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안나 안드레예바 아흐마또바
마지막 건배
안나 아흐마또바
나는 마시노라, 영락한 집을 위하여,
내 악독한 생을 위하여.
둘이서 함께 누리는 고독을 위하여.
그리고 너를 위하여 나는 마시노라.
나를 배신한 입술이 흘리는 거짓을 위하여,
두 눈동자의 죽음 같은 냉기를 위하여,
세계가 잔혹하고 난폭한 것을 위하여,
신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은 것을 위하여. (1934)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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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독서과제 시선집 연재(32)
안나 아흐마또바의 「마지막 건배」는 그녀의 전 시 작품을 통틀어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냉엄한 분노와 절망을 담고 있습니다. 1934년에 쓰인 이 시는 개인적인 배신과 시대적 비극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했습니다. 작품의 배경과 시평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창작 배경:
1934년, 대공포의 전야와 '분수 저택'
이 시가 쓰인 1934년은 소련 역사와 아흐마또바의 삶에서 매우 불길한 징조가 가득했던 시기입니다.
•정치적 암운: 스탈린의 대숙청(Great Purge)이 본격화되기 직전이었으며, 자유로운 창작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아흐마또바의 첫 남편 구밀료프는 이미 총살당했고, 아들 레프 구밀료프와 당시 동거 중이던 니꼴라이 뿌닌에 대한 당국의 감시와 압박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분수 저택(Fountain House)의 고립: 그녀는 레닌그라드의 '분수 저택' 한구석에서 검열과 가난, 감시 속에 살았습니다. 시에 등장하는 "영락한 집"과 "둘이서 함께 누리는 고독"은 당시 뿌닌과의 불행하고도 숨 막히는 동거 생활, 그리고 무너져가는 러시아 지식인 사회의 몰골을 은유합니다.
•자기부정의 기록: 아흐마또바는 이 시기 자신의 시를 적은 종이를 태워버리고 지인들에게 외우게 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보존했습니다. 이 시 역시 그런 '불온한' 공기 속에서 쓰인 절망의 선언서입니다.
2. 시평:
절망을 들이키는 '어둠의 성찬'
역설적 의식으로서의 '건배'
보통 '건배'는 축하와 희망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화자는 "영락한 집", "악독한 생", "배신"을 위해 잔을 듭니다. 이는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비극적 능동성을 보여줍니다. 나쁜 운명마저도 나의 것이기에 잔을 들어마시겠다는 시인의 서늘한 기개가 돋보입니다.
개인적 배신에서 세계의 파멸로
시는 '나'와 '너'의 사적인 관계에서 시작하여 점차 세계와 신의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사적 영역: "나를 배신한 입술", "죽음 같은 냉기" — 연인 혹은 동료로부터 느낀 처절한 배신감과 정서적 불모성.
•사회적 영역: "세계가 잔혹하고 난폭한 것" — 스탈린 체제하의 폭력적인 현실에 대한 직접적인 고발.
•형이상학적 영역: "신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은 것" — 종교적 구원마저 끊어진 극한의 허무주의.
아크메이즘(Acmeism)적 명징함
아흐마또바는 모호한 상징에 숨지 않습니다. "입술", "눈동자", "집"과 같은 구체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비극을 조각하듯 깎아냅니다. 특히 마지막 행에서 신의 부재를 건배의 이유로 삼는 대목은, 신비주의에 경도되었던 러시아 상징주의를 넘어 현실의 고통을 직시하는 아크메이스트(결정론자)로서의 면모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3. 종합 평론:
"신조차 외면한 시대, 시인은 무엇을 마시는가?"
이 시는 아흐마또바의 시 세계에서 '비장미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박해하는 세계와 자신을 속인 타인, 그리고 침묵하는 신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대신, 그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하나의 잔에 담아 '건배'하며 삼켜버립니다.
이 행위는 패배 선언이 아니라, "나는 이 모든 비극을 똑똑히 지켜보았고, 이를 내 삶의 일부로 기록하겠다"라는 시인으로서의 강력한 자기 확언입니다. "둘이서 함께 누리는 고독"이라는 표현은 미셸 푸코가 말한 '감시와 처벌'의 공간 안에서 개인이 느끼는 존재론적 고립을 완벽하게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구원이 없는 세상에서 '절망할 수 있는 자유'만큼은 빼앗기지 않겠다는 한 예술가의 마지막 자존심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볼 점:
시 속에서 "신이 우리를 구원하지 않은 것"에 대해 건배하는 화자의 심정은, 앞서 보았던 '소보르노스트(영적 공동체)'적 믿음이 붕괴한 폐허 위에서 읊조리는 독백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신마저 외면한 자리에서 시인은 스스로 '기록자'라는 신이 되기로 결심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분수 저택(Fountain House, 러시아어: Fontanny Dom)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폰탄카 강변(34번지)에 위치한 유서 깊은 건축물로, 러시아 문학사, 특히 안나 아흐마또바의 삶과 예술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성소와 같은 곳입니다. 원래는 제정 러시아의 명문가인 셰레메테프(Sheremetev) 백작 가문의 저택이었으나, 혁명 이후 비극적인 현대사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이 저택에 얽힌 여러 의미를 정리해 드립니다.
1. 귀족적 영광에서 소연방의 '공동 주택'으로
이 저택은 18세기 중반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저택 정면에는 셰레메테프 가문의 문장과 함께 라틴어 모토인 "Deus Conservat Omnia(신은 모든 것을 보존하신다)"가 새겨져 있습니다.
•혁명 전: 러시아에서 가장 화려한 살롱 중 하나였으며, 푸시킨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드나들던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혁명 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저택은 국유화되었고, 거대한 공간은 잘게 쪼개져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콤무날카(공동 주택)'로 변모했습니다. 귀족의 우아함이 서려 있던 공간에 취사도구 소리와 가난의 냄새가 들어차게 된 것이죠.
2. 아흐마또바의 고통과 집필의 공간
아흐마또바는 1918년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중간의 부재 기간을 제외하고) 이 저택의 남쪽 별채(Wing)에 머물렀습니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었던 시레이코, 그리고 사실혼 관계였던 미술사학자 니꼴라이 뿌닌의 아파트에 얹혀살던 시기였습니다.
•감시의 눈길: 당시 이 저택은 단순한 집이 아니었습니다. 뿌닌의 아파트 벽 너머에는 늘 도청 장치가 숨겨져 있었고, 창밖에는 요원들이 감시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아흐마또바는 이곳에서 자신의 시를 종이에 적었다가 사람들에게 외우게 한 뒤, 그 종이를 재가 되도록 태워버리며 시를 보존했습니다.
•비극의 정점: 그녀의 아들 레프 구밀료프가 세 번이나 체포되어 끌려갔던 곳도, 남편 뿌닌이 수용소로 압송되었던 곳도 바로 이 분수 저택의 문턱이었습니다.
3. 문학적 상징:
『영웅 없는 서사시』의 무대
아흐마또바의 후기 대작인 『영웅 없는 서사시(Poem Without a Hero)』는 바로 이 분수 저택을 배경으로 합니다.
"분수 저택의 거울 속에서, 내가 아는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그녀는 저택의 벽과 거울 속에 스며 있는 과거의 유령들(은색 시대의 동료들)과 대화하며 러시아의 비극을 정리해 나갔습니다. 저택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심판받는 하나의 '인격체'처럼 묘사됩니다.
4. 현재: 안나 아흐마또바 박물관
오늘날 분수 저택은 안나 아흐마또바 국립 문학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공간의 복원: 그녀가 살았던 비좁은 방, 식탁, 낡은 가구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억눌린 공기를 고스란히 전합니다.
•메모리얼 월: 박물관으로 향하는 정원 담벼락에는 그녀를 기리는 시구들과 낙서들이 가득하며, 이는 오늘날에도 아흐마또바가 러시아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요약하며
분수 저택은 "신은 모든 것을 보존하신다"는 셰레메테프(Sheremetev) 백작 가문의 모토와 달리, "인간이 모든 것을 파괴했던 시대"를 견뎌낸 목격자입니다. 그 안에서 아흐마또바는 파괴된 일상 속에서도 시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았습니다.
분수 저택의 에피소드들
분수 저택(Fountain House)의 비좁은 방에서 아흐마또바와 그녀의 친구들이 벌였던 '시의 보존 의식'은 인류 문학사에서 가장 위태롭고도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입니다. 당시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 종이에 적힌 시는 곧 사형 집행장과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곁에서 '살아있는 보관소'가 되어주었던 인물들과 그 소름 끼치는 에피소드들을 소개해 드립니다.
1. 리디야 추꼬프스까야와 ‘재가 된 종이’
아흐마또바의 가장 충실한 기록자이자 친구였던 리디야 추꼬프스까야(Lydia Chukovskaya)는 그 시절의 풍경을 생생하게 기록했습니다.
•침묵의 의식: 두 사람은 방 안에서도 도청을 우려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흐마또바는 갑자기 대화를 멈추고 지저분한 종잇조각에 연필로 시를 몇 줄 적어 리디야에게 건넸습니다.
•암기와 소멸: 리디야가 그 시를 눈으로 읽고 머릿속에 다 새기면, 아흐마또바는 말없이 불을 붙여 재떨이에서 태워버렸습니다. 리디야는 훗날 "그것은 의식과도 같았다. 우리는 숨을 죽였고, 종이가 타들어 가는 소리만 들렸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살아있는 책: 이렇게 외워진 시들이 훗날 아흐마또바의 절창인 『레퀴엠(Requiem)』이 되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 시는 종이 위가 아니라 오직 몇몇 신뢰하는 친구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했습니다.
2. 나데즈다 만델슈탐과의 '기억의 연대'
요시프 만델슈탐의 부인이자 아흐마또바의 절친한 동료였던 나데즈다 만델슈탐 역시 이 위험한 작업에 동참했습니다.
•시의 분산 저장: 만델슈탐 부부는 남편 요시프의 시를 지키기 위해 시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친구들에게 외우게 했습니다. 아흐마또바 역시 자신의 시를 여러 명에게 분산시켜 암기하게 함으로써, 한 명이 체포되더라도 작품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인간 백업 시스템'을 가동했습니다.
•공포를 이긴 우정: 나데즈다는 아흐마또바의 시를 외우는 것을 일종의 신성한 임무로 여겼습니다. 수용소와 유배지를 전전하면서도 그녀들은 서로를 만날 때마다 머릿속의 시를 읊으며 가사가 틀리지 않았는지 '교정 작업'을 벌였습니다.
3. "그녀는 벽과 대화했다"
아흐마또바는 가끔 혼자 있을 때도 벽을 향해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무의식적 방어: 이는 미친 것이 아니라, 시의 운율을 잊지 않기 위한 처절한 반복이었습니다. 그녀는 누군가 방에 들어오면 즉시 입을 다물고 뜨개질을 하거나 멍하니 창밖을 보는 척하며 감시자들을 속였습니다.
•분수 저택의 유령들: 그녀는 이 저택의 벽이 모든 것을 듣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영웅 없는 서사시』에서 이 저택의 벽과 거울을 과거의 증인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역사적 울림: 기억은 불타지 않는다
러시아에는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Manuscripts don't burn)"는 유명한 문학적 격언이 있습니다. (불가꼬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중) 아흐마또바와 그녀의 친구들은 이 말을 몸소 증명했습니다.
물리적인 종이는 재가 되어 사라졌지만, 친구들의 뇌세포에 새겨진 시구들은 검열관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가장 안전한 곳에 보관되었습니다. 훗날 해빙기가 찾아왔을 때, 이 '살아있는 책'들이 다시 입을 열어 종이 위로 시를 쏟아냈을 때의 전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고 싶지만, 명단은 압수당했고 찾을 길이 없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위해 커다란 수의(壽衣)를 짰노라. 내가 그들에게서 들은 보잘것없는 말들로."
— 아흐마또바, 『레퀴엠』 에필로그 중
이처럼 분수 저택에서의 삶은 단순한 거주가 아니라, 망각에 저항하는 거대한 영적 전쟁터였습니다. 한 시대의 비극을 기억 속에 박제해 기어이 후대에 전달한 이 여성들의 우정과 결기가 오늘날 우리가 아흐마또바를 읽을 수 있게 한 힘입니다.