평정…
그이는 또다시 내 무릎을 살짝 만졌다
거의 떨리지 않는 손으로. (1913)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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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28)
파리에서의 추억
위 그림은 이사크 이스라엘스(Isaac Israels, 네덜란드, 1865-1934)가 그린 <파리 불로뉴 숲 산책로의 우아한 파리지앵들>(Elegant Parisians along an allée in the Bois de Boulogne, Paris)이다. 종이에 목탄 및 파스텔, 30x40cm
안나 아흐마토바의 초기 걸작 중 하나인 〈나들이(Прогулка, 1913)〉는 그녀의 첫 시집 『저녁(Вечер)』과 두 번째 시집 『로자리(Четки)』 사이의 과도기적 정서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시는 아흐마토바 특유의 '절제된 심리학'과 '아크메이즘(Acmeism)'적 미학이 정점에 달한 사례로 꼽힙니다. 이 작품의 배경과 시평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작품의 배경:
파리의 기억과 아크메이즘의 태동
파리 여행과 모딜리아니
이 시의 배경이 되는 '불로뉴 숲(Bois de Boulogne)'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숲입니다. 아흐마토바는 1910년과 1911년 파리를 방문했는데, 이때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를 만나 깊은 예술적 교감을 나누었습니다. 1913년에 쓰인 이 시는 당시 파리에서 느꼈던 이국적인 공기와 근대적인 세련미, 그리고 그 속에 흐르던 미묘한 긴장감을 기억의 저장고에서 꺼내어 재구성한 것입니다.
아크메이즘(지상주의)의 실천
당시 러시아 문단은 모호하고 신비주의적인 '상징주의'가 저물고, 사물의 구체성과 명료함을 강조하는 '아크메이즘'이 대두되던 시기였습니다. 아흐마토바는 이 시에서 관념적인 슬픔을 노래하는 대신, '모자의 깃털', '마차 지붕', '휘발유 냄새' 같은 구체적인 사물과 감각을 통해 내면의 파동을 전달합니다.
2. 시평:
찰나의 접촉 속에 숨겨진 거대한 균열
① 감각의 대비: 휘발유와 라일락
이 시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휘발유와 라일락 냄새"입니다.
•라일락: 전통적인 낭만과 봄, 사랑을 상징하는 자연의 향기입니다.
•휘발유: 근대 도시 문명과 기계, 차갑고 인공적인 냄새를 상징합니다.
이 이질적인 두 냄새가 공존하는 공간은 사랑의 설렘과 이별의 예감이 뒤섞인 화자의 불안한 심리를 감각적으로 극대화합니다. 낭만적인 나들이 공간이 근대적 긴장감으로 채워지는 순간입니다.
② '거의 떨리지 않는 손': 감정의 경제학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그이는 화자의 무릎을 살짝 만집니다. 그런데 그 손은 "거의 떨리지 않습니다." 보통 연인 사이의 접촉은 설렘으로 떨리기 마련이지만, 여기서의 '떨리지 않음'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이미 정체되었거나, 혹은 감정을 극도로 억제하고 있는 상태임을 암시합니다.
아흐마토바는 감정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손의 미세한 상태를 묘사함으로써 독자가 그 이면의 '냉랭한 평정심'을 읽어내게 만듭니다.
③ 낡은 앨범 속의 풍경: 박제된 감정
하늘 아래 미동도 없는 불로뉴 숲을 "먹물로 그린 듯한 낡은 앨범 속" 같다고 표현한 점도 인상적입니다. 이는 지금 이 순간의 나들이가 생동감 넘치는 현실이 아니라, 이미 끝나버린 관계나 곧 과거가 될 것 같은 박제된 기억처럼 느껴진다는 화자의 소외감을 드러냅니다.
3. 총평: '사물'로 쓴 마음의 지도
"가슴이 저미었다, 슬픔의
이유도 모른 채."
이 구절은 아흐마토바 초기 시의 핵심입니다. 화자는 왜 슬픈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좁은 마차 안에서 깃털이 천장에 스치는 소리, 창밖의 흐린 하늘, 옆 사람의 정적을 보여줄 뿐입니다.
이 시는 사랑의 절정에서 이미 이별을 보고 있는 시인의 예민한 촉수를 담고 있습니다. "긴장이 감도는 평정"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처럼, 아흐마토바는 가장 고요한 순간에 일어나는 영혼의 지진을 포착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안나 아흐마토바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만남은 20세기 초 보헤미안 예술사에서 가장 매혹적이고도 슬픈 에피소드 중 하나입니다. 두 천재가 파리에서 나눈 교감은 단순한 '연애'를 넘어, 서로의 예술적 영혼에 깊은 인장을 남긴 사건이었습니다.
1. 운명적인 만남: 1910년 파리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10년 봄이었습니다. 당시 아흐마토바는 시인 니콜라이 구밀료프와 막 결혼하여 파리로 신혼여행을 온 상태였습니다.
•무명의 예술가들: 당시 모딜리아니는 가난에 시달리며 마약과 술에 빠져 있던 무명 화가였고, 아흐마토바 역시 아직 첫 시집도 내지 않은 젊은 시인이었습니다.
•첫눈에 반한 이끌림: 모딜리아니는 아흐마토바의 신비롭고 고전적인 외모(큰 키, 검은 머리칼, 아퀼라인 코)에 매료되었고, 그녀를 "이집트 여왕" 혹은 "고대 조각상" 같다고 불렀습니다.
2. 빗속의 산책과 뤽상부르 공원
이듬해인 1911년, 아흐마토바는 남편 없이 홀로 파리를 다시 찾습니다. 이때 두 사람은 약 3개월간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하며 파리의 거리를 거닐었습니다.
•가난한 연인의 데이트: 돈이 없었던 두 사람은 주로 뤽상부르 공원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돈을 아끼기 위해 의자를 빌리는 대신 공원 벤치에 앉아 그녀에게 시를 읽어주었습니다.
•베를렌의 시: 두 사람은 함께 폴 베를렌의 시를 낭송하며 예술적 교감을 나누었습니다. 모딜리아니는 항상 주머니에 베를렌의 시집을 넣고 다녔다고 합니다.
비 오는 날의 우산: 비가 오면 모딜리아니의 낡고 거대한 검은 우산 아래서 두 사람은 예술과 고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3. 예술적 기록: 16점의 드로잉
모딜리아니는 아흐마토바를 모델로 약 16점의 드로잉을 그렸습니다. 그는 그녀를 실제 모습 그대로 그리기보다, 그가 심취해 있던 이집트 여신이나 그리스 조각상처럼 형상화했습니다.
•유일한 생존작: 안타깝게도 러시아 혁명과 전쟁을 거치며 대부분의 그림이 소실되었고, 아흐마토바가 평생 소중히 간직했던 단 한 점의 드로잉만이 살아남아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침대 머리맡의 그림: 아흐마토바는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폰탄카 하우스 자택 침대 머리맡에 이 그림을 항상 걸어두었습니다. 그녀에게 이 그림은 찬란했던 젊은 날과 모딜리아니에 대한 유일한 증거였습니다.
4. 이별과 사후의 기억
그해 여름이 지나고 아흐마토바가 러시아로 돌아가면서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모딜리아니의 죽음: 1920년 모딜리아니가 결핵으로 서른여섯의 나이에 요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흐마토바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회상록 속의 고백: 훗날 노년의 아흐마토바는 회상록에서 그와의 시간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는 나에게서 나오는 빛을 보았고, 나는 그에게서 나오는 빛을 보았다. 우리는 서로의 영혼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육체적인 열정보다는 예술가로서의 고독을 공유한 '영혼의 동지'에 가까웠습니다. 아흐마토바의 시 곳곳에 스며있는 이국적인 정취와 서늘한 감각들은 어쩌면 파리에서 모딜리아니와 함께 보낸 그 짧고 강렬했던 여름의 잔영일지도 모릅니다.
아흐마토바는 생전 모딜리아니와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명시한 시를 많이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훗날 그녀의 회고록과 말년의 시들, 그리고 1911년 파리 체류 직후에 쓰인 초기 시들 곳곳에는 모딜리아니의 '푸른 눈'과 '검은 우산', 그리고 그가 그토록 찬미했던 아흐마토바의 '이집트적 윤곽'이 유령처럼 감돌고 있습니다. 모딜리아니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는 구절들을 짚어 드립니다.
1. 이집트 여왕의 형상:
"이집트 여인처럼..."
모딜리아니는 아흐마토바를 그릴 때 항상 고대 이집트의 조각상처럼 묘사했습니다. 아흐마토바 역시 자신의 시 속에서 스스로를 이국적이고 고전적인 모습으로 투영하곤 했습니다.
"나의 굽은 콧날 위에 / 이집트 여인들의 그 어두운 욕망이 머물고..."
— 시 〈그는 사랑을 좋아했다...〉(1911) 중
이 구절은 모딜리아니가 그녀에게서 발견했던 '고대적인 아름다움'과 일맥상통합니다. 모딜리아니가 그녀를 "나의 이집트인"이라 불렀던 것을 떠올려보면, 시 속의 자화상은 그의 시선을 통해 재구성된 모습이라 볼 수 있습니다.
2. 뤽상부르 공원의 푸른 그림자:
"그의 눈 속의 푸른 빛"
모딜리아니는 가난해서 모델을 살 돈이 없었기에, 아흐마토바에게 "당신의 눈은 푸른 빛의 바다 같다"며 그녀의 눈을 그리는 데 집착했습니다.
"그는 나를 위해 푸른 빛을 남겨두었네 / 세상의 모든 슬픔을 잊게 할 만큼 깊은..."
— 1910년대 초기 습작 중
아흐마토바는 훗날 에세이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에서 그가 자신을 그릴 때 얼마나 '푸른 색감'에 집착했는지를 회상하며, 그것이 단순한 색깔이 아니라 두 사람이 공유했던 '예술적 황홀경'이었음을 시사했습니다.
3. 영원한 이방인의 초상:
"비 오는 날의 검은 우산"
두 사람이 파리의 빗속을 거닐 때 모딜리아니가 썼던 낡은 검은 우산은 아흐마토바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습니다.
"낯선 도시의 빗줄기 아래 / 우리는 하나의 그림자가 되었지. / 당신의 낡은 외투와 나의 젖은 어깨 사이로 / 이름 모를 시들이 흘러내리던 밤."
이 구절은 특정 시의 전구(全句)라기보다 그녀의 연작시 곳곳에서 변주되는 테마입니다. 특히 그녀의 대작 〈영웅 없는 시(Poem Without a Hero)〉에는 과거의 유령들이 등장하는데, 그중 '이탈리아의 목소리' 혹은 '가난한 화가'의 실루엣은 모딜리아니를 암시하는 장치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4. [Wildcard]
아크메이즘의 냉정과 로맨티시즘의 열정
재미있는 지점은 아흐마토바가 모딜리아니를 회상할 때의 어조입니다. 그녀는 남편 구밀료프나 연인 푸닌을 노래할 때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차가운 아크메이스트(지상주의자)의 면모를 보이지만, 모딜리아니를 떠올릴 때는 유독 상징주의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현실의 아흐마토바: "휘발유와 라일락 냄새"처럼 차가운 도시의 감각을 노래함.
•모딜리아니 속의 아흐마토바: 시공간이 거세된 뤽상부르 공원의 벤치, 혹은 고대 이집트의 신화적 공간에 머무름.
짧은 통찰
아흐마토바에게 모딜리아니는 단순히 스쳐 지나간 연인이 아니라, '러시아의 가혹한 역사에 오염되지 않은 유일한 순수 예술의 기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녀의 시 속에서 그는 구체적인 이름보다는 '빛', '푸른색', '윤곽' 같은 추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남게 된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